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고시조] (05) '암반 설중 고죽이야' 서견 (2021.11.05)

[고시조] 암반 설중 고죽이야 / 徐甄(서견) 巖畔 雪中 孤竹이야 반갑기도 반가왜라 묻노라 孤竹君이 네 어떠하던인다 首陽山 萬古 淸風에 夷齊를 본 듯 하여라. ◇ 뜻풀이 *巖畔(암반): 바위가 있는 언저리. *雪中(설중): 눈이 쌓인 곳. 눈 속. *孤竹(고죽): 외롭게 선 대나무. *반가왜라: 반갑도다의 옛말. 반갑구나! *孤竹君(고죽군): 고죽(孤竹)은 은(殷)나라가 망할 무렵에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던 제후국의 하나. 고죽군은 그 곳을 다스리던 군주(君主)를 말한다. *어떠하던인다: '어떠 하더냐'의 옛말. 인다는 의문문 종결어미. *首陽山(수양산):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음. 백이와 숙제가 숨어 살다가 목숨을 마친 곳. *萬古(만고): 오랜 세월. 아주 먼 옛 적. *淸風(청풍): 여기서는 백..

[고시조] (04) '구름이 무심탄 말이' 이존오 (2021.11.05)

[고시조] (4) 구름이 무심탄 말이 / 이존오 구름이 無心탄 말이 아마도 虛浪하다 中天에 떠 있어 任意로 다니면서 구태여 光明한 날빛을 덮어 무삼하리 ◇ 뜻풀이 *구름: 소인(小人), 간신(姦臣)들을 암시한 말. *無心(무심)탄: 무심하다는. *虛浪(허랑)하다: 됨됨이가 허무맹랑하여 믿기 어렵다. *中天(중천): 하늘 한가운데. *任意(임의): 마음대로. *구태여: 굳이. 하필이면. *무삼: 무엇. 무슨의 옛말. ◇ 풀이 구름이 무심하다는 말은 아마도 믿기 어려운가 보다. 해가 중천에 떠 마음대로 떠다니면서 굳이 밝은 빛을 덮은들 무엇하랴. 이 시조는 국정을 바로잡고자 풍속을 어지럽히며, 심지어는 궐내에서까지 음탕한 짓을 자행하던 신돈과 그 밖의 무리들을 비난하여 읊은 듯 싶다. ◇ 지은이 이존오 (李..

[고시조] (03) '이화에 월백하고' 이조년 (2021.11.05)

[고시조] (3) 이화에 월백하고 / 이조년 梨花에 月白하고 銀寒이 三更인 제 一枝 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多情도 病인 樣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뜻풀이 *梨花(이화): 배꽃. *月白(월백)하고: 달이 배꽃을 환하게 비춰주고. *銀寒(은한): 은하수의 다른 이름. *三更(삼경)인 제: 삼경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두 시간을 이름. 한밤중. 삼경인 적에 *一枝春心(일지춘심): 한 나뭇가지에 깃들인 봄의 뜻. *子規(자규): 소쩍새. *多情(다정): 여기서는 사물 자연에 대하여 느끼는 애틋한 정서 ◇ 풀이 배꽃이 하얗게 피어난 가지에 밝은 달이 비치니 꽃은 더욱 희어 보이고, 우러러 은하수의 위치를 살피니 시간이 바로 한밤중이라. 이 배꽃 가지에 서려있는 봄뜻을 어찌 소쩍새 따위가 알랴마는, 나..

[고시조] (02) '춘산에 눈 녹인 바람' 우탁 (2021.11.05)

[고시조] (2) 춘산에 눈 녹인 바람 / 우탁 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 없다 적은 덧 빌어다가 불리과저 머리 위에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 뜻 풀이 *春山(춘산): 새싹이 움트는 봄철의 산. *건듯: 그다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 대강 추려서. 빠르게. 얼핏. *적은 덧: 덧은 매우 짧은 사이. 잠깐 동안. 잠시 *불리과저: 불리고자. 불게 해 보고 싶다. *해묵은: 한 해 또는 여러 해를 넘긴. 여러 해가 된. *서리: 서릿발같이 희어진 머리카락. [풀이] 산에 쌓였던 겨울 눈을 말끔히 녹여내고,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게 한 봄바람이 한동안 불더니만, 어느새 온데 간데 없네. 그 봄바람을 잠시만 빌어다가 이 늙은 머리 위로 불게 해 보고 싶구나. 그리하여 벌써 여러 해가 ..

[고시조] (01) '한 손에 막대 잡고' 우탁 (2021.11.05)

[고시조] 한 손에 막대 잡고 / 우탁(禹倬)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뜻 풀이 *가시: 가시가 돋힌 나무가지를 가리킴. *백발(白髮): 허옇게 센 머리털. *제 먼저: 자기가 먼저. *지름길: 멀리 돌아서 가지 않고도 가깝게 통하는 길. 사잇길. ◇ 풀이 오른 손에는 굵은 막대기를 왼손에는 가시가 돋힌 나무가지를 쥐어 잡고서, 늙어가는 것을 가시 막대로 막으며 한편 나날이 불어나는 센 머리털을 굵은 막대로 쳐물리치고 늙지 않으려 애써 보았건마는, 백발이 막는 낌새를 알아챈 듯, 어쩔 사이없이 지름길로 달려들어 여전히 몸은 늙어만 가는구나! ◇ 지은이 우탁(禹倬, 1263~1342): 고려 후기 충..

