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22) 《물레방아, 사랑 손님과 어머니, 백치 아다다》에 실려있는 주요섭의 단편소설 「개밥」을 읽었다.
“주인집 개의 밥을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 기막힌 처지를 그린 「개밥」을 보면 윤리적인 기준이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하층민에게 무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먹을 것을 놓고 서로 빼앗으려는 인간과 개의 사력을 다한 싸움은 인간이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빈궁에 있지만, 작가는 빈궁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한 극한상황으로까지 몰고가는가를 묘사하고 있을 뿐, 그 원인과 대안의 모색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신경향파 문학의 한계로 연결되는 것이거니와 「개밥」은 주요섭의 제1기 소설이 직면한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 해설: 진정석 (문학평론가)
■ 개밥 / 주요섭 (1927)
주인나리가 바둑이라는 서양 사냥개 새끼를 얻어 오기는 벌써 석 달 전 일이었다. 어떤 일본 사람 사냥꾼의 집에서 얻어 온 것인데, 처음에는 우유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므로 아씨의 속도 무던히 태우고 나리의 수갑도 무던히 비게 만들었다. 첫 한 주일 동안은 나리의 극진으로 우유를 사다 먹였으나, 백만장자가 아닌 형세로 개에게 우유만 먹이기는 너무 심하였다. 그래서 우유를 그만두고 밥을 먹여 보기도 했으나 처음 며칠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나리와 아씨의 용단으로 우유는 절대로 다시 먹이지 않기로 하고 서양 개에게 그냥 밥은 아무래도 좀 뻑뻑한즉 흰밥에다 고깃국물을 두어서 맛있게 대접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어멈은 이 주인 내외의 하는 것이 모두 미친 짓같이 보이었으나, 물론 말참견할 데가 아니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유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똑똑히 모르는 어멈에게는 개에게 우유를 먹일 때보다도 흰밥에 고깃국을 먹이는 것을 더 못 할 짓으로 생각이 되었다.
'사람도 흰밥을 못 먹는데, 원 개에게 흰밥, 고깃국이라니!'
하고 어멈은 부엌에서 아침마다 개밥을 준비하면서 속으로 혼자 생각하곤 하였다. 처음 이틀은 개가 그 흰밥 고깃국을 닿치지도 않았다. 하나 서양 개도 배가 고픈 후에는 별수가 없었던지 사흘 되는 날부터는 조금씩 짤딱짤딱 핥아먹기를 시작했다. 처음 얼마동안 개가 흰밥 고깃국을 잘 먹지 않는 동안에 어멈은 한편으로는 불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좋은 일이었다. 그것은 주인아씨가 개 앞에 한번 놓았던 밥은 내다버리라고 어멈에게 명령하는 까닭이었다.
어멈은 그 흰밥 고깃국을 내버릴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세 살 난 귀여운 딸이 있었다. 행랑방 어둡고 더러운 방구석에서 혼자 적적히 울고 웃고 중얼거리고 잠자고 꿈꾸는 이쁜 딸 단성이 있었다. 첫날 개가 닿치지도 않은 개밥을 들고 행랑으로 나와 어멈은 그 밥을 단성이에게 주었다. 단성이는 세상에 난 이후로 흰밥 고깃국이 처음이었다. 오죽이나 맛나게 그가 그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으랴! 더욱이 과한 노동으로 말미암아 어미 젖에서 젖이 잘 나지를 않으므로 젖도 변변히 못 얻어먹고 자라난 단성이에게는 이 흰밥 고깃국 한 그릇이 그 동안 쌓였던 영양불량을 한꺼번에 모두 회복시킬 수 있을 것 같이 맛나고 좋은 물건이었다. 그렇게도 맛나게 그릇 밑까지 핥는 단성이의 조그만 모양을 볼 때, 어멈은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그후에도 며칠 동안 개가 밥을 조금만 먹고는 늘 남기는 고로 (개가 처음이 되어서 맛을 못 들여 많이 아니 먹는 이유도 있겠지만, 개밥 얻어먹는 재미에 어멈이 일부러 밥을 많이 담아다 주는 까닭도 있었다. 주인아씨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도 아니건마는, 어멈은 그의 마음속을 아씨가 알까 싶어서 개밥을 많이 담을 때마다 주인아씨가 옆에 있으면 변명삼아서 "잘 먹지도 않는 거 많이나 담아다 줘야 그래두 좀 먹는다우"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어멈은 매일 흰밥 고깃국을 얻어서 단성이도 먹이고 저도 그 짭짤하고 단 국물과 입안에서 녹아 스러지는 듯한 매끈매끈한 쌀밥 한두 술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한번은 좀 너무 많이 담았던 개밥을 바가지에 쏟아 들고 행랑으로 나가자, 일본 사람의 집에 가서 두부 팔아 주고 월급 오 원씩 받는 단성이 아범이 마침 집에 들렀으므로 그것도 오래간만이라고 그것을 바가지째 먹으라고 주었었다.
