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작수필] '돌의 미학' 조지훈(趙芝薰) (2021.11.07)

?? 돌의 미학 / 조지훈 돌의 맛─그것도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의 마당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지,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凜然)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를 맛보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서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 동양화, 더구나 수묵화의 정신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다. 파초 잎새 위에 백설을 듬뿍 실어놓기도 하고, 10리 둘..

[고시조] (10) '오백년 도읍지를' 길재 (2021.11.06)

[고시조] (10) 오백년 도읍지를 - 길재(吉再) 五百年 都邑地를 匹馬로 돌아드니 山川은 依舊하되 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太平煙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 뜻풀이 *오백년 도읍지: 고려조 500년의 서울이던 개성을 가르킨다. *匹馬(필마): 한 필의 말. *依舊(의구)하되: 옛 모습대로 남아 있건마는. *人傑(인걸): 뛰어난 사람. 빼어난 사람. *어즈버: 아아! 슬프다. 애닯다! 시조(時調) 종장(終章) 첫마디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太平烟月(태평연월): 태평한 세월. 살기 좋은 시절. *꿈이런가: ~런가는, ~던가, ~이었던가?의 옛말이다. ◇ 풀이 고려의 오백년 왕조가 도읍하던 옛 서울을 한 필의 말에 몸을 싣고 외롭게 들어와 보니, 산천의 모습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건마는 이름을 떨치던 많은..

[고시조] (09) '백설이 잦아진 골에' 이색 (2021.11.06)

[고시조] 백설이 잦아진 골에 - 李穡(이색) 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梅花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夕陽에 홀로 서이서 갈 곳 몰라 하노라 ◇ 뜻풀이 *白雪(백설): 흰 눈. *잦아진 골: 잦아 든, 없어진 골짜기. *머흘레라: 머흘다는 험하다의 옛말. 험한 구름이 몰려 들었구나! *梅花(매화): 이른 봄에 잎보다 꽃이 먼저 흰 빛 또는 연분홍 빛으로 핀다. 청절(淸節)을 상징한다. *夕陽(석양): 저녁 무렵 *서이서: 서서의 옛말씨이다. ◇ 풀이 눈이 녹아 없어진 골짜기에 험한 구름이 몰려 들었구나! 맑은 절개를 가르치므로 보기만 해도 반가운 매화꽃은 어디에 피어 있을까? 날이 저물어 가건마는, 나그네는 외로이 서서 갈 곳을 모르는 듯 망서리고 있고나. ◇ 지은이 이색(이색): 고려 말..

[고시조] (08) '이 몸이 죽고 죽어' 정몽주 (2021.11.064)

[고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 鄭夢周(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 番 고쳐 죽어 白骨이 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뜻풀이 *고쳐 죽어: 다시 죽어 *白骨(백골): 죽은 지가 오래서 살이 없어지고 삭아빠진 흰 뼈. *塵土(진토): 티끌과 흙. 뼈마저 삭아서 한 줌의 흙 먼지가 되고 마는 것을 말한다.. *넋: 영혼. 정신. *님: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킴.. *一片丹心(일편단심): 한 조각 붉은 마음. 곧 충성된 마음. *가실 줄이: 변할 수가. 바뀔 리가. ◇ 풀이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백 번을 다시 태어났다가 다시 죽어서. 흙에 묻힌 흰 뼈가 한 줌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없어지고, 혼백이 남아 있건 없건 간에. 임금님께 바치는 한 조각 붉은 마음이..

[고시조] (07) '가마귀 싸우는 골에' 정몽주 어머니 (2021.11.06)

[고시조] 가마귀 싸우는 골에 - 정몽주 어머니 가마귀 싸우는 골에 白鷺야 가지 말아 성난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滄浪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 뜻풀이 *가마귀: 까마귀의 옛말. *골: 골짜기 *白鷺(백로): 해오라기. 부리 목 다리가 모두 길고, 깃과 털이 새하얗다. *새오나니: 샘내나니. 시기하나니. 미워하나니. *滄浪(창랑): 푸른 물결. *좋이: 여기서는 好의 뜻이 아니라 정결(淨潔)의 뜻이므로, 깨끗이 또는 알뜰히의 뜻. *더러일까: 더럽힐까의 옛말. ◇ 풀이 검은 까마귀같이 나쁜 무리들이 몰려들어 싸우는 곳에 백로와도 같이 희맑은 너는 가지 말아라. 성이 난 까마귀 떼들이 새하얀 네 모습을 시기하며 미워할 것인즉. 푸른 물에 알뜰히 씻은 네 흰 몸털을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되는구나..

