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동화]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명작동화, 강준영의「전쟁과 촛불」(2019.04.28)

푸레택 2019. 4. 28. 14:06

 

 

 

 

■ 전쟁과 촛불 / 강 준 영

 

ㅣ안영희 선생님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수풀 속에 새 집에는

촛불 하나 켜놨죠...

 

때때로, 사람들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세 살 적에, 색동옷을 입고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갔던 일이며, 바람 부는 날 대추나무에 걸린 연을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일이며, 동네 아이들과 소꿉질을 하던 일까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전쟁이 나던 해에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안영희 선생님―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택이었지만―이 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마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을 배웠지만 그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이었는지, 강당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노래를 배웠던 것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하고 선생님이 먼저 두 팔로 동그란 해님을 만들면서 노래를 부르면, 우리들은 소리 맞춰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촛불 하나 켜 놨죠."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식구들 앞에서 응석처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인국아!"

"네?"

"인국인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으니?"

"엄마하고 아빠, 또 선생님…"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즐겁던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일이며, 선생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일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일이, 얼마나 서럽고 가슴 아픈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잃는 슬픔까지도 겪어야 했습니다.


피난을 떠났습니다.

먼 친척이 살고 있는 시골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인국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어디선가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선생님―."

 

ㅣ마음이 추웠던 버스 대합실

 

안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십 년쯤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다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나는 사범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졸업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겨울입니다.

버스 대합실―.

찬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는 추운 대합실입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몹시 지리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조차 꼬박꼬박 조을고 있는지, 몇 번을 보아도 그대로였습니다.


"무료한 밤이야!"

"재미있는 사건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구먼."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스산한 밤이었지."

그 때, 한 여인이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첫 눈에도 성한 사람이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대합실을 씨익 훑어보더니 콧노래를 흥얼댑니다.

"옳지, 무료한 시간의 너울을 벗기는군."

사람들이 여인의 콧노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여인을 보았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서산 너머 해님"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분이 안영희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여인은, 벌써 흥에 겨운지 동그랗게 해님을 그려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가볍게 뛰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싱글싱글 웃어댔습니다.

나에게는 문득 잊었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은…….

이 여인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어댑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습니다.

풀어 헤쳐진 머리속에 숨겨진 여인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이 순간 웃음을 그치고, 나를 보았습니다.

"선생님, 안영희 선생님이시죠?"

그 여인이 나를 봅니다.

초점을 잃은 초라한 눈으로 나를 봅니다.

서른 살은 넘어 뵈는, 어쩌면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이 여인―틀림없는 안영희 선생님입니다.


"어쩌다가 선생님이 ……."

"선생님? 네가 누군데 나를 선생님이래?"

"제가 인국이어요. 서울에서 ……."

"서울?"

"네, 서울에서 1학년 때 배웠죠."

"……."

"생각나셔요?"

여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애처롭고, 안타깝고, 반갑고……, 그런 눈으로 여인을 보았습니다.


여인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봅니다.

자꾸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선생님."

"……난 몰라."

"전쟁이 나던 일은 생각나셔요?"

나는 여인이 잃었던 생각들을 떠올리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전쟁? 전쟁……."

갑자기 여인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킵니다.

가슴 언저리가 에이는 표정입니다.


여인은 슬프게 웃었습니다.

"후후후후……."

여인이 웃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실마리가 풀려 나오는 듯, 그렇게 웃었습니다.

"생각나시죠?"

"생각나실 거여요, 선생님."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합실 문을 열고 쫓기는 사람처럼 뛰어나갑니다.


"선생님!"

나는 여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선생님을 부르면서 자꾸 따라갑니다.

"후후후……."

여인은 뛰어가면서도, 바람소리 같은 슬픈 웃음을 흩날렸습니다.

그 해.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던 겨울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몹시도 마음이 추웠습니다.

"선생님―."

 

ㅣ은희의 집에 촛불이

 

또 십 년쯤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인국 선생님."

이것이 나의 이름입니다. 학생들은 나를 이렇게 부릅니다.

