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고시조] (21) '가마귀 눈비 맞아' 박팽년(朴彭年) (2021.11.14)

■ 가마귀 눈비 맞아 / 박팽년(朴彭年)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夜光明月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一片丹心이야 變할 줄이 있으랴? [뜻풀이] *가마귀: 까마귀의 옛말. *검노매라: 검는구나! ‘~노매라’는 ‘~구나’의 옛말씨. *야광명월(夜光明月): 야광과 명월은 각기 밤에도 빛나는 구슬의 이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조각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곧 ‘가슴속의 충성된 마음’을 뜻한다. [풀이] 까마귀가 눈비를 맞으면 잠시 희어지는듯 하지만, 이내 도로 검어지고야 마는구나! 그렇지만 밤에 빛나는 야광(夜光)이나 밝은 달인 명월(明月)같은 구슬이야 ,어찌 밤이라고 빛나지 않을 수 있으랴? 어린 임금께 이미 바쳐온 이내 가슴속의 충성된 마음이야 변할 리가 있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는 ..

[명작수필] '바보네 가게' 박연구(朴演求) (2021.11.13)

■ 바보네 가게 / 박연구(朴演求) 우리 집 근처에는 식료품 가게가 세 군데 있다. 그런데 유독 ‘바보네 가게’로만 손님이 몰렸다. ‘바보네 가게’- 어쩐지 이름이 좋았다.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쌀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깍쟁이 같은 인상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값을 주고 샀을지라도 싸게 산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어째서 ‘바보네 가게’로 부르는가고 물어보았다. 지금 가게 주인보다 먼저 있던 주인의 집에 바보가 있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불러오고 있는데, 지금 주인 역시 그 이름을 싫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집에서는 콩나물 같은 건 하나도 이를 보지 않고 딴 가게보다 훨씬 싸게 주어 버려 다른 물건도 으레 싸게 팔겠거니 싶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거다. 어느 작..

[명작수필] '양잠설(養蠶說)' 윤오영(尹五榮) (2021.11.13)

■ 양잠설(養蠶說) / 윤오영 어느 촌 농가에서 하루 저녁 잔 적이 있었다. 달은 환히 밝은데, 어디서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더러 물었더니 옆방에서 누에가 뽕 먹는 소리였었다. 여러 누에가 어석어석 다투어서 뽕잎 먹는 소리가 마치 비 오는 소리 같았다. 식욕이 왕성한 까닭이다. 이때 뽕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며칠을 먹고 나면 누에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서 피부가 긴장되고 윤택하여 엿빛을 띠게 된다. 그때부터 식욕이 감퇴된다.. 이것을 최면기(催眠期)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단념을 해 버린다. 그러고는 실을 토해서 제 몸을 고정시키고 고개만 들고 잔다. 이것을 누에가 한 잠 잔다고 한다. 얼마 후에 탈피를 하고 고개를 든다. 이것을 기잠(起蠶)이라고 한다. 이때에 누에의 체질은 극도로 쇠약..

[명작수필] '나의 신발장수 아버지' 박한제 (2021.11.13)

■ 나의 신발장수 아버지 / 박한제 아버지는 대충 세 가지 일을 하셨다. 농사일에다 정미소를 경영하였고, 신발 가게를 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셨다. 아버지의 주업은 신발 장수가 아니었나 여기고 있다. 지금은 시골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내가 초·중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고향인 진주 대곡의 북창 장은 정말 인산인해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시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시장에서 아버지는 신발가게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약주도 즐기지 않았다. 우동 한 그릇 사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서 당신 점포 안에서 요기를 하셨다. 내가 학교 공부를 끝내고 귀갓길에 신발가게에 들러도 그 흔한 장국밥집에 한 번 데려간 적이 없었다. 신장개업한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번 얻..

[명작수필] '위대한 순간은 온다' 장영희(張英姬) (2021.11.13)

■ 위대한 순간은 온다 / 장영희(張英姬) 어제 나를 찾아온 용호는 내가 서강대부설야학에서 가르쳤던 학생인데, 정비공으로 취직이 돼 고향인 속초로 내려간다고 했다. 사실 용호의 꿈은 신부님이 되는 것이었는데 지난해 수능고사 점수가 기대에 못 미쳤고, 담당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사제의 길을 포기할 것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선물로 책 한 권을 주며 나는 앞에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 주는 사람 되거라!’ 라고 썼다. 그것을 보고는 한숨과 함께 용호가 말했다. “에이,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줘요. 저는 신부님이 돼서 위대한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자동차 정비공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물론 신부님도 이..

[명작수필] '거리의 악사' 박경리(朴景利) (2021.11.13)

■ 거리의 악사 / 박경리(朴景利) 작년과 금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거리의 악사(樂士)다. 전주(全州)에 갔을 때, 아코디언을 켜고 북을 치면서 약(藥) 광고를 하고 다니는 풍경에 마음이 끌렸고, 작년 가을 대구(大邱)에 갔을 때, 잡화(雜貨)를 가득 실은 수레 위에 구식(舊式) 축음기(蓄音機)를 올려놓고 묵은 유행가(流行歌) 판을 돌리며 길모퉁이로 지나가는 행상(行商)의 모습이 하도 시적(詩的)이어서 작품에서 써먹은 일이 있지만, 역시 작년 여름, 진주(晋州)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때는 새로 착수한 작품을 위해 자료 수집과 초고(草稿)를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났었다. 일 없이 갔었으면 참 재미나고 마음 편한 혼자 여행일 테지만 일을 잔뜩 안고 와서, 그것이 ..

