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작수필] '어린 날의 초상' 문혜영 (2021.11.04)

■ 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우리 가족은 이북에서 살다가 1·4후퇴 때 월남하였습니다. 피난 오면서 아버지를 잃고 또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니, 남은 사람은 어머니와 올망졸망한 우리 네 자매뿐이었습니다. 사선을 넘으면서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 주먹으로 어느 도시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곳의 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방 한 칸 마련할 수조차 없었던 우리의 처지를 생각했음인지 학교에서는 관사에서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 관사지 방이 둘, 부엌이 둘 있는 작은 일본식 집이었습니다. 그나마 방 하나는 숙직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방 하나만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집이 눈에 선합니다. 방과..

[명작수필] '오음실 주인' 윤모촌(2021.11.03)

■ 오음실 주인(梧陰室 主人) / 윤모촌 내 집 마당가엔 수도전(水道栓)이 있다. 마당이라야 손바닥만해서 현관에서 옆집 담까지의 거리가 3 미터밖에 안 된다. 그 담 밑에 수도전이 있고, 시골 우물가의 장자나무처럼 오동나무 한 그루가 그 옆에 서 있다. 이른 봄 해토(解土)가 되면서부터 가을까지, 이 수돗가에서 아내는 허드렛일을 한다. 한여름에는 온종일 뙤약볕이 내려 적지않은 고초를 겪어왔다. 좁은 뜰에 차양을 할 수도 없어서 그럭저럭 지내 오던 터에, 몇 해전 우연히 오동나무 씨가 날아와 떨어져 두 그루가 자생하였다. 처음에는 어저귀싹 같아서 흔하지도 않은 웬 어저귀인가 하고 뽑아 버리려다가, 풀도 귀해서 내버려 두었다. 50센티 가량 자라났을 때야 비로소 오동임을 알았다. 이듬해 봄에 줄기를 도려 냈..

[명작수필] '미리내' 서정범 (2021.11.03)

■ 미리내 / 서정범 은하수를 우리말로 미리내라고 한다. 미리내의 ‘미리’는 용(龍)의 옛말 ‘미르’가 변한 말이고 내는 천(川)의 우리말로서 미리내는 용천(龍川)이란 어원을 갖는 말이다. 어원에서 보면 용은 하늘에서는 은하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자란 시골서는 보통학교 아이들이 기차를 몇 번 봤느냐가 큰 자랑거리였다. 기차를 본 횟수를 늘이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달려가기도 하고 기차를 보려고 밤늦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기차에서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느냐도 큰 자랑거리였다. 하루는 셋이서 새로운 기록을 내려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선로가에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기적을 울리기 때문에 숨어 있다가 지날 때 다가서야 된다. 기차가 굽이를 돌아 나타나자 뛰어나갔다..

[명작수필] '도마뱀의 사랑' 이범선 (2021.11.03)

■ 도마뱀의 사랑 / 이범선(李範宣)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집의 벽을 수리하기 위해서 뜯었다. 일본집의 벽이라는 것은 그들의 말로 소위 ‘오가베’라 하여 가운데에 나무로 얼기설기 대고 그리고 그 양쪽에서 흙을 발라 만드는 것으로서 속이 비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벽을 뜯다 보니까 벽 속에 도마뱀 한 마리가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그 도바뱀은 그저 보통 갇힌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벽 밖에서 안으로 박은 긴 못에 꼬리가 물려 꼼짝도 못하게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집 주인은 그 도마뱀이 가엾기도 하려니와 약간 호기심이 생겨 그 못을 조사해 봤다. 집 주인은 놀랐다. 그 도마뱅의 꼬리를 찍어 물고 있는 못이 바로 십 년 전 그 집을 지을 때 벽을 만들며 박은 못이였던 것이다..

[명작수필] '이명(耳鳴)' 김종완 (2021.11.03)

■ 이명(耳鳴) - 김종완 살아 계실 적에 어머님은 귀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몇 번 진찰을 받으셨으나 의사는 노화에 따른 현상이므로 특별한 치료책이 있을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어머님은 저승까지 그 귀찮은 소리를 갖고 가셨다. 그런데 나에게도 얼마 전부터 이명이 찾아왔다. I.M.F 사태는 학원업을 하는 나 같은 영세 사업자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형편상 직원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공백을 메꾸는 일은 원장인 내 몫이 되었다. 하루 10시간이 넘은 과로가 계속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밀린 원고와 새벽까지 씨름을 했다. 사십 중반을 넘긴 체력은 옛같지 않았다. 한참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지러움증이 기습을 했다. 팽ㅡ. 중심이 흐트러지며 맥없이 옆으로 쓰러져가는 ..

