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구활 (2021.11.06)

푸레택 2021. 11. 6. 15:43

 

■ 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 구활

“아범아, 우리집 화단에도 박산꽃나무 한 그루를 심었으면 좋겠구나. 고향 밭둑에도 더러 서 있고 야산 발치에 흔하게 있는 흰 꽃이 눈송이같이 피는 나무 말이다. 내사 이름을 몰라 박산꽃나무라고 부르고 있다마는. 왜 조선네 짐 앞마당에 봄이 무르익을 무렵에 튀밥을 튀겨 놓은 것같이 암팡지게 생긴 나무 말이다.”

아침을 들기 전에 맨손체조라도 할 겸 옥상에 올라가면 한 뼘 꽃밭에 물을 주고 계시는 어머니를 만난다.
옥상 꽃밭은 이 집을 지을 때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붉은 장미 몇 그루와 석류와 목련 각 한 그루씩을 심어 제법 곷밭 티가 나도록 만든 것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한번도 흙을 떠나 본 일이 없는 어머니를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도시로 모셔온 지도 벌써 이십 년이 지났다. 어머니는 사글세방, 전세방, 서민 아파트로 전전하시면서 단 한 평의 꽃밭이라도 갖기를 소원하셨지만 도시의 흙은 좀처럼 주름살투성이인 어머니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삼 년 전에 이 집을 지을 때 어머니는 떼를 쓰다시피 하여 옥상에 꽃밭을 만들게 하셨고 요즘은 꽃과 채소를 가꾸는 일을 낙으로 삼고 계시는 것 같다.

“글쎄요. 어머니 혼자서 이름을 지어 부르는 박산나무가 남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군요. 설사 안다고 해도 꽃이 피기 전에 꽃밭으로 옮겨야 뿌리가 내릴 텐데 꽃이 피기 전에는 어느 것이 박산꽃을 피우는지 알 수가 없겠는데요.”

해마다 봄만 되면 듣는 소리여서 대충 이러한 답변으로 어물어물 넘어가려 하면 어머니는
“그래. 아무래도 내가 고향에 한 번 애려가 뿌리가 실한 박산꽃나무 한 그루를 뽑아와야겠구나.”하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박산나무를 구해 와야 한다는 맏이의 책무는 가까스로 면제되곤 했다. 그러나 그 책무의 면제는 유효 기간이 단 일 년뿐이어서 해마다 봄만 되면 어머니의 ‘박산꽃타령’ 은 되풀이되었고 ‘글쎄요’ 한 서두를 앞세운 볼멘 소리는 연중행사로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박산꽃나무를 구해 와야 한다는 숙제는 이행되지 않는 가운데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로는 ‘바람꽃을 박산꽃으로 잘못 알고 계신 것이 아닌가’ 고 바람꽃을 내세웠다.

새 우리말 큰사전을 들쳐보니 ‘바람꽃은 미나리아제비과에 딸린 여러 해 살이풀. 잎은 뿌리에서 무더기로 나고 줄기 높이는 15~30센티로 6~7월에 흰 꽃이 핌. 일명 아네모네. 우리나라 북부 일분 및 북반구에 분포함’ 이라 적혀 있었다. 박산꽃이 바람꽃은 아니었다.

어느날 우연히 회사 뒤편에 있는 막걸리집 주모 덕곡댁이 점심 시중을 들다 말고 우리들의 박산꽃나무 화제에 끼어들며 “박산꽃이 뭐고, 조박대나무 앙이가” 하고 십년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다. “조박대나무는 우리 고향인 고령(高靈) 덕곡(德谷)에 가면 야산 기슭에도 있고 밭 등천에도 있지러.” 덕곡댁이 당장이라도 안내를 맡을 눈치여서 쇠뿔은 단김에 뺀다며 점심 식사를 건성으로 마치고 덕곡으로 향했다.

가야산 자락인 덕곡마을은 국도에서 한참 들어앉은 오지였지만 양지 바른 쪽에 자리한 평화스런 곳이었다. 괭이를 둘러 멘 덕곡댁의 사촌 남동생과 함께 야산 기슭을 누비며 조박대기나무 몇 그루와 진달래 한 포기를 흙째로 뽑아 왔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어머니와 함께 옥상 꽃밭에 올라가 땅거미가 질 때까지 나무를 옮겨 심는 등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향 산천의 어느 잔디밭에 앉은 듯 매우 흡족해 하셨다. 지난 후에야 참새 혀 같은 푸른 잎을 밖으로 내보였다. 회초리 같은 조박대나무 몇 그루를 얻어 온 것이 나에겐 효도를 한 것처럼 느껴져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봄이 더욱 깊어져 청명 한식이 가까워 오자 주위 친구들이 분재용 나무를 구하거나 화단을 장식할 꽃나무를 구한다고 법석이었다. 그럴 때마다 야산에 흔하게 널려 있는 조박대나무를 심어 보라고 권하면서 박산꽃나무가 조박대로 변한 얘기를 전사(戰士)의 무용담처럼 들려 주었다.

어느날 해거름에 사무실을 찾아온 시인 문형렬(文亨列)형과 얼려 대포집에 들렀다가 예의 조박대나무 얘기를 했더니 “조박대나무는 사투리이고 조팝나무가 표준말입니다.”고 다시 수정해 주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정에 조팝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순백(純白)으로 그것도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가 근심처럼 떨어지는 꽃 이파리를 보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지요.”

조팝나무의 흰 꽃송이를 가장 시(詩)적으로 표현한 문형의 설명이었다.

이제 우리 집의 봄은 어머니가 박산꽃이라 불렀던 조팝나무의 흰 꽃송이로부터 내릴 것이고 또 영글 것이다. 올해 일흔 다섯인 어머니가 앞으로 몇 번이나 조팝나무의 서러운 눈물로 꽃피우는 꽃핌을 보게 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머니가 먼 나라로 떠나신다 해도 이승을 못 잊는 혼령이 조팝나무의 희디흰 꽃송이로 봄과 함께 내리리란 생각을 하니 그렇게 서럽거나 두렵지가 않다.

/ 2021.11.0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