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작수필] '이 가난한 11월을' 손광성 (2021.10.30)

■ 이 가난한 11월을 / 손광성 11월은 가을이 아니다. 겨울도 아니다. 11월은 늦가을과 초겨울이 만나는 그 언저리 어디쯤이다.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들어 있지만 그것은 달력 속의 절후에 지나지 않는다. 비가 오다가 눈이 되기도 하고, 눈이 다시 비로 변하는 달, 진눈깨비의 달, 노란 산국화도 보랏빛 쑥부쟁이며 구절초도 11월에는 모두 빛을 잃는다. 도요새와 기러기와 그리고 갈까마귀 같은 철새들이 날아오고 또 날아가는 계절. 초록이 바래버린 덤불에서 작은 열매들이 마지막 햇볕을 즐기고 있을 때, 새들은 높이 날아 멀리 길을 떠난다. 떠나는 것이 어디 철새들만이겠는가. 11월이 되면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난다. 무엇을 잃은 것 같아 차표를 사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밤차에 몸을 싣는다. ..

[명작수필] '생활과 행복' 윤오영 (2021.10.30)

■ 생활과 행복 / 윤오영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해먹고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살아가기가 바빠서 아무런 오락이나 향연의 여유도 없이 판에 박은 듯한 생활을 되풀이하는 가난한 한국인의 생활을 보고, 어느 미국 사람이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에 왜 사는지 알 수 가 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있고 냉장고가 있고 자동차가 있는 문화 주택에 사는 미국 사람이 생활고에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어느 한국 사람이 “그것은 너무 복이 과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그런 부자나라에서 자살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얼른 생각하면 서로 당연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저마다 행복한 생활을 희구하고 했건만 행복하지를 못했다. 예전에 어느 호강하는 대신이 달밤에 시골 산모롱이를 지나다가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늙..

[명작수필] '노송과 나, 우리는 서로 지기' 박희진 시인 (2021.10.30)

■ 노송과 나, 우리는 서로 지기 / 박희진 시인 나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싫은 나무가 사실은 없지만, 어떤 나무도 소나무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소나무는 나무 중의 귀공자인 것이다. 왜 잘 생긴 소나무에겐 속인이 함부로 대하기 힘든 기품이 있는 걸까? 일가풍을 이룬 철학자, 초탈한 신선, 또는 풍류를 즐기는 도인과도 같다. 소나무가 자아내는 분위기에는 그런 고매한 품위와 아취를 감득하게 하는 무엇이 분명 있다. 내가 그 중 좋아하는 소나무는 노송이다. 수령 이삼백 년은 거뜬히 넘긴 소나무라야 누가 보든지 노송답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노송답다는 말은 노송으로서 갖추어야 할 격, 송격松格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격을 갖추어야 운치가 생긴다. 이른바 명품송이란 이 격과 운치가 각별히 뛰..

[명작수필] '달팽이' 손광성 (2021.10.30)

■ 달팽이 / 손광성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 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소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년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가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나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 하..

[명작수필] '도마 소리' 김소운 (2021.10.30)

■ 도마 소리 / 김소운 진해 군항 - 인구 밀도로는 부산의 십분의 일이 못 될 -은 물이 흔하고 모기 많기로 유명하 벚꽃 명승지, 이 진해에서 나는 어려서 몇 해를 자랐다. 여기서 처음 소학교를 다니고, 여기서 첫사랑을 알고-. 내 알뜰이는 골무를 깁고 냉이를 캐는 시골 처녀였다. 집안끼리 공연한 사랑이건마는 손목 한 번 숫제 쥐어 보지 못하고 연이는 딴 데로 시집을 갔다. 마을 부인네들의 산놀이에 30리 거리를 두고도 우리 집 마루에서 나는 연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시력의 한계를 지난 또 하나의 눈-. 그토록 젋은 순정을 기울였던 연이를 내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원인은 내게 있지 않고 연이가 저지른 작은 과실 때문이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동경 거리에서 연이의 오빠인 I를 만났다. 그 입으로 ..

