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웃음과 인생' 이희승 (2021.11.04)

푸레택 2021. 11. 4. 12:46

■ 웃음과 인생 / 이희승

인생에 웃음이 없을 수 없고, 웃는 곳에 유머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웃음은 하늘의 별과 같다. 웃음은 별처럼 한 가닥의 광명을 던져주고 신비로운 암시도 풍겨준다.

웃음은 또한 봄비와도 같다. 이것이 없었던들 인생은 벌써 사막이 되어버렸을 것인데, 감미로운 웃음으로 하여 인정(人情)의 초목은 무성(茂盛)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웃음은 우리에게 복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웃음에도 여러 가지 색채가 있다. 빙그레 웃는 파안대소(破顔大笑)가 있는가 하면, 깔깔대며 웃은 박장대소(拍掌大笑)가 있다.

깨가 쏟아지는 간간대소(衎衎大笑)가 있는가 하면 허리가 부러질 지경의 포복절도(抱腹絶倒)도 있다. “아하하” 소리를 치는 앙천대소(仰天大笑)가 있는 반면에 헤식디 헤식헤 히죽히죽거리는 김 빠진 웃음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웃음들은 우리 인생에 아무 해로울 것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위안을 베풀고, 활기를 복돋는 덕을 남겨놓을 뿐이다.

그러나 웃음은 언제나 우리를 복된 동산으로만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남을 깔보고 비웃는 냉소도 있고, 허풍을 떨고 능청을 부리는 너털웃음도 있다. 대상(對象)을 유혹하기 위하여 눈초리에 간사가 흐르는 눈웃음이 있는가 하면, 상대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억지로 지어 웃는 선웃음이란 것도 있다.

사람은 기쁠 때 웃고 슬플 적에 운다고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기쁨이 너무 벅차면 눈물이 나고 슬픔이 극도에 이르면 도리어 기막힌 웃음보가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탄식의 웃음이요, 절망의 웃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단의 예들이요, 대체로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것이 정상적으요 일반적이 아닐 수 없다.

마음 속에 괴어 오르는 감정을 표면에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써 군자(君子)의 덕(德)을 삼든 동양에 있어서는, 치자다소(痴子多笑;어리석은 사람이 잘 웃는다)라 하여 너무 헤프게 웃는 것을 경계하여 왔다. 감정적 동물인 인간으로부터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불현어외(不顯於外)하는 신(神)의 경지에까지 접근하려는 노력과 욕구의 나머지의 지나친 기우(杞憂)가 아니었을까.

이보다는 오히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하여, 웃음은 상대자의 분노까지도 해소시키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서양 속담에는 ‘항상 웃고 지내라’(Always keep smile) 것이 있고 일본에도 ‘웃는 집에 복이 온다’는 속담이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로, 이왕이면 사람은 웃고 지낼 것이다. 우리는 웃음에 너무 인색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양약(良藥)도 정도를 넘으면 도리어 병이 더치게 되고, 양분(養分)도 과식(過食)을 하면 배탈이 나기 쉬운 까닭으로 치자다소(痴子多笑)라하여 인간처신(人間處身)의 절조 있는 교훈을 주려 한 것이지 결코 웃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말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이 인생의 정원(庭園)이라 하면, 웃음은 그 정원의 화단(花壇)이라 할 것이다. 대개 꽃은 지상(地上)의 별이요, 별은 천상(天上)의 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마음의 우울을 제거하고, 정서(情緖)의 황야를 개척하여, 별을 빛내고 꽃을 피우며 살아야 하겠다. 물질문명이 극도로 고조되는 현대일수록 인간기계화(人間機械化)의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도 우리는 더욱 웃음의 화원(花園)을 성실히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출전] 《한국대표수필문학전집》 이희승 《유머 철학 》 (을유문화사, 1979년)

/ 2021.11.0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