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구효서 (2021.11.03)

푸레택 2021. 11. 3. 08:36

■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 구효서

어딘가에 쓴 적이 있다. 아버지와 평생 나눈 대화를 원고지에 적는다면 다섯 장이 아닐 거라고.

 아버지는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근엄한 것과는 달랐다. 삶 자체가 아버지에겐 견디는 거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논과 밭의 땡볕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산과 들에 사는 나무와 바위처럼 아버지에겐 표정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도 평생에 두 번 정도는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기억은 구봉서 배삼룡의 ‘웃으면 복이와요’를 보던 중이었다. 참고 있던 웃음을 당신도 모르게 놓쳐버렸던 것이다. 킥, 하고 새어나온 웃음 때문에 아버지는 여간 당황하지 않았다. 식구들도 사색이 되었다. 0.5초도 지속되지 못한 아버지의 짧은 웃음 때문에 식구들은 황망히 천장을 보거나 서둘러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했다.

 두 번째는 텔레비전 때문이었다. 그 날은 넷째 매형 될 사람이 첫인사를 온 날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위 될 사람에게 아버지는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거부의 의사는 아니었다. 앞의 세 매형들 때도 마찬가지였으나 결국 다 결혼에 성공했으니까.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수저 소리만 달그닥거렸다.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직 폭력배 소탕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표정은 아버지만큼이나 무뚝뚝했다.

 소탕되었다는 조직의 이름을 다분히 근엄한 목소리로 아나운서가 말했을 때 아버지의 두 번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킥,이었고 0.5초였다. 폭력조직 이름이 ‘콩나물파’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웃고 나자 ‘콩나물파’라는 말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웃음에 스스로 민망해져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식구들 모두 터질 것처럼 얼굴이 벌개졌다. 그때 매형될 사람의 기지가 발동했다. 김치 국물을 바지에 쏟았다. 어머니가 사위 될 사람을 수둣가로 얼른 안내했고, 나머지 식구들도 일부러 수선을 피우고 우왕좌왕하며 곤경에서 벗어났다. 그날로 결혼 허락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언제나 무뚝뚝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등록금 때문에 아버지가 대학진학을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던 나는 합격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버지로부터 합격 선물로 시계를 받고 나서야 뒤늦게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손목시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가슴이 메어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집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 치매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보고서야 비로소 곡이 터져 나왔다. 다섯 살 적 어느 여름날, 아버지가 품속에서 꺼내주던 주먹만한 복숭아도 지금에서야 떠오른다.

 두 번의 웃음. 합쳐봤자 1초에 지나지 않는 슬픈 웃음이지만, 그래서 더 오래도록 간절하게 그리운 건지 모르겠다. 그토록 짧은 웃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버지의 고달픈 생을 오늘까지 두고두고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글=구효서 소설가 (1958 ~ )

소설가. 인천 강화도 생,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소설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등 다수.

/ 2021.11.0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