아범은 시장하던 끝이라 단성이가 입에 손가락을 물고 그의 입과 손만 치어다보고 앉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훌훌 모두 들이마시었다.
"안에서 오늘 누구 생일날이오?"
하고 아범이 개밥을 먹으면서 물어 보았다. 어멈은 남편이 방금 맛있게 먹는 밥을 개 먹다 남은 것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서,
"생일날은! 꼭 생일날만 고깃국을 끓여 먹습디까? 그저 끓이게 돼서 끓였지!"
하고 우물쭈물해 버리었다.
이때까지 아버지만 쳐다보던 단성이는 아버지가 내려놓는 빈 바가지를 보고 그 바가지를 끌어안고 '으아' 하고 울며 쓰러졌다. 어멈이 점심에 또 얻어다 주기로 약속하고 겨우 달래어 놓았다. 아버지는,
"그런 줄 알았더문 안 먹을걸, 난 그 오카미상(여주인)이 청결통에 내버리는 흰밥 부스러기나 이따금 배부르게 얻어먹는 걸!"
하고 단성이 몫을 공연히 먹어서 불쌍한 딸년을 울린 것을 후회하면서 월급 받으면 댕구알사탕 사다 주기로 약속하고 일어서 나갔다.
그러나 개도 먹지 않고는 못 사는 법이다. 두 주일이 못 되어 개는 그 흰밥 고깃국을 있는 대로 홀딱 먹어 없애게 되었다. 더욱이 자라나는 개라, 매일 식량이 늘어서 무섭게도 밥을 많이 먹어 댔다. 그래서 이제는 어멈이 아무리 밥을 많이 주어도 개가 먹다가 남기는 법이 없었다. 주는 대로 먹는 개는 물론 단성이가 지금 어두운 방에서 흰밥 고깃국을 꿈꾸고 기다리고 있는 줄을 알 리는 없었다. 또 안다고 한들 그를 위해 밥을 남길 자선심도 없을 것이다. 지금 매끼 어멈은 단성이를 낙망시키었다. 어멈은 언제나 단성이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팔자 없는 입에 뚱딴지 버릇을 배워서 큰 야단이 났다. 하루는 단성이의 성화를 더 받을 수도 없고 또 그 애원을 저버릴 수도 없고 해서 개밥은 내다가 단성이를 먹이고 저희가 먹으려고 지었던 조밥을 슬그머니 개를 주었더니 개는 킁킁 두어 번 맡아 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끙끙 앓으면서 돌아갔다.
주인아씨는,
"이놈의 개가 오늘은 게걸이 들렸나 원, 한 사날 못 먹은 개처럼 구네."