[명작수필] '아들과 떠난 여행' 조정래 (2021.11.03)

■ 아들과 떠난 여행 / 조정래 나는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밖에 없다. 옛말로 손이 귀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하나만 두기로 했던 것이다. 그건 국가에서 많은 돈 들여 벌여온 산아제한 정책에 호응해서가 아니었다. 문학이란 것을 하면서 많은 자식을 키워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고, 사남 사녀나 되는 내 형제들과 가난 속에서 부대끼고 다투며 살아온 것이 끔찍스러웠던 것이다. 아들 하나만을 갖게 된 나의 단호한 결정은 좋았다. 그러나 그 결정이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아들이 차츰 커가면서 확인되고 확대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외로움을 탔고, 형제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인형을 손에서 떼지 못했으며,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성적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아이는 그런 환경에 처한 것만이 아니었다. ..

[명시감상] '물푸레나무' 박정원, '물푸레나무' 박형권,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이향아 (2021.11.03)

■ 물푸레나무 / 박정원 사랑이여 그대가 물푸레나무인 줄 몰랐다 물푸레― 라고 숨죽여 읊조리면 그대 우러르는 먼 산이 시 한편 들려주고 돌아보는 뒷모습이 그림 한 장 남겨줬다 물푸레나무 아래서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듯이 사랑이여 나는 그대가 사랑인 줄 몰랐다 웃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치어다볼 때마다 정강뼈 아래 물빛을 온통 물푸레로 물들이던 사랑이여 물푸레 옆에서 물푸레를 몰랐다 점점 내가 물푸레로 번져가는 것을 몰랐다 물푸레 물푸레 되뇌기만 하면서 맑은 물 한 종지 건네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 물푸레나무 / 박형권 저 나무, 물푸레나무 안에 들어가 살림 차리면 숟가락과 냄비를 들고 부름켜로 들어가 방 한 칸 내고 엽서만한 창문을 내고 녹차 물을 끓이면 지나가던 달빛이 창문에 흰 이마를 ..

[명시감상] '물푸레나무 사랑' 나병춘,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김명인, '옛날과 물푸레나무' 황금찬 (2021.11.03)

■ 물푸레나무 사랑 / 나병춘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40년이 걸렸다 물푸레나무는 길가에 자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얼마나 바랬을까 중학교 생물 선생님은 허구한 날 지각을 일삼는다고 회초리를 후려쳤는데 그것이 물푸레나무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늦가을 도리깨질할 때마다 콩, 녹두, 참깨를 털어내면서도 그게 물푸레나무라 얘기해주지 않았다 아버지 선생님 탓은 안 할란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들꽃을 사랑한다면서도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이렇게 오래토록 지각하였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이 땅의 시어미들은 며느릴 호되게 다그치면서도 그 풀꽃 이름들 하나 하나 이쁘게 부르면서 넌 잡초야, 구박하지 않았다 ■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 김명인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

[명작수필]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구효서 (2021.11.03)

■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 구효서 어딘가에 쓴 적이 있다. 아버지와 평생 나눈 대화를 원고지에 적는다면 다섯 장이 아닐 거라고. 아버지는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근엄한 것과는 달랐다. 삶 자체가 아버지에겐 견디는 거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논과 밭의 땡볕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산과 들에 사는 나무와 바위처럼 아버지에겐 표정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도 평생에 두 번 정도는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기억은 구봉서 배삼룡의 ‘웃으면 복이와요’를 보던 중이었다. 참고 있던 웃음을 당신도 모르게 놓쳐버렸던 것이다. 킥, 하고 새어나온 웃음 때문에 아버지는 여간 당황하지 않았다. 식구들도 사색이 되었다. 0.5초도 지속되지 못한 아버지의 짧은 웃음 때문에 ..

[명작수필] '딸깍발이' 이희승 (2021.11.03)

■ 딸깍발이 / 이희승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 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워서 머리가 희끗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