[고시조] (20) '촉혼제 산월저하니' 단종(端宗) (2021.11.12)

■ 촉혼제 산월저하니 / 단종(端宗) 蜀魂啼 山月低하니 相思苦 倚樓頭-라 爾啼苦 我心愁하니 無爾聲이면 無我愁-ㄹ랏다 寄語 人間離別客하노니 愼莫登 春午月 子規啼 明月樓하여라 촉혼제(蜀魂啼) 산월저(山月低)하니 상사고(相思苦) 의루두(倚樓頭)라 이제고(爾啼苦) 아심수(我心愁)하니 무이성(無爾聲)이면 무아수(無我愁)랏다 기어(寄語) 인간이별객(人間離別客)하노니 신막등(愼莫登) 춘오월(春午月) 자규제(子規啼) 명월루(明月樓)하여라 ◇ 풀이 소쩍새는 슬피 울고 달은 산마루에 걸렸으니, 임을 그리며 다락머리에 기대어 섰노라. 소쩍새여, 네가 피나게 울면 이내 마음 슬퍼지며, 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내 슬픔이 없으련마는. 이 세상에서 그리운 임과 생이별한 나그네에게 부탁하노니, 춘삼월 달 밝은 밤에 소쩍새 울..

[고시조] (19) '장백산에 기를 꽂고' 김종서(金宗瑞) (2021.11.12)

■ 장백산에 기를 꽂고 / 김종서(金宗瑞) 長白山에 旗를 꽂고 豆滿江에 말 씻기니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어떻다 凌烟閣上에 뉘 얼굴을 그릴꼬 ◇ 뜻풀이 *장백산(長白山): 백두산(白頭山)을 중국에서 일컫는 말. 백두산 꼭대기에 있는 화산구(火山□)의 호수인 천지(天池)가 유명하다.그러나 중국과의 국경선을 긋는 정계비(定界碑)가 숙종38년에 세워졌는데, 우리 나라측의 무능으로 말미암아 천지(天池)보다는 남쪽으로 쳐진 곳에 세워졌다. *두만강(豆滿江): 우리나라 동북부를 흐르는 강.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배는 강 입구에서 85미터까지 운항할수 있지만, 얼음이 얼지않는 계절에는 유목(流木)이 활발하다.길이는 521km이다. *어떻다: 어떻게. *능연각(凌烟閣): 중국당(唐)나..

[고시조] (18)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김종서(金宗瑞) (2021.11.12)

■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 김종서(金宗瑞) 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明月은 눈속에 찬데 萬里邊城에 一長劍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세라 ◇ 뜻풀이 *삭풍(朔風): 삭(朔)은 ‘북쪽’을 의미하는 글자로 북풍(北風), 곧 ‘북쪽에서 불어치는 찬 바람’을 말한다. *명월(明月): 밝은 달이란 뜻으로, ‘보름달’을 이른다. *만리변성(萬里邊城): 서울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성루란 뜻으로, 여기서는 김종서가 지키던 함경도(咸鏡道)의 육진(六鎭)을 가리킨다. *일장검(一長劍): 한 자루의 긴 칼. *파람: 휘파람의 옛말. *한소리: 한은 크다의 뜻. 또는 바르다의 뜻으로, 명사(名詞) 위에 붙이는 접두사(接頭詞)이다. *거칠 것이: 걸리는 것이. 거치적거리는 것이. *업세라: ‘없..

[고시조] (17) 강호사시사.. '강호에 봄이 드니' 맹사성(孟思誠) (2021.11.12)

■ 강호에 봄이 드니 / 맹사성(孟思誠) 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興이 절로 난다 濁醪 溪邊에 錦鱗魚 按酒 삼고 이몸이 閑暇하옴도 亦 君恩이샷다. [뜻풀이] *강호(江湖): 강과 호수가 있는 곳. 자연과 넓은 세상, 또한 벼슬을 하지 않는 자가 숨어서 사는 곳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글을 읊을 줄 아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경치좋은 곳’을 의미한다. *탁료(濁醪): 걸쭉한 막걸리. *계변(溪邊): 시냇가. *금린어(錦鱗魚): 본래는 쏘가리를 이른다.비단결같은 고운 비늘이 달린 물고기라는 뜻으로, ‘예쁘장한 물고기’라는 뜻이다. 금린(錦鱗)만으로도 ‘미어(美魚: 아름다운 물고기)’라는 뜻이 된다. *역(亦): 역시(亦是)의 준말. 또한. *군은(君恩): 임금의 은혜,은덕,은총을 이른다. *이샷다: 이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