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작수필] '모송론(母頌論)' 김진섭(金晋燮) (2021.11.16)

■ 모송론(母頌論) / 김진섭(金晋燮) 인생(人生)이 너무나 불행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어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점만은 행복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생(生)을 받은 우리의 찬송(讚頌)은,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첫째 우리들의 어머니 위에 지향(志向)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려서 이미 어머니를 잃고, 클수록 커지는 동경(憧憬)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아들의 신세가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큰 불행이라면, 어려서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기고 커서는 어머니의 덕을 받들어 모자(母子)가 한 가지로 늙는 사람의 팔자(八字)는 이 세상에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큰 행복일 것입니다. 아니지요. 이러한 구구한 경우를 떠나서도 모든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 그것이 벌써 한없이 행복스러..

[명작수필] '해바라기' 유진오(兪鎭午) (2021.11.16)

■ 해바라기 / 유진오(兪鎭午) 이렇다 할 아무런 업적도 남긴 것 없이, 벌써 인생의 절반을 살아 온 내다. 20 전후의 불타오르는 듯하던 정열을 생각하면, 지나간 열다섯 해 동안 무엇을 해 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깐으로는 허송 세월은 하지 않노라고 해 왔는데 결국 이 꼴이니, 앞으로 남은 반생이 또 이 꼴로 지나가 버리면 어찌될 것인가. 송연(悚然)한 노릇이다. 그 전에는 내 나이 젊은 것을 핑계삼고, 누가 무엇을 쓴 것이 몇 살, 누가 무슨 일을 한 것이 몇 살 하고,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위로해 왔다. 그러나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던 누구누구의 나이를 어느새엔가 나 자신이 넘어서고 말았으니, 인제는 무엇으로써 스스로 위안할까. 환경을 따져 보고 시대를 원망해보고..

[고시조] (30) '들은 말 즉시 잊고' 송인(宋寅) (2021.11.15)

■ 들은 말 즉시 잊고 / 송인(宋寅)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 못 본 듯이 내 人事― 이러하매 남의 是非 모르노라 다만只 손이 성하니 盞 잡기만 하리라 [뜻풀이] *내 인사(人事): 내가 하는 처사가. 내가 하는 버릇이. ‘이(―)’는 한문에 붙는 주격(主格) 토이다. *시비(是非): 잘잘못. 옳고 그름. *다만 지(只): ‘다만’의 강세어(强勢語)이다. 는 종장의 첫귀의 세 글자를 채우기 위하여 덧붙인 것 이다. 다만 당(當)도 같은 용법이다. [풀이] 남에게서 들은 말도 돌아서면 그만 잊어 버리고, 내가 보았던 일도 그때 뿐이요, 못 본 것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내 버릇이 이러하기에 남의 잘잘못을 알리가 없으렷다. 다만, 아직은 아무 탈없이 몸이 성하니 술잔이나 기울이면서 마음 편히 세월을 ..

[고시조] (29) '추강에 밤이 드니' 이정(李婷) (2021.11.15)

■ 추강에 밤이 드니 / 이정(李婷, 월산대군月山大君) 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홀로 오노매라 [뜻풀이] *추강(秋江): 가을철의 강. *차노매라: 차지는구나! ‘~노매라’는 ‘~는구나’의 옛말. [풀이] 가을철 강가에 밤이 깊어지니 물결이 차가와지는구나! 물이 차가운 탓인지,낚시를 드리워도 고기가 아니 물리는구나. 낚싯군도 단념한 듯 무심한 달빛만 빈 배에다 가득 싣고 외롭게 돌아 오고 있도다. [지은이] 이정(李婷, 1455~1489): 추존(追尊)된 덕종(德宗)의 맏아들이며, 바로 성종(成宗)의 형이 되는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다. 자(字)는 자미(子美),호(號)는 풍월정(風月亭)이다. 세조(世祖)에게는 장손(長孫)이 되므로, 매우 ..

[고시조] (28) '천만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王邦衍) (2021.11.15)

■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王邦衍) 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뜻풀이] *천만리(千萬里): 서울에서 영월까지는 천만리 만큼이나 멀다고 하는 뜻이다. *고운님: 여기서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어린 단종(端宗)을 가리킨다. *여의옵고: 이별하옵고. *내 안: 내 마음. *예놋다: ‘예다’는 ‘가다’의 뜻, ‘~놋다’는 힘줌을 나타내는 ‘~도다’의 옛말이다. 곧 가도다, 가는구나!. [풀이]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 외진 곳에 어린 임금을 이별하고 돌아오니, 이 내 슬픔 붙일 데가 전혀 없기로, 이 냇가에 앉아있으니, 저 바위를 흘러가는 물도 마치 내 마음과도 같이 울며불며 가는구나! [지은이] 왕방연(王邦衍)..

