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고시조] (30) '들은 말 즉시 잊고' 송인(宋寅) (2021.11.15)

푸레택 2021. 11. 15. 15:20

■ 들은 말 즉시 잊고 / 송인(宋寅)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 못 본 듯이
내 人事― 이러하매 남의 是非 모르노라
다만只 손이 성하니 盞 잡기만 하리라

[뜻풀이]

*내 인사(人事): 내가 하는 처사가. 내가 하는 버릇이. ‘이(―)’는 한문에 붙는 주격(主格) 토이다.
*시비(是非): 잘잘못. 옳고 그름.
*다만 지(只): ‘다만’의 강세어(强勢語)이다. <지>는 종장의 첫귀의 세 글자를 채우기 위하여 덧붙인 것
이다. 다만 당(當)도 같은 용법이다.

[풀이]

남에게서 들은 말도 돌아서면 그만 잊어 버리고, 내가 보았던 일도 그때 뿐이요, 못 본 것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내 버릇이 이러하기에 남의 잘잘못을 알리가 없으렷다. 다만, 아직은 아무 탈없이 몸이 성하니 술잔이나 기울이면서 마음 편히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은이]

송인(宋寅: 1517~1584): 본관(本貫)은 여산(礪山), 자(字)는 명중(明仲)이며, 호(號)는 이암(頤庵)·녹피옹(鹿皮翁)이며, 시호(諡號)는 문단(文端)이다.1526년(중종21) 중종의 셋째 서녀(庶女) 정순옹주(貞順翁主)와 결혼,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책봉 되었다. 의빈부(儀賓府) ·충훈부(忠勳府)·상의원(尙衣院)등에서 요직을 역임한 후, 도총관(都摠管)에 이르렀다. 이황(李滉)·이이(李珥)·성혼(成渾) 등 당대의 석학(碩學)들과 교유했고,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을 맡았다. 글씨에도 능하여 해서를 잘 썼으며 수많은 글을 짓고 썼다. 글씨에 「덕흥대원군신도비」,「송지한묘갈」,「황산대첩비」,「김석옥묘비」 등이 있으며, 문집(文集)으로 《이암집(頤庵集)》을 남겼다. 가사(歌辭)로는 「수월정가(水月亭歌)」를 지었고, 시조(詩調) 3수(首)가 전한다.

 

[출처] 《일소일빈》 송영호 Daum Blog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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