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음실 주인(梧陰室 主人) / 윤모촌
내 집 마당가엔 수도전(水道栓)이 있다. 마당이라야 손바닥만해서 현관에서 옆집 담까지의 거리가 3 미터밖에 안 된다. 그 담 밑에 수도전이 있고, 시골 우물가의 장자나무처럼 오동나무 한 그루가 그 옆에 서 있다.
이른 봄 해토(解土)가 되면서부터 가을까지, 이 수돗가에서 아내는 허드렛일을 한다. 한여름에는 온종일 뙤약볕이 내려 적지않은 고초를 겪어왔다. 좁은 뜰에 차양을 할 수도 없어서 그럭저럭 지내 오던 터에, 몇 해전 우연히 오동나무 씨가 날아와 떨어져 두 그루가 자생하였다. 처음에는 어저귀싹 같아서 흔하지도 않은 웬 어저귀인가 하고 뽑아 버리려다가, 풀도 귀해서 내버려 두었다. 50센티 가량 자라났을 때야 비로소 오동임을 알았다.
이듬해 봄에 줄기를 도려 냈더니 2미터 가량으로 자라, 한 그루는 자식놈 학교에 기념 식수감으로 들려 보냈다.
오동은 두어 번쯤 도려내야 줄기가 곧게 솟는다. 이듬해 봄에 또 도려냈더니 3년째에는 훌쩍 솟아나서, 대인의 풍도답게 키(箕)만큼씩한 큰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올해로 5년째, 그 수세는 대단해서 나무 밑에 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 위치가 현관에서 꼭 2미터 반 지점에 서 있다. 잎이 무성하면 수돗가는 물론이고, 현관 안 마루에까지 그늘을 드리워 여름 한철의 더위를 한결 덜어 준다. 한가지 번거로움이 있다면, 담을 넘어 이웃으로 벋는 가지를 쳐주어야 하는 일이다. 더위가 한창인 팔월에도 처서만 지나면, 가지 밑의 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래서 이웃으로 벋은 가지를 쳐주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짐짓 오동나무가 타고난 팔자를 생각하게 된다. 바람을 타고 가던 씨가 좋은 집 뜰을 다 제쳐 놓고, 하필이면 왜 내 집 좁은 뜰에 내려와 앉았단 말인가.
한여름 낮, 아내가 수돗가에서 일을 할 때면, 오동나무 그늘에 나앉아 넌지시 얘기를 건넨다. 빈주먹인 내게로 온 아내를 오동나무에 비유하는 것이다.
“오동나무 팔자가 당신 같소, 하필이면 왜 내 집에 와 뿌리를 내렸을까.”
“그러게 말이오, 오동나무도 기박한 팔자인가 보오. 허지만 오동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남을 즐겁게 해주지, 우리는 뭐요.”
“남에게 덕을 베풀지는 못해도 해는 끼치지 않고 분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소.”
구차한 살림속에서 오동나무의 현덕만큼이나 드리워진 아내의 그늘을 의식한다.
이전에 함께 학교에 있었던 S씨의 말이 나이들수록 가슴으로 젖어든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막걸리잔을 나누던 자리에서, 그는 찌든 가사 얘기 끝에 아내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낀다고 하였다. 여러 자녀를 데리고 곤히 잠들고 있는 주름진 아내를 밤 늦게 책상머리에서 내려다보면 미안한 마음뿐이더라고 했다. 나잇살이나 먹으니 내조가 어떤 것인가를 알겠더라며 그는 헤식게 웃었다. 진솔한 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어, *점두를 했던 일이 오래 전 일이건만 어제 일같다.
언젠가 충무로를 걷다가, 길가에 앉아 신기료 장수에게 구두를 고치고 있는 중년 여인을 본 일이 있다. 그 여인상이 머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거리에서 구두를 고치던 중년이 돋보이는 내 나이ㅡ 생활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은 알 듯하다. 내게로 온 이래 손톱 치장 한번 한 일 없이 푸른 세월을 다 보낸 아내를 보면, 살아가는 길이 우연처럼 생각된다. 세사(世事)는 무릇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이라 하던가, 남남끼리 만나 분수대로 인생을 가는 길목에, 오동나무 씨가 날아와 반려가 된 것도 그런 것이라 할까.
좁은 뜰에 나무의 성장이 너무 겁이 나서 가지끝을 잘라 주었다. 여남은 자 가량으로 키는 머물렀지만, 돋아나온 지엽이 또 무성해서 지붕을 덮는다. 이 오동의 천수는 예측할 수 없고, 내가 이 집에 머무는 한은 그늘 덕을 입게 될 것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벨 생각이지만, 오동은 벨수록 움이 나와 다음 주인에게도 음덕을 베풀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이재(理財)에 밝아 오동을 심지만, 선인들은 풍류로 오동을 심었다. 잎이 푸를 때는 그늘이 좋고, 낙엽이 지면 빈 가지에 걸리는 달이 좋다. 여름엔 비 듣는 소리가 정감을 돋우고, 가을 밤엔 잎 떨어지는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오엽(梧葉)에 지는 빗소리는 미상불 마음에 스민다.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떨어지자 자폭한 김상용 그분은, 다시는 잎 넓은 나무를 심지 않겠다 하고, 오엽에 지는 빗소리에 상심과 장한을 달랬다 한다.
달은 허공에 떠 있는 것보다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가 더 감흥을 돋운다 하였지만, 현관문을 나서면 나뭇가지에 와서 걸린 달이 바로 이마에 와 닿는다. 빌딩가에 걸린 달은, 도심의 소음 너머로 플래스틱 바가지처럼 보이지만, 내 집 오동나무에 와 걸리면 신화와 동화의 달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소녀의 감동만큼이나 서정의 초원을 펼쳐 주고, 어린 시절의 고향을 불러다 준다.
선조 때 문신에 오음이라고 호를 가진 분이 있다. 그의 아우 월정과 더불어 당대의 명신으로 불리던 분이다. 호는 인생관이나 취향에 따라 짓는 것이라 하지만, 아우되는 분의 월정에선 재기가 번득이고 감상적이며, 맑고 가벼운 감이 있으나, 오음에서는 중후하고 소박하고 현묵함을 느끼게 한다. 두 분의 성품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음 쪽이 깊은 맛이 난다. 내 집 오동나무의 그늘을 따서 나도 오음실주인쯤으로 당호를 삼고 싶지만 명현의 이름이나 호는 함부로 따 쓰는 법이 아니라고 한 할아버지의 지난날 말씀이 걸려 선뜻 결단을 못하고 있다.
처서까지 오동은 성장을 계속해서, 녹음은 한껏 여물고 짙어진다. 음칠월을 오추(梧秋) 또는 오월(梧月)이라고 부르는 뜻을 알 만하다. 옛부터 오동은 거문고와 가구재로 애용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이다. 편지에 쓰이는 안하니 하는 글자 외에도, 책상 옆이라는 뜻으로 오우(梧右) 혹은 오하(梧下)라고 쓰는 것을 보면, 선인들은 으레 책상을 오동으로 짠 것 같다. 동재가 마련될 때는 친구에게도 나누어서 필통도 깎고 간찰(簡札)꽂이도 만들어 볼까 한다.
무료하면 오동나무를 쳐다보게 되고, 그럴 때마다 찌든 내 집에 와 뿌리를 내린 오동나무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1979년 1월 한국일보 신춘 문예 수필부분 당선작)
*점두: 승낙하거나 찬성하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 2021.11.0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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