하고 쫑알거리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어멈은 아씨가 혹 어멈의 비밀 죄를 발견할까 보아서 속이 얼마나 죄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없다면 그 밉살스럽게 끙끙거리며 온 부엌 안을 헤매는 개새끼를 도마 위에 놓인 식도로 쿡 찔러 죽여버렸으면 좋을 생각이 났으나 꾹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도 속이 죄고 또 이유는 어멈 자신도 잘 분해하지 못하나 원통하고 분한지 속이 클클하고 안타까워서 씻고 있는 사발이라도 한 개 내동댕일 치고 몸부림을 하고 싶었으나 그럴 처지가 아니라. 죄를 숨기는 듯, 용서를 비는 듯한 눈으로 아씨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억지로 만들어 웃어 보이었다.
설거지를 겨우 마치고, 즉시 어멈은 행랑으로 뛰쳐나왔다. 나와서는 잡담 정지하고, 그때 문턱에 앉아 오줌을 내싸고 있는 단성이를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 들어가서 엉덩이가 깨어져라 하고 몇 번 몹시 갈기었다.
"이, 썅, 썩어대나갈 년의 에미나이! 그 팔자에 니팝(흰밥)은 무슨 니팝을 먹는다구……."
어멈은 단성이를 탁 밀치어 내버리었다. 단성이는 아랫목으로 굴러가 떨어지면서 벼락치듯이 악을 써 울었다. 어멈은 씩씩거리며 앉아서, 대롱대롱 굴며 섧고 아프게 우는 단성이를 바라다보았다. 눈물이 흘러내려 얼룩이를 되는 대로 짓는, 햇빛 못 봐 시든 얼굴, 뼈만 남게 여윈 손발, 가을이 깊었건만 아직 홑옷을 감고 있는 조고만 몸뚱어리! ―---'저것이 내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어멈은 말할 수 없이 섧고 애처롭고 후회가 났다. 더욱이 그의 엉엉 울음 소리는 어멈의 오축 간장을 모두 녹이어 내는 듯하였다.
"이 쌍놈의 에미나야! 상게두 소리 내 울갔네? 방치 맛 좀 보구야 말간? 뚝 끈쳐…… 상게 못 끄치갔네!?"
울음 소리는 뚝 그치었다. 난 때부터 절대 복종으로 버릇된 관능은 위협 한마디면 좌우하기에 힘이 없는 것이었다. 울음 소리는 멎었으나 단성이가 울기를 그친 것은 아니었다. 들먹거리는 어깨, 코를 길게 들이마시는 소리, 이따금 숨을 한꺼번에 서너 번씩 들이쉬는 소리, 또 이따금 참을 수 없이 잇새로 새어 나오는 짧은 느낌 소리!
'저것이 에미를 못쓰게 만나 맘대로 울지두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어멈은 더 견딜 수가 없었다. 후회와 같이, 그러면서도 어멈이 된 위엄을 보전하려는 구차스런 억제. 어멈은 단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동글동글한 눈이 눈물로 채워졌다. 그는 억지로 울지 않으려 했으나, 코가 씽해지면서 골치가 지끈 아팠다. 두 줄기 눈물이 여윈 뺨 위로 주르륵 내리흘렀다.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멈은 미친 개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단성이를 얼싸안고 뒹굴었다.
"단성아! 단성아…… 에구 내 딸아…… 네 어미가 몹쓸 년이다…… 자, 울지 마라, 엉……."
