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1 겨울 병사
전방(前方)의 가을은 언제나 온몸으로 저물었다. 적철색(赤鐵色)의 쇳녹 같은 나뭇잎 위로 겁탈하듯 서리가 내렸을 때, 나는 다만 그것을 처음 보았다는 것 때문에 무서위했었다. 그리곤 겨울이었다. 예고도 없이 잠결 위로 퍼부어지던 비상 사이렌보다 몇 배는 더 몸서리치는 겨울이 비로소 내 경험 없는 가슴에 소름을 돋게 하였다. 고단하고 지루했던 그 동안의 이등병 시절을 송두리째 잊게 하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때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겨울의 침략은 마치 태초와 같았다. 적어도 내게 있어 그것은 새로운 태어남이거나 비극적인 최초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내 군대생활은 비로소 시작이었다. 거짓말처럼 잊혀져 간 지난 시간은 신생(新生)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조금쯤은 알게 하였다. 비록 그것이 덧없고 보잘 것 없는 이별의 손수건이었다 한들.
사람살이에 대해 좀더 성숙한 견해를 가졌거나 무언가 더 깊고 심각한 고민을 견디어 왔던 사람이라면, 혹은 진정으로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을이나 봄, 아니면 여름을 먼저 상정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있어 봄을 얘기하기에는 겨울이 더 아름다웠고, 여름을 먼저 말하기에는 겨울이 더 푸르렀다. 또한 가을을 맨 먼저 내세우지 않은 까닭은 내게서 겨울은 모든 것을 휘몰아치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원시(原始)와 황폐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언제나 세계의 적멸과 퇴락과 은둔의 옷깃을 여미며 스러져 갔다. 겨울은 서슴없이 청춘을 밝고 갔다. 육중한 그의 걸음은 내 이마에 푸른 군화 자국을 남겼다. 가끔씩 눈 덮인 다래나무 숲속에서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그 검은 이마와 눈동자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총을 쏘고 싶었었다. 그러한 충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유도 없었고, 까닭을 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나는 발디딘 땅을 가늠할 수 없었고, 숨쉬는 공기를 확인할 수 없었을 뿐이다.
무시로 먼 곳에서 노루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오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귀를 잃지 말라는 비겁한 나의 인식이었으리라. 그것들이, 건강과 안녕(安寧)에 대한 비참한 희망과 함께, 내게 거머쥐여 준 흰 종이처럼. 거기에다 나는 말없이 침을 발라 연필을 누르곤 했다. 비록 그것이 나의 모욕이었고, 자폐와 인욕이었다 해도 나는 겨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을 뿐이다. 좀은 지나치고, 더 용맹스럽게- 그러나 맨 먼저 쓰러지는 북 치는 병사처럼 언제나 나는 몸을 떨었다. 바람은 내 옷섶을 풀어 헤치며 가슴으로, 목덜미로, 섬뜩한 손바닥을 찔러넣곤 했다. 그러면 소스라치는 눈보라처럼 나는 흘러갔다. 비로소 아름다움은 순정보다 더 잔인하였다.
눈발이 날리는 새벽이 그랬고, 피멍처럼 눈을 아리우던 아침놀이 그랬다. 선악과 애증마저 잊게 하던 엄청난 폭설이 또한 그랬다. 그것들을 등에 진 채 밤새운 야간 칠책 근무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의 눈 쌓인 어깨를 바라보며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청춘을 믿지 않으려는 약속을 해버렸는지 모른다. 그것들은 군용 트럭의 스몰라이트처럼 작고 단단한 밝음을 가진 채 겨울을 기어 넘고, 넘어갔다가는 언제나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다. 더러운 그 약속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디에 그만큼의 눈들을 감추고 있었던지, 순식간에 쏟아져 내리는 폭설이었다. 하늘과 땅은 온통 백색의 빗금들로 가득했다. 등화관제 커튼을 삐끔히 젖힌 채 유리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내 눈동자 속으로도 사정없이 빗금이 그어지고 있었다. 그 빗금들 사이로 또다시 회고 약한 빗금들이 겹겹이 그어졌다.
떨어져 내리는 눈발은 퍽퍽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여윈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눈발은 이내 계곡의 다래나무의 숲을 덮었다. 막사 한켠에서 화목(火목)을 쪼개고 있던 일병이 우두커니 서서 내리는 눈발을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나무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위로 절벽절벽 눈이 떨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일병이 어깨와 방한모 위에 쌓였던 눈을 털어내고는 다시 도끼를 찍기 시작했다.
(중략)
"이번 금요일 떠난다면서? 삼분대장이 동기라던데 함께 전역하지 못해 안타깝군. 이 자리에서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한마디쯤 하지, 응?"
