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낮달」, 「그 여름의 꽃게」 이순원 (2019.11.09)

푸레택 2019. 11. 9. 21:47

 

 

 

● 낮달 / 이순원

없다.
작업대 서랍이며 캐비닛, 하다못해 암실의 휴지통까지 뒤져 보았지만 사수가 계집애를 안고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 내 손으로 인화하여 다른 사진과 함께 작업대 위에 놓아 두었는데 그것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젠 더 이상 뒤져 볼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작업대 위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사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까부터 신문만 뒤적일 뿐 의식적으로 내겐 일별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그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끈끈하게 나의 일거일동을 간섭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사진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뒤져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없다고 포기하는 것과 없어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달라도 아주 다른 일이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곳을 뒤져야 한다는 것은.

(중략)

 

누군가 손을 들어 신부님의 발목을 잡았다. 사수였다.
"사제가 교회로 피신해 온 사람을 보호해 주는 교회법상의 권리가 뭡니까?"
나는 신부님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변화는 오히려 사수를 돌아다보는 병사들의 얼굴에 있었다. 그건 분명 낱말맞추기의 한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잇몸이 약한 악어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낱말을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그는 그것을 신부님의 입으로 확인하게 하고 싶은 것이리라. 사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제가 그 얘길 안 했던가요?"
신부님이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저는 잘 못 들었습니다."
"그럼 무슨 얘길 들었나요?"
"두 명의 죄수와 콜라 얘기를 들었습니다."
"스물 세 장의 사진만 보았군요."
신부님은 흑판에 ‘'비호권'이라고 썼다.
"진실은 그 자체로서도 아름다운 것입니다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지키고 있을 때 우리에겐 더욱 아름다운 사진이 될 것입니다."
신부님은 백묵을 놓고 천천히 대기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서둘러 카메라를 올려 쪽문으로 사라지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잡았다.
창 밖엔 아직도 낮달 하나 창백한 가슴으로 그곳에 떠 있었다.
(『그 여름의 꽃게』, 세계사, 1989)

● 그 여름의 꽃게 / 이순원

"에구, 난리를 겪드라두 지 집구석마다 앉아 겪을 것이제 이건 꼭 싸리꽃을 본 벌때맨처럼 밀려드니. 난리가 인총 줄인다는 말두 다 헛말이여. 그래, 저 숱해 빠진 인총들이 다 뭘 묵구 사누?"
뜨겁고 진력나는 여름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을로 들어오는 자루뫼고개를 가득 메운 피난 행렬을 바라보며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서산마루로 기어오르던 해가 붉은 기운을 더하자 할아버지의 얼굴은 푹 눌러앉은 코며, 코보다 앞으로 뼈져 나온 입술이 둘도 아닌 꼭 원생이의 그것 같았다.

난리가 터졌다는 소문과 함께 동네엔 무수히 많은 피난민들이 올려와 붐볐다. 그들은 처마밑이나 헛간, 하다못해 동구밖 상여막까지 몸뚱이 하나만 운신할 장소면 아무 곳에서나 피난 보따리와 함께 모질게 견뎌 온 난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마을엔 피난민 두세 가구를 들이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유독 우리집만은 피난민들이 붙잡이를 못 했다.
"넘한테 내줄 방이 읎다캐두!"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을 기웃거리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런다고 첫마디에 순순히 물러날 그들이 아니었다. 삼팔선을 넘어 피난 보따리 가득 죽을 고비를 주워담으며 이곳까지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난리통이라지만 무시기 인심이 그리도 야박합네까?"
"내 집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잡소리여?"
"방이 아니래도 좋습네다. 헛간이래도 좋으니끼니 보따리 풀 자리 하나만 봐주우다. 염치없게시리 먹성까지는 얼쩡대지 않을 테니깐두루."
"안 딘다캐두 자꾸 그래 쌓네, 여그가 어딘 줄 알구나 하구성 그러는겨?"
매번 거센 북쪽 사투리가 할아버지의 문디 헌데 쥐어짜는 소리에 머쓱하게 물러나곤 했다. 누가 붙인 것인지 몰라도 별명 그대로 할아버지는 노랑잔나비였다. 얼굴 모습도 그렇거니와 심보도 원셍이처럼 의심이 많아 남을 통 믿지 않을 뿐더러 지독한 노랭이였다.

