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하관 문인수, 하관(下棺) 박목월, 하관(下棺) - 목월 선생께 이태수, 백화 북방에서 백석(白石) (2019.05.11)

푸레택 2019. 5. 11. 23:01

 

 

 

 

 

 

 

 

 

 

 

 

 

 

 

 

 

 

 

 

● 하관 / 문인수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容納)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聖經)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兄) 님!

불렸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音聲)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 하관(下棺) - 목월 선생께 / 이태수

 

아우 먼저 보내고, 관에 흙을 뿌리며

선생님처럼 ‘좌르르 하직’했습니다.

아우는 눈감으면서 그랬듯이 아무말 않고

말을 다 잃은 나는 아무도 안 보이는데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요 울고있는지요

봄날인데도, 선생님 말씀처럼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입니다

모든 게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아우는

여기에서의 그 빼어남 펴다 말고

모두 팽개쳐버리면서

형님! 하는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고

처자식은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불현듯

‘초월적 지상’을 ‘지상적 초월’로

바꿔버렸습니다. 선생님, 아프게도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입니다

내가 툭 떨어져 흔들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 백화(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북방에서 / 백석(白石)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들던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돝을 잡아 나를 잔치해 보내던 것도

쏠론이 십릿길을 따라나와 울던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 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까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