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7월의 시 (2021.07.01)

푸레택 2021. 7. 1. 10:48

△ 홍릉숲에서 촬영 (2021.06.26)
△ 홍릉숲에서 촬영 (2021.06.26)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 장릉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 장릉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 장릉
△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 장릉 (콜라주 편집)

■ 빨래 / 윤동주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윤동주, 1917~1945)

■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시인, 1904~1944)

■ 7월 / 이오덕
 
앵두나무 밑에 모이던 아이들이
살구나무 그늘로 옮겨가면
누우렇던 보리들이 다 거둬지고
모내기도 끝나 다시 젊어지는 산과 들
진초록 땅 위에 태양은 타오르고
물씬물씬 숨을 쉬며 푸나무는 자란다
 
뻐꾸기야, 네 소리에도 싫증이 났다
수다스런 꾀꼬리야, 너도 멀리 가거라
봇도랑 물소리 따라 우리들 김매기 노래
구슬프게 또 우렁차게 울려라
길솟는 담배밭 옥수수밭에 땀을 뿌려라
 
아, 칠월은 버드나무 그늘에서 찐 감자를 먹는,
복숭아를 따며 하늘을 쳐다보는
칠월은 다시 목이 타는 가뭄과 싸우고
지루한 장마를 견디고
태풍과 홍수를 이겨내어야 하는
칠월은 우리들 땀과 노래 속에 흘러가라
칠월은 싱싱한 열매와
푸르름 속에 살아가라
(이오덕, 1925~2003)

■ 칠월이 오면 / 손광세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 있고 싶다.
(손광세·시인, 1945~)

■ 7월 / 안재동

넓은 들판에
태양열보다 더 세차고 뜨거운
농부들의 숨결이 끓는다

농부들의 땀을 먹는 곡식
알알이 야물게 자라
가을걷이 때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세상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런 기쁨 잉태되는 칠월

우리네 가슴속 응어리진
미움, 슬픔, 갈등 같은 것일랑
느티나무 가지에
빨래처럼 몽땅 내걸고
얄밉도록 화사하고 싱싱한
배롱나무 꽃향기 연정을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안재동·시인, 1958~)

■ 7월 / 목필균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
돌아선 반환점에
무리 지어 핀 개망초

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
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
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
장대비로 내린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폭염 속으로 무성하게
피어난 잎새도 기울면
중년의 머리카락처럼
단풍 들겠지

무성한 잎새로도
견딜 수 없는 햇살
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
폭우 속으로 쓸려간다
(목필균·시인)

■ 7월 / 반기룡

푸른색 산하를 물들이고
녹음이 폭격기처럼 뚝뚝 떨어진다

길가 개똥참외 쫑긋 귀기울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토란 잎사귀에 있던 물방울
또르르르 몸을 굴리더니
타원형으로 자유낙하한다

텃밭 이랑마다
속알 탱탱해지는 연습을 하고
나뭇가지 끝에는
더 이상 뻗을 여백 없이
오동통한 햇살로 푸르름을 노래한다

옥수숫대는 제철을 만난 듯
긴 수염 늘어뜨린 채
방방곡곡 알통을 자랑하고
계절의 절반을 넘어서는 문지방은
말매미 울음소리 들을 채비에 분주하다
(반기룡·시인)

■ 땡볕 / 손광세

7월이 오면
그리 크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쯤
허름한 완행버스 대합실을
찾아가고 싶다

죽이 다 된 캐러멜이랑
다리 모자라는 오징어랑
구레나룻 가게 주인의
남도 사투리를 만날 수 있겠지

함지에 담긴 옥수수 몇 자루랑
자불자불 조는 할머니
눈부신 낮꿈을 만날 수 있겠지

포플린 교복 다림질해 입고
고향 가는 차 시간을 묻는
흑백사진 속의 여학생
잔잔한 파도를 만날 수 있고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려승의 밀짚모자에
살짝 앉아 쉬는
밀잠자리도 만날 수 있겠지

웃옷을 벗어 던진 채
체인을 죄고 기름칠을 하는
자전거방 점원의
건강한 웃음이랑

오토바이 세워 놓고
백미러 들여다보며 여드름 짜는
교통 경찰관의
초록빛 선글라스를 만날지도 몰라

7월이 오면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 있고 싶다

■ 7월에 꿈꾸는 사랑 / 이채 (시인)

하찮은 풀 한 포기에도
뿌리가 있고
이름 모를 들꽃에도
꽃대와 꽃술이 있지요
아무리 작은 존재라 해도
갖출 것을 다 갖춰야 비로소 생명인 걸요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에 흔들리며 흔들리며
소박하게 겸허하게 살아가는
저 여린 풀과 들꽃을 보노라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견딜 것을 다 견뎌야 비로소 삶인 걸요

대의만이 명분인가요
장엄해야 위대한가요
힘만 새다고 이길 수 있나요
저마다의 하늘을 열고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
그 어떤 삶도 나름의 철학이 있는 걸요

어울려 세상을 이루는 그대들이여!
저 풀처럼 들꽃처럼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무엇 하나 넉넉하지 않아도
이 하루 살아있음이 행복하고
더불어 자연의 한 조각임이 축복입니다

/ 2021.07.01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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