[고시조] (27) '간밤에 불던 바람' 유응부(兪應孚)(2021.11.15)

■ 간밤에 불던 바람 / 유응부(兪應孚)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落落長松이 다 기울어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뜻풀이] *치단 말가: 몰아쳤단 말인가? *낙락장송(落落長松):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지고 키가 곧고 높게 자라난 소나무. 여기서는 지조(志操)를 지킴에 이름난 사람을 가리킨다. *지단 말가: 떨어졌단 말인가? *하물며: 그 위에. 더군다나. *일러: 말하여, 말한들. *무삼: 무슨 또는 무엇의 옛말. [풀이] 어젯밤에 휩쓸던 모진 바람이 눈서리까지 몰아쳤던 말인가? 그래서 저 곧고 푸르렀던 소나무도 모조리 기울고 쓰러졌단 말일까? 사실이 그렇다면, 더구나 아직 피지도못한 꽃방울들을 가리켜 이러니 저러니 말해 본들 무엇하겠는가? [지은이] 유응부(兪應孚: ?..

[고시조] (26) '방안에 혓는 촛불' 이개(李塏) (2021.14.15)

■ 방안에 혓는 촛불 / 이개(李塏)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離別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고 저 촉불 날과 같아서 속타는 줄 모르도다 [뜻풀이] *혓는: ‘혀다’는 ‘켜다’의 옛말. ‘켜 놓은’ *촉불(燭불): 촉(燭)은 초의 한자어(漢字語)로, [燭+불]의 합성어이다. 우리말에서는 ‘촛불’을 이른다. *눌과: ‘눌’은 인칭 대명사로 ‘누구’에 목적격 조사 ‘를’이 붙은 ‘누구를’이 준 말. 곧 ‘누구와’의 뜻. *하였관대: ‘하였기에, 하였기로’의 옛말. *날과: 인칭 대명사 ‘나’에 목적격 조사 ‘ㄹ’이 붙은 말. 곧 ‘나와’의 뜻이다. [풀이] 방안에 켜놓은 촛불은 그 누구와 이별의 슬픔을 나눴기로 저토록 눈물이 고이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저 촛불도 바로 나와..

[명작수필] '동사리와의 연분' 권오길(權五吉) (2021.11.14)

■ 동사리와의 연분 / 권오길(權五吉) 최계선 시집 《동물 시편》을 읽는 중이다. 시 한 편에서 이런 노다지를 캐다니! 시인이 직접 그린 삽화(세밀화)가 실린 「꺽지」편에 “돌이 돌을 내리찍는 돌땅 한 방에 어질어질한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네. 사는 게 그렇지 뭐 좋던 가시 기세 다 꺾이고 헬렐레”란 시가 올라 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노다지란 말인가. 독자들은 내가 말하는 횡재가 무엇인지 이미 눈치를 챘을 터다. 필자는 초동 목동 시절에, 한여름이 왔다면 물고기를 잡느라 동네 앞을 굽이쳐 흐르는,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덕천강德川江 강바닥에서 내내 살다시피 했다. 내리쬐는 햇발에 얼굴이 오죽 그을렸으면 방학을 맞이해 집에 온 형이 ‘니그로(깜둥이)’라 놀려 댔을라고. 민물고기는 낚시, ..

[명작수필] '우리 꽃 산책' 이유미(李惟美) (2021.11.14)

■ 우리 꽃 산책 / 이유미(李惟美) 예부터 우리 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불려 왔다. 금수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사계절 수놓는 것이 바로 우리 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꽃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기 예사이고, 도대체 저 꽃이 우리 꽃인지 아닌지조차도 모른다.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말이다. 우리 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 강산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우리 꽃 이름도 모르고 우리 꽃인지조차 몰랐지만, 이제부터 우리 꽃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꾼다면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봄날의 앵초 봄에는 봄나들이 떠나는 병아리 떼처럼 앙증맞은 노란 꽃이 유난스..

[명작수필] '인디언의 편지 - 아버님께' 신영복 (2021.11.14)

■ 인디언의 편지 ― 아버님께 / 신영복 8일부 하서 받았습니다. 그간 어머님을 비롯하여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금년은 매우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연일 봄비가 내려 주위가 축축합니다만, 춘도생 만물영(春道生 萬物榮), 이 축축함이 곧 꽃이 되고 잎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1885년에 아메리카의 한 인디언이 미국 정부에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 속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당신(백인)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매매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기실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팔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