이 세상에는 놀라운 일―오히려 기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옳은―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내가 안영희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오히려 안 선생님이 살아 온 생애 속에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해, 나는 새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조그만 시골 학교입니다.

여기서 일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보람에 젖어 보곤 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학생들은 조금씩 글자를 알게 되고 노래도 제법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득, 나는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를 학생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

수풀 속에 새 집에는

촛불 하나 켜놨죠."

 

이 노래는 뜻밖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간드러지게 팔 동작을 하는 유희와 함께 노래가 산골을 울렸습니다.

노래 속에 담긴 환상적인 이야기―예를 들면 숲 속의 이름 모를 새 집, 밤마다 켜놓은 촛불이며, 새 집 속 산새 가족의 도란도란 피는 얘기 꽃―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노래가 널리 불려지자, 나는 불현듯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안 선생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학부형 한 분이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말쑥한 중년 여인입니다.

"어서 오셔요."

"제가 은희 어머니여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주 인사를 하며, 여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습니다.
"선생님!"

한동안 나는 멍하니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은희.

아직도 햇병아리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은희는 귀여운 아이입니다.

"은희의 어머니가 안영희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김 선생님, 은희가 학교에서 돌아와,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요. 벌써 김 선생님이 이 학교로 와 계시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찾아올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뵙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은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결심했어요. 무엇인가 김 선생님한테 털어놓아야겠다고……."

"잘 오셨어요."

"그냥 인국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옛날처럼 말야……."

"괜찮고말고요."

안 선생님과 나는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한참동안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편이 전쟁터로 나갔지……."

선생님은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상처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만에 전사 통지서를 받았어."

"저도 아버지를 잃었어요, 선생님!"

"그 때, 나는 두 살 짜리 아이가 있었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폭격을 맞아 아기가 죽었어……. 아기의 비참한 시체 앞에서 나는 미쳐 버렸다네."

"그러셨군요."

"십 년 동안이나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병원 신세를 지다가, 도망치기도 하다가…… 이렇게 살았지. 그런데, 뜻밖에 죽었다던 남편을 만났네."

"살아계셨군요."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 남편의 정성으로 성한 사람이 되었다네. 그러나 끝나 버렸어. 남편이 정말 세상을 떠났지, 내 앞에서……."


선생님은 잠시 말을 끊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그 때 만나 뵙던 선생님의 슬픈 모습으로 나는 가슴이 멥니다.

"선생님, 은희가 있잖아요."

"그래, 은희가 있지. 은희는 나의 생명이야. 나의 촛불이지. 은희 아버지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나를 위해서 잠시 이 세상에 다시 내려와, 꺼져 가는 나의 생명에 불씨를 주시고 떠나신 거야."

뺨 위에 눈물이 흐릅니다. 안 선생님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픔을 닦았습니다.

나의 가슴이 찡하게 아파 옵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어둠이 깃든 창밖에 별들이 반짝 빛납니다.


옷깃을 여미고, 안 선생님이 일어섭니다.

"가시겠어요?"

"응."

"염려 마세요."

"그래, 은희를 잘 부탁해."

"잘 키워 드릴게요."

안 선생님과 헤어집니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먼 빛으로 보이는 시골 마을에 집집마다 환한 불이 켜집니다. 은희의 집에도 불이 켜집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은희가 켜논 촛불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 작품 해설

 

전쟁과 촛불

 

6·25를 배경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얽힌 불행을 더듬는 이야깁니다. 제자는 자라서 선생님이 되지만 스승은 남편을 잃고 한때 정신이상이 되기도 합니다. 전쟁은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옛 스승이 어린 딸에게 희망을 찾듯, 우리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 촛불은 평화와 안식을 의미합니다.