내 귓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웅웅 들려 왔다. 나는 떨리는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개의 피곤한 시선들이 내 몸에 와 부딪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겁에 잔뜩 질려 있는 신병의 눈동자가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무얼까 이런 짓은 과연 정당할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찬찬히 신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더 무섭고 경직된 눈빛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나는 상투적이고, 답답하고, 꾀죄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를, 나 자신 너무 익숙하고, 메말랐던, 그래서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말들을 남겼다. 내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운 박수 소리에 묻혀들었다. 나는 무너지듯이 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혼드는 삼월의 바람 소리가 내 귀로 불길처럼 타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슬슬 흔들었다. 내일은, 씨를, 뿌리지 않으리라... 그때, 중대장이 돌아서며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을 전해 주고 있었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중앙일보사, 1990)
☆ 하창수(河昌秀)
1960년 경상북도 포항시 출생
대구 대건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87)
1986년 첫 소설 <겨울이 깊은 것은>이 영대문학상에 당선된 후, 이듬해 <청산유감>이 [문예중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93년 4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 동안 [강원도민일보]에 서평 <젊은 소설가의 책읽기>를 연재하였다. 엽편소설집 <껄껄>은 1997년 발표되었는데, 같은 주제를 가지고 소설가 이외수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화답하는 내용을 엮은 작품이다. 후배인 하창수의 엽편소설이 등장하고 이에 대응하는 선배 이외수의 시와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2002년 발표한 <함정>은 정신분열병 환자를 치료하는 한 정신과 의사의 임상보고서 형식의 작품이다.
서정적 내면 풍경 혹은 존재론적 질문과 정치적 주제를 개성적인 감수성으로 그려낸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1991), 노회한 수사관과 터무니없는 강간 치사 혐의로 심문받는 소설가를 통해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의 난폭함을 형상화한 <수선화를 꺾다>(1994),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의 희망과 절망을 그린 <원룸>(1997), 불합리한 사회환경 속에서 예술적 의지를 지키며 살았던 조선후기 화가들의 모습을 그린 <그들의 나라>(1998), 정신병원 임상 보고서 형식을 취한 <함정>(2002) 등 다수의 소설집을 간행하였다. 1991년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제24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제9회 현진건문학상 수상(2017)
【소설】<천원(天元)>(1989) <더 깊어지는 강>(중앙일보사.1989) <암묵(暗黙)과 변설(辯舌)>(1990) <번설(煩說)>(1990)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중앙일보사.1990) <이제 올페는 노래하지 않는다>(1990) <칼과 꿈>(1991) <철의 언어>(1991) <담배와 창문>(1991)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책세상.1991) <젊은 날은 없다>(세계사.1992) <차와 동정>(동아출판사.1992) <알>(산책.1994) <무비로드, 혹은 길의 환상>(문학사상.1994) <적을 찾아서>(장편.1994) <죽음과 사랑>(중앙일보사..1994) <수선화를 꺾다>(삼성.1994) <허무총>(삼성.1994) <원룸>(푸른숲.1997) <그들의 나라>(책세상.1998) <함정>(책세상.2002) <여행>(리즈앤북.2010)
【작품집】<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책세상.1991) <수선화를 꺾다>(산책.1994) <껄껄>(1997)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문학과지성사.2010)
【평론】<젊은 소설가의 책읽기>(강원도민일보.1994)
【평론집】<삶의 양식과 소설의 양식>(지평.1993) <암벽의 사상.(전망.2000) <길의 궤적>(전망.2010)
☆ 문지방, 하창수, 영화 세대 / 장현동(문학평론가)
1 머리
"빨간 스쿠프들이 지나간다'라고 말하는 편이, 섣부르게 하창수를 이해한다는 명목 아래 여러 가지 비평적 수사 내지는 역사적 혹은 사회적 맥락들을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어떤 면에서 진실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ㅡ아니면 명령조로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여유로워져라' 혹은 '좀더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라'든가 '부드럽게 이야기하라', ‘제발 진지하게는 이야기하지 마라' 등을 제안해 보는 말은 어떨까. 위에서 필자가 스쿠프'라는 자동차 이름을 불손하게도(?) 입에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요는 발의 시대 혹은 마차의, 즉 이른바 근대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중략)
2 몸
하창수가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을 발표한 해는 1990년이다. 이해만큼 우리 문단에서 중요한 시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국내외의 정치 경제 시스템 때문에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상상할 권리, 혹은 쓸 권리를 본격적으로 작가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인정( ? )받기 시작한 해이며 그렇게 작가들이 세상에 불쑥불쑥 나온 해이며 스스로 사라져 간 해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박노해의 구속과 사노맹의 소멸, 김남주 시인의 죽음, 민족작가회의의 축소, 사회주의 사회의 개방 등 정치적 상상력의 끝을 1990년대 초반에 작가들은 목격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상상력의 얼터너티브이다. 작가들은 뚜렷한 대안 없이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될 처지에 처한것이다. 무너져 버린 이념의 잔해들을 보라.
이즈음에 등장한 작가들을 보자. 큰 담론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최윤, 버림받은 존재였던 여자의 목소리를 소생시키는 신경숙과 공지영, 윤대녕의 환상기행, 이런 이복형제들의 출현 속에 하창수의 등장도 의미를 가진다. 이들 작가들은 또 다른 아웃사이더이다. 주목해야 될 것은 하창수가 들고 나온 새로운 무기이다.
