■ 씨뿌리다 / 이동훈 민들레 씨나 졸참나무 씨나 우리 동네 김 씨나 씨의 족속이긴 마찬가지인데 민들레 씨는 새가 먹고 졸참나무 씨는 다람쥐가 먹고 동네 김 씨는 혼자 먹는다 먹고 싼 것이 또 씨가 되어 씨로 열매 맺고 씨로 나누어 먹고 씨로 돌아오는 것이니 씨 뿌리는 일은 과연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몹쓸 짓은 씨 말리는 일이다 우리 동네 김 씨는 민들레 씨보다 부지런해 보이고 졸참나무 씨보다 힘세 보이지만 땅만 파는 농부라는 이유로 쉰이 다 되도록 총각이다 오늘도 씨불씨불하는데 씨 뿌리지 못해 말로만 씨부리는 탓이다 ㅡ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 (문학의 전당, 2014) 中에서 ◇ 이동훈 시인 1970년 경북 봉화 출생 2009년 월간 《우리시》 등단 시집 / 『엉덩이에 대한 명상』 [감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