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그 겨울의 시」 박노해 (2019.11.10)

푸레택 2019. 11. 10. 08:15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 2019.11.1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