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시감상] 엄마 걱정 기형도, 추억에서 박재삼, 내 마음의 고향 6–초설(初雪) 이시영, 파장 신경림 (2019.05.18)

● 엄마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

[명시감상] 시골 큰집 신경림,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낙타 이한직, 오랑캐꽃 이용악 (2019.05.17)

● 시골 큰집 / 신경림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 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 나가면 나는 안다 형은 또..

[명시감상]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 기진호, 비비추에 관한 연상 문무학 (2019.05.17)

●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

[명시감상] 친구야 혼자서 가라 최금진, 그립다는 것은 이정하, 같은 부대 동기들 김승일, 가을의 기도 김현승 (2019.05.16)

● 친구야, 혼자서 가라 / 최금진 속편하게 가라. 느타리버섯 같은 암 세포가 네 항문을 다 파먹고 이미 내장에까지 뿌리내렸다니 자식걱정, 와이프 걱정 하지 말고 용감하게, 대한민국 육군하사답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진격하듯이 그렇게 가라. 나이 서른여덟이면 피는 꽃도 지는 ..

[명시감상] 오누이 김사인, 그 나무 김명인, 고향길 신경림, 행복 유치환, 묘비명 김광규 (2019.05.16)

● 오누이 /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

[명시감상] 봄날은 갔네 박남준, 물푸레나무 김태정, 책을 태우다 김명인 (2019.05.16)

● 봄날은 갔네 / 박남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사태다 앞..

[명시감상] 담장을 허물다 공광규, 봄꽃들 문성해,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고독과 그리움 조병화 (2019.05.15)

●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

[명시감상] 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미루나무 공광규,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신현림, 농무(農舞) 신경림 (2019.05.14)

●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

[명시감상] 하관 문인수, 하관(下棺) 박목월, 하관(下棺) - 목월 선생께 이태수, 백화 북방에서 백석(白石) (2019.05.11)

● 하관 / 문인수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容納)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聖經)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

[감동수필] 파초(芭蕉) 이태준, 풍란(風蘭) 이병기 (2019.05.04)

● 파초(芭蕉) / 尙虛 이태준 작년 봄에 이웃에서 파초(芭蕉) 한 그루를 사왔다. 얻어온 것도 두어 뿌리 있었지만 모두 어미 뿌리에서 새로 찢어낸 것들로 앉아서나 들여다 볼 만한 키들이요 '요게 언제 자라서 키 큰 내가 들어설 만치 그늘이 지나!' 생각할 때는 저윽 한심하였다. 그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