단성이는 더욱 소리 내 울었다. 어멈도 슬피 울었다. 단성이의 따끈따끈한 뺨이 어멈 뺨에 닿을 때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단성이를 본능적으로 꽉 끌어안았다. 새로운 눈물이 멎을 줄도 모르고 흘러내리었다. 그 후에 단성이는 일체 흰밥에 고깃국을 달라는 말을 한 번도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바둑이를 데려온 지 한 달이 좀 넘은 때, 단성이 아범은 업을 잃었다. 별로 잘못한 일도 없으나, 영업을 축소한다는 이유로 밥자리를 떼였다. 그후 두어 주일이나 다른 데 일자리를 구하느라고 번둥번둥 놀고 있다가 나카무라조(中村組)에서 대판(오사카)인가 어디로 노동자를 모집해 가는데 노자는 그냥 대주고 가서는 하루에 이 원씩이나 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한다고 삼 년을 약속을 하고 동네 태손이 아범과 그 밖에도 여러 노동자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떠나면서 아범은 돈 벌어 가지고 삼 년 후에 단성이 입을 고운 양복(신시가에서 두부 팔러 다니면서 일본 아이들이 입은 것을 보고 어찌도 맘에 들던지 언제든지 돈이 좀 풍부히 생기면 꼭 하나 사다 입히기로 벼르고 있었으나, 아직 실행을 못 했던 것이다)을 사다 주기로 약속을 했다. 어멈은 남편을 그렇게 멀고 생소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좀 맘이 아니 놓이고 어째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가서 삼 년 후에는 돌아오며 많이― 얼마나 많이일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많이― 벌어 온다는 말에 귀가 벌룩하고, 더구나 태손이 아범이랑 같이 가니까 별로 염려가 없으리라고 억지로 맘을 진정하였다.
"삼 년 세월이라니 잠깐이지 뭐!"
하고 어멈은 삼 년 후에 돈 전대 차고 돌아올 남편을 상상하고 혼자 한숨을 지었다.
바둑이는 그 동안 벌써 꽤 컸다. 바로 제법 큰 개가 되어서 모를 사람이 오면 컹컹 짖는 소리도 차차 굵어지고, 다갈색 털이 매끈매끈히 난 몸뚱어리는 살이 포동포동 찌고 기름이 반지르르 흘렀다. 단성이는 일간 차차 몸이 더 쇠약해 갔다. 저고리를 벗으면 갈빗대가 아롱아롱하고, 두 눈 아래는 영양 불량으로 시커멓게 멍이 졌다. 따라서 식성은 더욱 고약해져서 아무런 것이 생기는 대로 주워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바둑이는 매일 주인나리가 안고 귀애하고 다루어서 아는 사람을 보면 무릎으로 부득부득 기어오르고 뺨과 손등을 핥고 하여 거리낌없이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또 모두의 귀염을 받았다. 그리고 서양개로 우유를 안 먹고 밥과 고깃국을 먹는다고 누구에게서나 기특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단성이는 행랑방 아래 구겨박히어서(더욱이 추운 겨울이 되었으므로) 바깥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더욱이 사람을 보면 모두 무서운 듯이 어릿어릿하여 그 공허한 눈에는 공포와 의심뿐이 방황할 따름으로, 주인집에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도 하나도 이 단성이를 주의하는 이가 없고 또 그 초췌한 얼굴이나마 본 이가 몇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개는 차차 더 크고 자유스럽게 되어서 그 커다란 귀를 벌룩거리면서 바깥마당으로 뛰쳐나오는 때는, 만일 그때 단성이가 거기 있다가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외마딧소리를 지르면서 황급히 방으로 뛰쳐들어가곤 했다. 단성이에게는 그 커다란 개가 한없이 무서웠다. 그 길쭉한 입으로 단성이를 깨물어 삼킬 것 같았다. 그러나 바둑이는 단성이는 본 체도 아니 하는 모양 같았다.
한 이십 일 전부터 단성이는 자리에 누웠다. 기침을 콜롱콜롱 하면서 열이 있는 것이 감기가 들린 것 같다고 하여 어멈은 며칠 내버려 두면 나으리라 하여 무관심하였다. 그들에 속한 백성들은 자연을 가장 좋은 의사로 믿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러나 단성이의 병은 그리 쉽게 나을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누운 지 사흘이 못 되어 위중해졌다. 죽도 한 술 떠넣지 않고 연해 기침을 하며 열이 났다. 어멈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줄 알고 놀라서 주인아씨께 말하여 감기약 한 봉지를 얻어 먹이고 땀을 내이면 낫는다고 하여 안집에 사정을 하여 나무를 좀 얻어다가 불을 많이 때고 온몸을 더러운 이불로 푹 덮어 주었다.