그날 밤 나는 야전변소에서 홀로 울고 있는 상병을 발견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무에 목을 매었다던 탈영병이 언젠가 우리 소대로 전입되어 왔다가 다시 전출간 그 신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도 눈은 계곡으로 퍽퍽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내렸고, 한기는 여윈 나목의 어깨를 으석으석 짓씹고 있었다. (33쪽)
탕!
그것과 거의 동시에, 저 희게 흔들리는 것이 삼십팔 지피에서 탈영한 병사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확연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의 아랫도리로 사정없이 오줌줄기가 홀러내리고 있었다. 온몸에서 순식간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함힘없이 무너졌고,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었다.(47쪽)
하창수는 마치 주문을 외듯이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전편에 탈출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깔고 있다. 비록 그것이 부드럽고 유연한 문체로 씌어져 있어 무거운 줄을 느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컬트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토막이 나 있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10편의 단편소설들이 합쳐진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이 제대할 때를 마지막으로 시간상으로 편집되어 있지만 독자는 소설 어디에 펴놓고 읽어도 무방하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하창수의 소설은 일정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은 소설의 무늬일 뿐이다. 마치 등뼈 없이 허물거리는 생물체처럼. 그러면 하창수는 왜 죽어 가는 가련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일까. 혹시 그것은 사라져 가기 시작하는 문학에 대한 조곡이 아닐까. 이런 굿과 같은 재현을 통해 지난 시절 온갖 종류의 투쟁이 낳은 결과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잠깐 시각을 바꾸어 보자. 제로섬 게임이란 것이 있다. 게임에서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제로가 되는 것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국 이기주의를 낳게 되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게임이다. 어쩌면 우리의 사회는 제로섬 게임보다 더 낮은 승률이 배당된 것은 아닐까? 지난 시절의 죽음 이후 누가 승리를 거두었는가? 아무도 없다. 승자는 어디에도 없고 패자만 남아 있는 사회, 하창수는 이렇게 말한다.
징벌의 시대는 이상일 뿐이죠. 사회적인 징벌이거나, 개인적인 보복이거나, 혹 그것은 법적인 절차를 밟고서 정당하다는 의미를 부여받고 싶겠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개별적일 뿐이에요. 누구의 말대로, 합치면 언제나 영(零)이 되는 게임에 불과하죠. 타살처럼 말이에요. 어디에나, 어느 시간대에서나 그런 일은 있게 마련이고, 거기다 선악을 갖다 붙이면 정말 피곤해져요. (140쪽)
신병교육대에서 한 신병이 자신의 배속 부대를 화장실 창문을 통해 부모에게 알리다가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공 '나'는 문득 제로섬 게임을 언급한다. 그는 이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지난 시절의 과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승자와 패자의 득과 실이 영이 되는 사회, 제로섬 사회는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사회는 집단에게 또 개인에게도 이기주의만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다 도덕적인 가치까지 첨가되면 참기 어렵게 된다.
이 비판적 전언을 소설에 적용시켜 보자.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인간과 그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서 군림하는 인간의 득과 실, 그것은 결국 제로라는 이야기. 그 참혹한 게임 사이에 벌어지는 희생 제의 이 슬픈 이야기를 통해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은 문학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통과제의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제 아무도 지난 시절을 돌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돌아서지 마라- 이 세상, 사랑 버리고 돌아서지 마라- 나는 가끔씩, 쏟아져 오는 햇살을 보며, 나는 시인이다- 아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라고 턱없이 소리치곤 했다. (92쪽)
3 발
하창수의 세계는 쓸쓸하고 우울하고 차갑고 메마르며 동반자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통과한다. 어느 시대의 문학이나 그 이전 세대의 문학을 부정하는 자리에 그 존재 이유를 묻게 되듯이 하창수의 발은 미지의 영역으로 돌려져 있다. 그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는- 그것이 실존적이거나 포스트모던이거나 간에-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지금의 문학- 권력과 자본의 단맛을 볼 만큼 본- 이 얼마나 사회가 그어 놓은 경계선의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창수의 인물들이 보여 주고 있는 인물들의 행동은 이런 작가의 의지를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하창수가 태어난 문학의 시대는 어둡다. 모든 것을 얻었다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잃어버린 문학, 급격히 혹은 집요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런 의지를 미적으로 정당화하는 능력마저 잃어 가고 있던 난감한 시절에 하창수는 태어난 것이다. 물론 화려한 자리를 피해 적당히 안주할 수는 있다. 우리 주위의 문학을 보자. 얼마든지 그런 비겁한 문학은 있다. 하지만 하창수는 그런 지역을 통과한다. 그 아웃사이더의 까맣게 먼지 묻은 발을 보라.
나는 상투적이고, 답답하고, 꾀죄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를, 나 자신 너무 익숙하고, 메말랐던, 그래서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말들을 남겼다. (180쪽)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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