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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친구는 멀리 갔어도」 정도상 (2019.11.10)

● 친구는 멀리 갔어도 / 정도상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보초를 나서는 길은 멀고 험했다. 길은 포대 행정반에서 나올 때부터 캄캄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손톱 끝에서 위태위태하게 남아 있던 봉숭아처럼 보이던 그믐달이 오늘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원태는 ..

[명시감상]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그 겨울의 시」 박노해 (2019.11.10)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

[소설읽기] 「낮달」, 「그 여름의 꽃게」 이순원 (2019.11.09)

● 낮달 / 이순원 없다. 작업대 서랍이며 캐비닛, 하다못해 암실의 휴지통까지 뒤져 보았지만 사수가 계집애를 안고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 내 손으로 인화하여 다른 사진과 함께 작업대 위에 놓아 두었는데 그것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젠 더 이상 뒤져 볼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작업대 위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사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까부터 신문만 뒤적일 뿐 의식적으로 내겐 일별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그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끈끈하게 나의 일거일동을 간섭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사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뒤져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없다고..

[소설읽기]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하창수 (2019.11.09)

●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1 겨울 병사 전방(前方)의 가을은 언제나 온몸으로 저물었다. 적철색(赤鐵色)의 쇳녹 같은 나뭇잎 위로 겁탈하듯 서리가 내렸을 때, 나는 다만 그것을 처음 보았다는 것 때문에 무서위했었다. 그리곤 겨울이었다. 예고도 없이 잠결 위로 퍼부어지던 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