이튿날 아침, 어멈은 단성이가 거의 죽게 된 것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감기보다도 필경 무슨 다른 병이라고 직각한 때 어멈의 온몸은 떨리고 혼은 흔들리었다. 어찌하랴! 그는 주인아씨에게 그 사연을 아뢰었더니 의사를 청해다 보이라구 한다. 그는 주머니에 돈이 없음을 알면서도 황망히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왔다. 깨끗한 새 외투를 입고 가방을 든 의사가 그 더러운 방 안으로 들어갈까 하고 어멈은 스스로 염려하고 부끄러워했으나, 지금 그런 것을 꺼릴 때가 아니었다. 어멈은 의사의 얼굴만 바라다보았다. 사형선고가 내리는가? 어멈의 눈은 의사의 입술에 풀로 붙여 논 것처럼 의사의 입만 바라다보았다.
"별로 염려는 마시오."
하는 말이 떨어질 때, 어멈은 다시 산 것 같고 제 귀를 의심하게 되어서 재차 물었다. 의사는,
"그런데 먹이는 것을 조심해 먹여야겠소. 허튼 것은 먹이지 말고 고깃국물, 우유 같은 것이 좋고, 밥은 니팝을 먹이고 병이 조금 낫거든 닭고기두 좀 먹이고, 달걀 같은 것을 먹이면 좋지요. 다른 병보다두 먹지 못한 병이니깐…… 약은 별로 쓸 것이 없으나, 원한다면 좀 있다 애 시켜 보내리다…… 그리고 문을 이렇게 꼭 닫아 두지 말구 신선한 공기를 좀 통하게 하소. 그래두 추워서는 안 될 테니 불을 많이 때고 문을 잠깐 열어서 공기를 순환시키곤 해야 돼요……."
하고 의사는 갔다. 속에서 안 나오는 것을 부끄럼을 무릅쓰고 시재 돈이 없으니 일후에 월급 사 원을 타거든 올리마고 겨우 말해서 의사를 보내 놓고, 돈도 없는데 약은 차라리 보내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속으로 혼자 생각하였다. 어멈은 정신 잃은 년처럼 찬바람이 병자의 온몸을 스치고 엄습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문턱에 주저앉은 채 의사가 가방을 끼고 나가던 대문간만을 멀거니 바라다보고 앉아 있었다.
약도 얼마 먹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날로 글러져 가는 형세를 보아서는 의사를 다만 한 번이고 더 청해다 보이고 싶었으나, 지난번 왔을 때 인력거 삯도 못 주고 또 약값도 못 준 것을 생각할 때에는 도저히 다시 그를 청할 용기가 없었다. 주인아씨에게 월급을 한 달 치 먼저 꾸어 주는 셈치고 빌려 달라고 여쭈어 보았으나, 나리가 월급 받을 날이 아직 안 되어서 현금이 없다고 거절을 당하였다. 요새 며칠 단성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방황하였다. 그런데 어젯밤 처음으로 단성이는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오마니, 나 니팝에 고깃국이나 좀 주렴."
하고 두 달 동안이나 일체 입 밖에 내지 않던 말을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어멈은 부끄럼을 무릅쓰고 그 사연을 주인아씨에게 아뢰었더니, 주인아씨는,
"아니, 미친 소리 하지도 마소. 한 달씩 앓던 애가 밥을 먹다니. 체해 죽으라구…… 이것 내다 죽이나 쑤어 주소."
하고 흰쌀을 한줌 집어 주었다. 어멈도 그럴듯이 생각되었다. 우선 흰죽이라도 쑤어 주면, 조 미음보다 얼마나 맛이 있게 먹으랴 하고 생각하니 한없이 기쁘기도 하고 주인아씨가 고맙기도 하였다. 죽을 할 수 있는 대로 좀 많게 하려고 물을 너무 많이 두어서 죽이 그만 미음이 되다시피 하였다. 단성이는 죽을 한 술 떠먹어 보고는 다시 더 아니 먹었다.
