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감동시詩]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안병찬, 미스킴이라는 나무 김종제, 나무 조이스 킬머 (2019.05.03)

푸레택 2019. 5. 3. 11:26

 

 

 

 

 

 

 

 

 

 

 

 

 

 

 

 

 

 

 

●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 안병찬

 

하늘 위 구름 두르고 오롯이 서서

개구쟁이 아이들 개울가에

피라미 메기 잡는 풍경 구경하며

한적한 시골길 지나가는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등도 긁어 줄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아침저녁 가방메고 지나가는 아이들과

재잘재잘 술레잡기 함께 하며

동네 아주머니 자리펴고 아기 재울 때

산너머 솔바람 자장가를 불러주다

바람결에 들추어진 하얀속살 구경하는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높다란 하늘 위로 엉금엉금 올라가서

숲속 냇물에 목욕하는 엉덩이도 구경하고

저녁이면 살금살금 몰려오는

참외서리 아이들의 망대가 되어주는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도시로 시집가는 시골 새색시

불그레한 미소로 개울 건널 때

길고 긴 그림자로 햇빛을 막아주다

은근슬쩍 얼굴 보며 휘파람도 불어주는

미루나무 되어 살고 싶다.

 

● 미스킴이라는 나무 / 김종제

 

혹시 미스킴이라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배 고프고 눈물 많던 그런 시절

제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이름을 버리고

낯선 이국 땅으로 팔려가

살아가야만 했던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그토록 맑고 청초한 눈동자의

저 시골 처녀

말도 통하지 않는

억센 사나이의 가슴팍에서

향수에 시달리다

눈물로 한 평생을 보내야 했던

은은하고 수수한 저 수수꽃다리

그러니까 저들의 이름으로

리라 혹은 라일락이라고 하는

나무를 아시는가 말이지

첫사랑도 무덤 속에 묻어버리고

청춘도 산불처럼 다 태워버리고

이국땅에서

황무지의 마음으로 살아갔던

미스 킴이라는

수수꽃다리를 아시는가 말이지

그 추운 겨울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이제사 마음 열고 꽃 피었네

고운 향기

바람 타고 바다 건너왔지만

당신의 희생으로 서 있는

봄이 왔다고 절대로 말하지 못하리

 

● 나무(Trees) / 조이스 킬머(Alfred Joyce Kilmer)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

허기진 입을 대지의 달콤한 젖가슴

깊숙이 묻고 있는 나무

온종일 잎에 덮인 두 팔을 들어올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

여름이 오면 머리 한가운데

울새 둥지를 이고 있는 나무

그 가슴에 눈이 내리면 쉬었다 가게 하고

비가 오면 다정히 말을 건네주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

 

TREES / Joyce Kilmer (1886~1918)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A poem lovely as a tree.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Upon whose bosom snow has lain;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 미루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2)

 

2000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당시의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대박’을 터뜨린 영화로 유명하다. 민족의 비극이 응어리져 있는 판문점, 1976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보면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광복절이 며칠 지난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 내 연합군 초소 부근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감독하고 있던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 50~60명에게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 당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계의 눈은 모두 이 미루나무에 모아지고 죄 없는 우리 국민들은 혹시 전쟁이라도 터질까 봐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하다가 며칠 후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미루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나고 나서 이만큼 집중조명을 받은 일은 전에는 물론 앞으로도 두고두고 없을 것이다.

 

미루나무는 개화 초기에 유럽에서 수입하여 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버드나무란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국어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 어느 날 ‘미루나무’가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양버들’이란 나무도 대량으로 같이 들어오면서 두 나무의 이름에 혼동이 생겼다. 지금은 포장이 되어 버렸지만 옛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줄기는 곧고 가지는 모두 위를 향하여 마치 빗자루를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의 나무가 양옆으로 사열하듯이 서 있는 길을 어쩌다가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양버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루나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나 버즘나무인 것과는 달리 개화기의 신작로에는 키다리 양버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병을 앓으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한하운은 〈전라도 길〉이란 시에서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이라 했다.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의 옛 황톳길 양옆에 심은 양버들을 두고 시인은 버드나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고 차량이 많아지면서 가로수로 적당치 않아 거의 없어졌다.

 

미루나무는 전국에서 심고 있는 갈잎나무로서 키 30미터, 지름이 한 아름 이상 자랄 수 있다. 나무껍질은 세로로 깊이 갈라져서 흑갈색으로 되고, 작은 가지는 둥글며 노란빛이지만 2년생 가지는 회갈색으로 된다. 잎은 대체로 삼각형이며,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에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암수 딴 나무로 꽃은 꼬리모양의 꽃차례에 피고 작은 씨가 익는다.