"야차(夜叉) 같은 놈들, 내 집 살림은 뭐 공중에서 그냥 뚝 떨어진 줄 아는 모양이제."
날마다 문 밖에 피난민들이 몰려와 서성대자 할아버지는 대문에 빗장 하나를 더 만들어 달았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빨갱이보다 지독한 놈이라고 몰매를 맞아도 벌써 맞아 죽었을 것이나, 할아버지만은 끄떡도 없었다. 자루뫼[柄山] 마을에 다섯 손가락도 채 안 되는 기와집을 쓰고 있대서만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피난민들의 눈길을 끌 뿐이었다.

아버지가 마을의 치안을 책임맡고 보면 할아버지 역시 사랑에 앉아서 치안대장의 권세를 누릴 만했다. 난리를 피난민들의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빨갱이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은 마을에 치안대가 조직된 것도 바로 피난민들 때문이었다. 당상 먹고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인데 무슨 짓인들 못 저지를까 싶어, 하나둘 피난민들이 자루뫼 고개를 넘어오자 할아버지는 아버지로 하여금 서둘러 치안대를 조직하게 한 것이었다.

(중략)

미주는 소달구지에 담요를 깔고 앉아 그림같이 풀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우리 식구가 본 미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어도 미주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다음날에도 삼촌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만 마당 가득히 메어터질 뿐 미주를 태운 소달구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로소 나는 미준지 메준지 하는 계집에게 작은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읍내 난전의 땜장이도 고향만 원산이다뿐이지 피난을 나와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이마에 손을 얹고 항시 동구밖 쪽에 눈을 둔 할머니의 빈 손가락과 뜨락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삼촌의 목발을 보며, 나는 지난 해 여름 뒷내에서 그 영악해 빠진 계집애가 내게 치마를 벌리며 하던 말을 떠올렸다.
"다슬기를 보니까 생각나는데 우리 원산 바닷가엔 꽃게라는 게 있단다. 집게라고도 부르는데 그놈이 어디서 사는 줄 아네?"
"어디서 사는데?"
"빈 소라껍질 속에서 산단다. 그러나 몸이 커지면 또 어떻게 하는 줄 아네? 먼저 살던 껍질을 버리고 보다 큰 껍질로 옮겨 사는 거야. 그게 꽃게한테는 제일 안전하거든, 이제 알아듣겠네? 요 맹추야."
(『그 여름의 꽃게』, 세계사, 1989)

☆ 이순원 소설가

1967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강릉상고 졸업

강원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수상내역

2018 제7회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 작가상

2016 동리목월문학상 동리문학상

2016 제5회 녹색문학상

2006 제2회 남촌문학상

2006 제1회 허균문학작가상

2000 제5회 한무숙문학상

2000 제1회 효석문학상

1997 제42회 현대문학상

1996 제27회 동인문학상

1988 문학사상 신인상

 

☆ 주체 회복에의 의지와 비판적 소설사회학 / 우찬제(건양대 교수)

이순원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공히 만화경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세상과 인간살이의 어떤 국면이라도 그의 작가적 프리즘을 일단 통과하고 나면 새롭고 낯선 이야기가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의 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소설이 뒤따른다. 1985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바 있는 이순원은, 1988년 《문학사상》 신춘문예에 다시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 작가이다.

그 후 10년 까운 시간 동안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등 두 권의 소설집과 『 비상구가 없다』에서 『미혼에게 바친다』에 이르는 다섯 편의 장편소설을 펴냄으로써, 구효서· 박상우·윤대녕·장정일 · 하창수 등과 더불어 1990년대 전반기 작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혀 왔다. 특히 1980년대라는 한국 특유의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계절을 보내고 1990년대라는 독특한 포스트모던의 계절을 맞이한 환절기의 지각변동에 매우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소설 영역을 확장시켜 온 작가로 우리는 그를 주목한다.