"이게이 니팝인가?"
하고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아무리 권하여도 영 흰죽을 먹지 않았다. 어멈의 마음속에 흰밥에 고깃국을 꼭 단성이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먹여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동전 한 푼 없었다. 땅(전당) 내일 감이라도 있나 휘둘러보았으나 의복가지나 있던 것을 단성이 아버지가 일본 갈 제, 차비는 나카무라조에서 담당해 준다고 한들 객지에 가면서 그래 돈 한푼도 없이야 갈 수야 있겠느냐고 해서 모조리 땅을 잡혀 돈 오 원을 만들어 주어 보내 놓고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멈은 방금 안방 마룻간에서 흰밥 고깃국을 실컷 먹고서 있을 바둑이를 그려 보았다.
"우리 단성이는 그래 개만두 못하단 말인가?"
"왜?"
단성이는 가쁜 듯이 숨을 자주 쉬었다.
"니팝이나 한 그릇…… 고깃국……."
어멈은 죽그릇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안에 들어가서 고깃국물을 좀 얻어서 죽 속에 쳐다가 먹이어 볼 생각이었다. 안에 들어서니, 마침 주인나리는 밖으로 나가고, 아씨가 먹다 남은 밥과 고깃국을 개밥 대야에 주르륵 들어 쏟는 때이었다. 아씨는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멈은 조심조심히 마루 옆으로 가서 개밥궁이를 넌지시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밥이 한 절반이나 들어 있었다.
'여기서라도 국물을 좀 얻어 가야겠다.'
하고 어멈은 생각하였다.
개밥궁이를 들어 국물을 좀 국그릇에 쏟으려 하니, 다 자란 개는 제 밥을 안 빼앗기겠다고 어멈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그 서슬에 어멈은 죽그릇을 땅에 내리치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단성이를 먹이려던 흰죽이 겨울 아침 언 땅 위에 쏟아져서 땅을 하얗게 덮고 거기서 김이 문문 났다. 어멈은 개를 너무나 괘씸하다고 생각하였다.
"국 국물 조곰 얻어 갈래는데, 이 쌍놈의 가이."
하면서 그는 개밥궁이를 개를 향해 내갈기었다.
"이거 무얼 또 새벽부텀 깨트리니?"
하는 주인아씨의 쨍한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리어 오고, 그의 찡그린 얼굴이 부엌문 앞에 나타났다.
밥궁이로 얻어맞은 개는 저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들어 어멈의 팔을 덥석 물었다. 어멈은 통분과 본능적 자위심과 복수심으로 온몸이 떨리었다. 그의 앞에는 세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다못 개 한 마리가 있을 따름이었다. 어멈은 달려들어 개 허리를 두 다리 새에 끼고 언 땅 위로 뒹굴었다. 그리고 그 억센 어금니로 개 몸뚱이를 되는 대로 물어뜯었다. 어멈의 물린 팔에서 피가 흐르고 개 몸뚱이에도 이곳저곳 어멈에게 물린 곳에서 피가 흘렀다. 피투성이가 된 두 동물은 미친 듯이 서로 애쓰며 뜰 위에 뒹굴었다. 주인아씨는 이 갑작 광경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여인들은 갑자기 이상한 일, 무서운 일을 당하면 아뜩해져서 어찌해야 할는지 모르고 선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법이다. 아까운 개가 죽지나 않을까 하여 가서 뜯어말리고도 싶었으나, 그러나 개한테 저도 물리거나, 또는 의복에 피칠을 할까 겁이 나서 그러지는 못하고, 그냥 두 팔을 벌리고 선 채,
"어멈, 왜 미쳤나?"
하고 빽빽 소리만 질렀다.