[고시조] (06) '녹이상제 살지게' 최영 (2021.11.06)

[고시조] 녹이상제 살지게 - 최영(崔瑩) 騄耳霜蹄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타고 龍泉雪鍔 들게 갈아 두러메고 丈夫의 爲國忠節을 세워 볼까 하노라 ◇ 뜻풀이 *騄耳(녹이):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날랜 말.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천하를 두루 다닐 적에 탔다는 팔준마(八駿馬) 중에 하나. *霜蹄(상제): 날랜 말의 굽. 또는 날랜 말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녹이와 아울러 하루 천리길을 달리는 날랜 말을 의미한다. *龍泉(용천): 옛날 중국에 있었던 보검의 하나. *雪鍔(설악): 악은 칼날 악이니, 곧 번쩍이는 칼날. 잘 베어지는 칼날을 말함. *두러메고: 둘러메고의 옛말. *丈夫(장부): 본 뜻은 다 자란 사내를 말함이나, 흔히 씩씩한 사나이란 뜻으로 쓰인다. 대장부의 준말. *爲國忠節(위국충절): ..

[명작수필] '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구활 (2021.11.06)

■ 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 구활 “아범아, 우리집 화단에도 박산꽃나무 한 그루를 심었으면 좋겠구나. 고향 밭둑에도 더러 서 있고 야산 발치에 흔하게 있는 흰 꽃이 눈송이같이 피는 나무 말이다. 내사 이름을 몰라 박산꽃나무라고 부르고 있다마는. 왜 조선네 짐 앞마당에 봄이 무르익을 무렵에 튀밥을 튀겨 놓은 것같이 암팡지게 생긴 나무 말이다.” 아침을 들기 전에 맨손체조라도 할 겸 옥상에 올라가면 한 뼘 꽃밭에 물을 주고 계시는 어머니를 만난다. 옥상 꽃밭은 이 집을 지을 때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붉은 장미 몇 그루와 석류와 목련 각 한 그루씩을 심어 제법 곷밭 티가 나도록 만든 것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한번도 흙을 떠나 본 일이 없는 어머니를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도시로 모셔온 지도 벌써..

[명작수필] '서울 뻐꾸기' 윤모촌 (2021.11.06)

■ 서울 뻐꾸기 / 윤모촌(尹牟邨 이른 아침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이 마을에 가득하다. 소나기가 걷힌 뒤라서 물기를 머금은 울음소리가 싱그럽다. 해마다 듣는 소리지만 그놈의 울음을 듣고 있으면 까닭도 없이 수심(愁心)에 잠겨,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처량하기 그지없다. 봄이 깊어져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성화같이 울지는 않으나, 간간이 바람을 타는 먼데 소리가 심금을 더 울린다. 그 울음소리가, 야삼경(夜三更) 에 우는 접동새만 못해도 , 봄날 한나절 우는소리엔 애상(哀傷)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강산 깊고 짧은 물줄기의 유역과, 높고 낮은 산자락에서 우는 그놈의 울음은 청상(靑孀)의 한(限) 처럼 처량하다. 가난하고 서럽던 역사를 정선 아리랑으로 뽑아..

[명작수필] '5월의 산골짜기' 김유정 (2021.11.06)

■ 5월의 산골짜기 /김유정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삑 둘러섰고 그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속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50여 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요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졸졸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5월쯤 되면 농가에는 한창 ..

[명작수필] '풍류는 해학이다' 구활 (2021.11.06)

■ 풍류는 해학이다 / 구활 수필가 내 서재 이름은 류개정이다.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따온 말이다. 난생 처음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시멘트 공간이 너무 답답할 것 같아 달력 한 장을 찢어 뒷면에 매직펜으로 류개정流開亭이라 썼다. 아호가 없으니 이름을 쓰고 화가들이 낙관을 하듯 목도장까지 찍었더니 그럴듯한 당호 편액이 되었다. 수류화개, 물 흘러가는 계곡에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풍류의 극치다. 계류수에 언뜻언뜻 비치는 구름은 덤이며, 꽃 덤불 사이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우수다. 이를 운부조명雲浮鳥鳴이라고 하면 사자성어로 말이 될라나 모르겠다. 중국 송나라 때 황산곡黃山谷이란 시인이 읊은 ‘구만리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가 오도다. 빈산엔 사람조차 없는데 물이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