[명작수필] '독락(獨樂)' 구활 (2021.11.05)

■ 독락(獨樂) / 구활 수필가 늙는다는 것은 분명 서러운 일이다. 늙었지만 손끝에 일이 있으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쥐고 있던 일거리를 놓고 뒷방 구석으로 쓸쓸하게 밀려나는 현상을 ‘은퇴’라는 고급스런 낱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처절한 고독과 단절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은퇴는 더 서러운 것이다. 방콕(방안에 콕 처박혀 있는 상태)이란 단어가 은퇴자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화백(화려한 백수), 불백(불쌍한 백수),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등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화백이든 불백이든 간에 마음 밑바닥으로 흐르는 깊은 강의 원류는 ‘눈물나도록 외롭다’는 사실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화백도 골프 가방을 메고 나설 때 화려할 뿐이지 그들도 집..

[명작수필] '외가 만들기' 박연구 (2021.11.04)

■ 외가 만들기 / 박연구 쭈.쭈.쭈쭈르르르...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드나들면서 지저귀는 소리다.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들까지 지저귀고 있어서, 집안은 온통 제비 기저귀는 소리로 가득 찬다. 마당에서는 여섯 마리나 되는 강아지들이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논다. 볼수록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집에 살 때 개를 길러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 이렇게 여섯 마리나 실패 없이 길러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더욱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마당 앞 담장 가에는 여남은 그루의 나무들이 각기 다른 얼굴로 눈길을 끌고 있다. 어느 나무인들 정이 안가랴만,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나무로는 앵두나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빨간 열매가 많이 달려있는 것이 꽃들처럼 예쁘게만 보인다. 마당 한쪽..

[명작수필] '수목' 이태준 (2021.11.04)

■ 수목 / 이태준 몇 평 안 되는 마당이나마 나무들과 함께 설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울타리 삼아 둘러준 십수 주(株)의 앵두나무를 비롯하여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와 모란, 백화(白樺)의 한두 그루들, 이들은 우리집 모든 식구들이 다 떠받들어 옳은 귀한 손님들이다. 우리에게 꽃을 주고, 우리에게 열매를 주고, 또 푸른 그늘과 그 맑은 향기를 주는 이들은, 우리에게서 받음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가물면 물을 좀 주는 것이나, 추우면 몇 나무의 밑등을 짚으로 싸주는 것쯤은,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그 아름다움과, 그 맛남과 그 향기롭고 서늘함에 비겨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어느 친구나 어느 당자인들 우리에게 이처럼 주기만 하고 받음이 없음에 태연할 것인가. 자..

[명작수필] '소는 불행하다' 김동명 (2021.11.04)

■ 소는 불행하다 / 김동명 아직도 먼동이 트기 전이니 새벽 네 시쯤이나 되었을까. 논 밭 건너 신작로로부터 달구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저께 도로묵이 많이 났다더니 아마 그걸 싣고 함흥(咸興)장으로 팔러 가나부다. 어제 하루의 멍에 자국이 채 풀리기도 전에, 또 이른 새벽부터 채찍을 받아야 하다니……. 소, 세상에 이보다 더 불행한 짐승이 또 있을까? 자유로운 천지에서 독생독래(獨生獨來)로 거칠 것이 없이 일생을 보내는 산짐승들은 말 말고, 우선 사람의 손에서 길리우는 집짐승만을 가지고 보더라도, 이렇듯 억울하고 처참하게 살아가는 짐승은 다시 없을 것이다. 말이나, 개나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돼지같이 못생긴 놈까지라도 소에게 비긴다면 얼마나 좋은 팔자인가. 그 등에 제왕이나 장상을 앉..

[명작수필] '웃음과 인생' 이희승 (2021.11.04)

■ 웃음과 인생 / 이희승 인생에 웃음이 없을 수 없고, 웃는 곳에 유머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웃음은 하늘의 별과 같다. 웃음은 별처럼 한 가닥의 광명을 던져주고 신비로운 암시도 풍겨준다. 웃음은 또한 봄비와도 같다. 이것이 없었던들 인생은 벌써 사막이 되어버렸을 것인데, 감미로운 웃음으로 하여 인정(人情)의 초목은 무성(茂盛)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웃음은 우리에게 복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웃음에도 여러 가지 색채가 있다. 빙그레 웃는 파안대소(破顔大笑)가 있는가 하면, 깔깔대며 웃은 박장대소(拍掌大笑)가 있다. 깨가 쏟아지는 간간대소(衎衎大笑)가 있는가 하면 허리가 부러질 지경의 포복절도(抱腹絶倒)도 있다. “아하하” 소리를 치는 앙천대소(仰天大笑)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