사람에게 악이 난 후에는 못 할 일이 없다. 시골 사람들이 밤에 산골에서 혼자서 악으로 범과 싸워 범을 물어뜯어 죽인다는 말은 늘 듣는 말이다. 어멈에게도 이 악이 나매(그 악은 사십 년 동안이나 그 큰 몸뚱어리 어느 구석엔가 박이어 있으면서도 아직 한 번도 나올 때가 없었던 것이 오늘 이 위기에 있어서 그것은 그 모든 위력을 가지고 폭발된 것이다) 그 악은 개 한 마리를 물어뜯어 죽이기에는 족하였다. 물론 어멈도 여기저기 여러 곳을 그 개에게 몹시 물리었다. 어멈 의복은 새빨갛게 피로 물들었다. 개가 이미 맥이 없이 어멈 하는 대로 내버려둔 것도 감각하지 못하던 어멈은 그냥 개를 물어뜯으면서 우연히 마당 귀편에 허옇게 얼어붙은 흰밥에 고깃국을 보았다. 그에게는 단성이가 다시 생각이 되었다. 그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죽어 늘어진 개 시체를 내버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그 개밥 얼어붙은 것을 긁어 얼마 모아 쥐고, 나는 듯이 그는 행랑방으로 나왔다. 방문은 아까 열고 나간 채로 열려 있었다. 방 안은 바깥같이 싸늘하였다.
"단성아! 자, 니팝에 고깃국 가져왔다…… 얘, 단성아! 단성아!"
하는 어멈의 말소리는 입으로 가득하여 잘 알아들을 수 없게 중얼거리었다.
단성이 입에서는 영 대답이 없었다. 그의 곱게 감은 눈은 영영 다시 뜨지 않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감은 것이었다. 정신나간 어멈은 달려들어,
"얘, 단성아, 아……."
하며 그를 끌어안고 뒹굴었다. 이때에야 행랑까지 쫓아 나온 아씨는 무서워서 방 안에 들어는 못 오고 문 밖에서 이 광경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이게이 니팝이가?"
하는 원망 섞인 목소리를 어멈은 또 들었다. 어멈은 단성을 흔들었다.
"얘, 또 말해라, 엉!"
그러나 단성이는 대답이 없었다. 어멈은 그 소리가 문 밖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어멈은 문 밖에 단성이가 깨끗한 흰옷을 입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어멈은 단성이 시체를 내던지고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멈은 피투성이가 된 치마를 내두르면서,
"단성아! 단성아!"
를 부르며 큰거리로 달음박질해 나아갔다.
개 피와 어멈의 피로 새빨개진 치마는 마치 붉은 깃발처럼 어멈 머리 위로 겨울 바람을 받아 펄럭거리었다.
주인아씨는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가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미치광이 할미 하나가 피로 새빨개진 붉은 적삼을 입고 미친 고함을 소리소리 지르면서 대로로 나갔으니 곧 체포하기를 부탁한다는 전화이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는 어멈이 미치어서 나갔으니 어디 다른 데 어멈을 하나 구해 보라는 전화를 하고 끊었다가 조금 후에 다시 어멈이 바둑이를 물어뜯어 죽이고 미치어 나갔다고 전화하였다. ㅡ (《동광》, 1927.1)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22) 《물레방아, 사랑 손님과 어머니, 백치 아다다》 (동아출판사, 1995)
/ 2021.07.02(금) 편집 택
https://blog.daum.net/mulpure/15856405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감상]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2021.07.04) (0) | 2021.07.04 |
---|---|
[명시감상] '씨뿌리다' 이동훈 (2021.07.03) (0) | 2021.07.03 |
[명시감상] 7월의 시 (2021.07.01) (0) | 2021.07.01 |
[소설읽기] '아네모네의 마담' 주요섭 (2021.06.30) (0) | 2021.06.30 |
[명시감상] '목계 장터' 신경림 (2021.06.30) (0) | 2021.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