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 「동절작용」 김형경 (2019.11.14) ● 동절작용(冬節作用) / 김형경 책상 위에 펼쳐진 사절지 크기의 흰 종이 위에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동료의 무리에서 이탈하여 공유했던 기억들에 대한 상실감에 홀로 메말라가는 한 마리 환형동물을 연상시켰다. 혹은 정신분석의가 제시한 얼룩그림의 ..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4
[소설읽기] 「천사의 날개」 이원규 (2019.11.13) ● 천사의 날개 / 이원규 그날 오전, 장 목사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뜻밖이었다. 내가 여직원에게서 전화를 넘겨받아 “총무부장입니다" 하고 말하자, 그는 정중한 어조로, 주월 백마사단 장거리 정찰대 출신 박광현 씨가 아니냐고, 자신은 군목으로 종군한 장선목이라는 사람..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3
[소설읽기] 「신열」 이원규 (2019.11.13) ● 신열 / 이원규 나는 집들의 담장 너머 목련이 활짝 펴서 허공에 마치 흰 나비들처럼 떠 있는 삼청공원 기슭의 언덕길을 차를 몰고 달려 올라갔다. 고급 주택가란 으레 그렇지만 화창하고 포근한 늦은 봄의 한낮인데도 넓은 길목에 사람들의 통행이 적었다. 늘씬한 모습의 고급 ..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3
[소설읽기] 「깊고 긴 골짜기」 이원규 (2019.11.13) ● 깊고 긴 골짜기 / 이원규 며느리가 백일해 예방 접종을 시킨다고 아이를 업고 나간 뒤 집안은 고즈넉했다. 보자기만한 햇살이 아파트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거실의 잿빛 양탄자를 하얀 털로 짠 직물처럼 따뜻이 보이게 만들었다. 한명구 씨는 손에 든 조간신문을 밀어 놓고 허..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3
[소설읽기] 「친구는 멀리 갔어도」 정도상 (2019.11.10) ● 친구는 멀리 갔어도 / 정도상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보초를 나서는 길은 멀고 험했다. 길은 포대 행정반에서 나올 때부터 캄캄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손톱 끝에서 위태위태하게 남아 있던 봉숭아처럼 보이던 그믐달이 오늘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원태는 ..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0
[소설읽기] 「발자국 소리」 정도상 (2019.11.10) ● 발자국 소리 /정도상 버스 종점의 주변에 들어선 골목시장으로 시나브로 어둠이 실려오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의 애국가가 인월(引月)댁의 앞에 놓인 고무널벅지 가득 울려 퍼지고 난 후부터, 버스에 실려오는 어둠의 양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인월댁은 주섬주섬 고무널..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0
[명시감상]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그 겨울의 시」 박노해 (2019.11.10)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10
[소설읽기] 「적도기단」 박상우 (2019.11.09) ● 적도기단 / 박상우 영혼이 무기력해지는 적도기단,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시를 쓰지 못한다. 1 대기하라....... 오전 아홉시경에 그들에게 구두로 전해진 명령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대기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는 애초부터 없었다. 참으로 막연한 명령이 ..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09
[소설읽기] 「낮달」, 「그 여름의 꽃게」 이순원 (2019.11.09) ● 낮달 / 이순원 없다. 작업대 서랍이며 캐비닛, 하다못해 암실의 휴지통까지 뒤져 보았지만 사수가 계집애를 안고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 내 손으로 인화하여 다른 사진과 함께 작업대 위에 놓아 두었는데 그것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젠 더 이상 뒤져 볼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작업대 위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사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까부터 신문만 뒤적일 뿐 의식적으로 내겐 일별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그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끈끈하게 나의 일거일동을 간섭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사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뒤져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없다고..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09
[소설읽기]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하창수 (2019.11.09) ●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1 겨울 병사 전방(前方)의 가을은 언제나 온몸으로 저물었다. 적철색(赤鐵色)의 쇳녹 같은 나뭇잎 위로 겁탈하듯 서리가 내렸을 때, 나는 다만 그것을 처음 보았다는 것 때문에 무서위했었다. 그리곤 겨울이었다. 예고도 없이 잠결 위로 퍼부어지던 비상 ..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19.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