[명작수필] '새벽 느티나무 아래에서' 곽재구 시인 (2021.10.28)

■ 새벽 느티나무 아래에서 / 곽재구 시인 향림골이라는 동네 이름이 마음에 들어 이삿짐을 부린 첫날 새벽이었다. 아직 풀지 못한 짐 상자들 사이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꼬끼∼요. 기골이 장대한 수탉의 울음소리였다. 한꺼번에 골짜기 안의 어둠을 밀어내 버릴 듯 연거푸 울어대는 녀석의 울음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것이 시초였다. 녀석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잦아드는 순간 이번에는 마을 안의 다른 닭들이 화답을 하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의 시간들 속으로 닭들의 울음소리가 봄산의 진달래 꽃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야, 내가 이사 온 것을 축하하느라 동네의 닭들이 한 목청 뽑는 거라구… 엉뚱한 상상력까지 겸하여 잠자리 속의 나는 썩 포근해졌다. 둘째 날 ..

[명작수필] '나무야, 아이야, 푸른 5월아' 김용택 시인

■ 나무야, 아이야, 푸른 5월아 / 김용택 시인 봄꽃들이 피어나며 산과 들을 화려하게 수놓더니, 금세 지고 이제 산과 들에는 나무 잎들이 새로 피어 우거진다. 세월은 꽃피고 지고 잎 피는 그 색깔들을 따라 빨리빨리 흐른다. 길가나, 강가, 밭 언덕에는 벌써 무더기무더기 하얀 찔레꽃들이 피어난다. 마음껏 푸르러지는 언덕에 하얀 찔레꽃 꽃 덤불은 지루해지려는 녹색 위에 눈이 부시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분교에도 푸름은 여지없다. 푸름 속에 둘러싸인 학교 운동장은 유난히 햇살이 가득해 보인다. 그 햇살 가득한 운동장에 아이들이 햇살을 차며 이리저리 거침없이 뛰어다닌다. 보기 좋고 아름답다. 아이들의 거침없는 몸짓들은 마치 물고기들이 맑은 물살을 차며 노는 것처럼 눈부시다. 언제 바라보아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

[명작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 (2021.10.28)

■ 가난한 날의 행복 / 김소운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 버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歡迎)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回想)이 있다. 여기에 적는 세 쌍의 가난한 부부(夫婦)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옛날 이야기지만, 내게 언제나 새로운 감동(感動)을 안겨다 주는 실화(實話)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新婚夫婦)였다. 보통(普通)의 경우(境遇)라면, 남편이 직장(職場)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反對)였다. 남편은 실직(失職)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會社)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

[명작수필] '거룩한 본능' 김규련 (2021.10.28)

■ 거룩한 본능 / 김규련 수필가 동해안 백암(白巖) 온천에서 눈이 쌓인 주령(珠嶺)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겨우내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 첫 고을인 수비면(首比面)으로, 대구(大邱)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산비탈에 농가가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난한 자연 촌락이다. 이 근방에는 천혜(天惠)의 절경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 고장 사람들 자신이, 그 절경을 이루는 웅장한 산이며 기암 절벽이며 눈 덮인 수림이며 산새며 바람 소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이들의 주된 생업은 채소(菜蔬) 농사와 담배 농사지만, 철 따라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들이기도 ..

[명작수필] '선생님의 나무' 윤대녕 소설가 (2021.10.28)

■ 선생님의 나무 / 윤대녕 소설가 나에겐 불행하게도 스승이 없다. 때문에 스승을 둔 사람들을 몹시도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타고난 운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지복임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달았다. 삶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단 한마디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부러운 마음을 품었다. '나는 고독한 팔자구나'라고 생각했다. 단 한 사람, 내게 삶의 영감을 준 사람이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졸업을 한 뒤로 사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뵌 적이 없으니,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힘이 들 때면 늘 그분이 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교실에서 마지막 종례를 했다. 밖에는 눈이 퍼붓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