 

생장이 빨라 나무는 연하고 약하여 힘 받는 곳에는 쓸 수 없다. 주로 성냥개비, 나무젓가락, 가벼운 상자, 펄프원료로 이용되는 것이 전부다. 원래 산에 심어 나무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로수로 제 기능을 다 했다면 이 정도 쓰임새로도 아쉬움이 없다.

 

미루나무와 양버들은 일반인들에게는 혼동될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미루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잎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길어 긴 삼각형 모양이고, 양버들은 가지가 퍼지지 않아서 커다란 빗자루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잎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짧아 밑변이 넓은 삼각형 모양이다. 이태리포플러도 미루나무와 혼동되는데, 새잎이 붉은빛이 돌고 하천부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주로 이태리포플러다.

 

● 수수꽃다리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수수꽃다리는 아름다운 나무 이름 뽑기 대회라도 한다면 금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수수꽃다리는 ‘꽃이 마치 수수 꽃처럼 피어 있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수수꽃다리는 북한의 황해도 동북부와 평남 및 함남의 석회암지대에 걸쳐 자란다. 키 2~3미터의 자그마한 나무로 하트형의 잎이 마주보기로 달린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원뿔모양의 커다란 꽃대에 수많은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이 나무의 가치를 알게 된다.

 

수수꽃다리는 더위를 싫어하므로 주로 중북부지방에서 정원수로 흔히 심는다. 현재 한국에는 자생지가 없으며,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수꽃다리는 남북분단 이전에 북한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수수꽃다리는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등 6~8종의 형제나무를 거느리고 있는데, 서로 너무 닮아서 이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꽃을 좋아한 옛사람들은 머리 아프게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합쳐서 중국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향(丁香)이라 불렀다.

 

《속동문선(續東文選)》주에 실린 남효온의 〈금강산 유람기〉에는 “정향 꽃 꺾어 말안장에 꽂고 그 향내를 맡으며 면암을 지나 30리를 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산림경제》 〈양화(養花)〉 편에는 “2월이나 10월에 여러 줄기가 한데 어울려 난 포기에서 포기가름을 하여 옮겨 심으면 곧 산다. 4월에 꽃이 피면 향기가 온 집 안에 진동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화암수록》 〈화목구등품〉의 7품에는 “정향(庭香)은 유우(幽友), 혹은 정향이라 한다. 홍백 두 가지가 있는데, 꽃이 피면 향취가 온 뜰에 가득하다”라고 했다.

 

수수꽃다리는 이렇게 진가를 알아본 선비들이 정원에 조금씩 심고 가꾸어 왔다. 하지만 개화 초기에 들어서면서 라일락이라는 서양수수꽃다리(학명 Syringa vulgaris)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다. 라일락이 일본에 1880년경에 들어왔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수입 수수꽃다리가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라일락은 향기가 조금 더 강하고 키가 약간 크게 자라는 것 외에 수수꽃다리보다 더 특별한 장점은 없다. 이 둘은 꽃이나 향기가 비슷하여 거의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쏟아지는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왔다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라일락은 수수꽃다리를 제치고 공원이나 학교의 정원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라일락은 유럽 사람들도 좋아하는 꽃이다. 수많은 원예품종이 있고, 보통 연보라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진한 보라색까지 다양하다. 5월 중순의 봄날, 라일락은 연보라색이나 하얀 빛깔의 작은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모여 핀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라일락 향기는 금방 코끝을 자극한다. 어둠이 내리면 향기는 더욱 강해진다.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에게 친숙한 꽃이고, 바로 그들의 향기다. 영어권에서는 라일락(lilac)이라 부르며 프랑스에서는 리라(lilas)라고 한다.

 

라일락의 원예품종 중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1947년 미 군정청에 근무하던 엘윈 M. 미더는 북한산에서 우리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 씨앗을 받아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후 싹을 틔워 ‘미스킴라일락’이라 이름 짓고 개량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다. 유럽 라일락에 비해 키가 작고 가지 뻗음이 일정하여 모양 만들기가 쉽고, 향기가 짙어 더 멀리 퍼져 나가는 우량품종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것을 역수입해다 심는 실정이다. 종자확보 전쟁에서 한발 늦은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오래전부터 향료와 약재로 널리 알려진 정향(丁香)이 또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향이 아닌 늘푸른나무로 열대의 몰루카 제도가 원산인 다른 나무다. 이 나무는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채취한 후 말려서 쓰며, 증류(蒸溜)하여 얻어지는 정향유는 화장품이나 약품의 향료 등으로 쓰임새가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