(중략)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가 이순환에게 있어서 소설 쓰기란 다름아닌 허구적 욕망의 거품을 걷어내고 유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상상적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그의 《문학사상》 등단작인 「낮달」을 검토할 필요를 느낀다. "아직도 낮달 하나 창백한 가슴으로 그곳에 떠 있었다”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끝맺고 있는 이 소설에서 과연 '창백한 가슴'으로 떠 있는 '낮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 시간을 찾지 못한, 그러니까 제 질서를 찾지 못한 어면 어설픈 형상의 상징이다. 이런 '창백한 가슴'을 지닌 '낮달'의 형상이야말로 곧 우리 자신, 우리 사회, 우리 역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이순원의 핵심적인 문제제기이다.

왜 '낮달'일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우리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부황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며 또 세계가 자아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 상실의 증후군은 가장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게 마련이다. 이순원이 관찰하고 있는 바 주체 상실의 원인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조직 권력의 악성이다. 군대와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의 인간, 국가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개인, 국제조직 역학 측면에서의 한미관계와 그 안에서의 비극적 한국인 등등은 두루 조직악에 의해 주체를 상실한 존재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군대는 철저하게 계급의 위계에 의한 피라미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명령과 복종에 의한 불균등의 균형상태가 바로 군대사회의 생태학적 초상이다. 이 힘의 균형상태는 피라미드의 하층에 속하는 개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억압으로 작용한다. 때때로 개인의 주체적 의지를 떠난 조직논리에 의해 강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라미드의 상층이 이미 타락해 있을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이른바 군사형 사회의 병폐가 속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군대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군사 독재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 실은 사회나 정치 조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정권의 구조도 그러했거니와, 성인 남자의 대부분이 군사형 문화 속에 깊숙이 침윤되었던 경험을 가져야 했으므로 그 구조의 하부 구성원 역시 무의식적으로 군사형 의식에 포획된 채 살아가기 십상인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저런 억압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상실의 늪에 빠져 있는 인물의 초상으로 보여지게 마련이다. 이에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이미 '해'가 거울일 수 없으며, 대신 '낮달'만이 거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낮달'을 '창백한 가슴'으로 응시해야만 하는 주체 상실의 현실에서 이순원은 각성을 촉구하면서 주체 회복에의 의지를 공고히 한다. “편집과정에서 1초 단위로 스물세 장의 필름 다음엔 꼭 한 장씩 갈증을 유발시킬 만한 사진을 끼워 넣었"다는 '광고 제작자'의 전략에 빗대어 말한다면, 이순원의 경우 23장의 주체 상실의 이야기에 1장의 주체 회복의 이야기를 '갈증'처럼 끼워 넣는 서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낮달」은 군대 사진병인 화자의 체험적 보고 형식으로 기본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신부의 강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리로 논평케 하고 있는 소설이다. 논평의 요체는 유형· 무형, 혹은 의식· 무의식의 억압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다. '23+1=24'에서 타락한 '1'의 저의에 의해, 또 그것에의 길들여짐에 의해 '2' 전체가 주체 상실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우리의 의식세계는 그것을 부정하면서도 무의식세계는 그것을 알게 모르게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끝내는 의식세계마저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지식인도 세뇌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런 말일수록 가장 논리적인 양 위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낮달」, 202쪽)

그러니 23장 사이에 음험하게 끼어 도사리고 있는 1장의 실체를 제대로 보아야 진실에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1장의 사진은 군조직 안에서 상급자(사수)의 단순한 폭력일 수도 있고, 나아가서 국민을 '수인'으로 전락케 하는 억압적 권력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는 의미론적 함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때 주체 회복에의 의지는 "진실은 그 자체로서도 아름다운 것입니다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지키고 있을 때 우리에겐 더욱 아름다운 사진이 될 것입니다"라는 발화에서 더욱 돌올하게 부각된다.

(중략)

이순원은 다채로운 현실의 문제적 공간에다 여러 복잡한 의미의 관계망을 겹겹으로 설정하여 소설의 폭과 깊이를 갖추고 있는 작가이다. 일련의 소설들을 통해 그는 타락한 현실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준다. 때로는 낭만적 환멸로, 때로는 고통스런 비판으로 그 풍경에 맞서는 모습은 인간과 시대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고뇌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그 흔적의 심층에서 우리는 이순원 특유의 사회학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상상력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매우 탄력적이다. 현실의 문제적 징후를 다각적으로 발견하고 해부하고 비판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시적 정의'의 구현을 위한 진정성의 길을 향해 열려 있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