 

◇ 작가 약력

강준영: 1944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68년에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세종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고마워요 선녀님》 《촛불 하나 켜 놨죠》 《그리움 나무》 《진주조개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 아픔의 인식과 그 극복의 아름다움, 강준영의 「전쟁과 촛불」/ 김용희

 

1. 강준영과「전쟁과 촛불」의 문학사적 위치

 

동화작가가 확고한 자신의 동화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동화가 단지 아이들의 삶을 다루고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지는 단순한 이야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화 본연의 미학을 담는 독특한 기법을 창출해 내고, 아이들의 다양한 삶에서 시대성에 필연한 인간상을 정립해야 하는 구현의 문제에 기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준영(姜俊榮 1944∼1983)은 그리 길지 않은 문단생활에서도 자기 나름의 독특한 기법을 구사하며 끊임 없이 아이들과 교감되는 토속적 서정을 찾아 한국 창작동화 본연의 미학성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70년대 선도적 작가이다. 처음 그는 1968년 지방의 일간지인《대구매일신문》에 동시「아침」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와, 1970년에 동시집 『영희는 자라서』(자필 프린트물)를 간행한 동시인이었다.

그런 후 1973년 《대구매일신문》에 창작동화 「달」를 발표하면서 무명의 동화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중앙의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으로 동화작가로 데뷔하여 작가로의 입신을 이루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신춘문예에 마지막으로 투고하여 고배를 마시던 1975년, 그 해 강준영은 그 동안 써놓았던 작품들을 추스려 첫 창작동화집 『그리움 나무』(영진문화사, 1975)를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이 『그리움 나무』는 뜻하지 않게도 그에게 제8회 세종아동문학상을 안겨주면서 자연 동화작가로 데뷔하는 작품집이 되었고, 지방의 무명작가에서 일약 신예작가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70년대의 마감을 눈앞에 두고 제2창작동화집 『진주조개 이야기』(계림출판사, 1979)를 출간하면서 그는 70년대 선도적 동화작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해 둔다.

80년대 들어서는 그의 문학적 관심이 한국적 동화 찾기에 주력하여, 경북 상주지방에 산재해 있던 구전 민담의 채집과 재구에 전력하며 『도깨비와 자전거』(견지사, 1982), 『열두 고개의 도깨비』(아동문학사, 1982)를 간행하였으나 1983년 강렬한 문학에의 의지를 다 펴지 못하고 아깝게 타계하고 말았다. 그는 가고, 이듬해 유고작품집 『고마와요 선녀님』(아동문학사, 1984)이 상재되었고, 사후 10주년이 되어 그의 지우들에 의해 대표작과 못다 발표한 몇몇 작품들을 추스린 『촛불 하나 켜 놨죠』(서림문화사, 1992)가 간행되었다.

 

70년대 동화작가의 선도자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해 두는 두 권의 창작동화집, 『그리움 나무』와 『진주조개 이야기』는 관념적 세계를 의미화하는 서사성과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이미지에 의존한 서정시적인 동화의 공간을 탁월하게 이룩해 내고 있다.

제1창작동화집 『그리움 나무』는 주로 고향과 유년이라는 삶의 근원에 인식의 뿌리를 두고 외로움, 그리움, 진실, 사랑, 희망, 행복이라는 관념적 세계를 의미화하는 작업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 관념을 의미화하는 과정에는 체험이 자기화되어 구현된다. 이때 그의 인식의 뿌리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은행나무가 등장한다. 은행나무는 강준영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과 유년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이며 동화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근원적 상징이다.

제2창작동화집 『진주조개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삶은 타인과의 관계 논리라는 시각을 견지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대되어, 그 시대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의미화된다. 그가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소중하게 모색하는 가치관은 인내, 나눔, 정의, 자유, 생명의 존엄성 등의 관념 세계이다. 이때에도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의미화하는 과정에 비유와 상징, 혹은 이미지가 동원된다.

그러나 이 두 창작동화집에는 관념적 세계나 개인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인식 작용에 한결같이 "아픔"이라는 공통된 체험이 내재되어 있다.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아픔, 진실이 왜곡된 아픔, 개인의 존재 가치가 억압당하는 아픔, 현실의 모순됨이라는 아픔 등이 동기가 되어 의미화 과정에 관여한다. 곧 강준영의 창작동화는 이런 아픔들을 인식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라 할 만하다. 바로 강준영의 동화 세계는 아픔을 위무하고 극복하는 아름다움이 탁월하게 그려져 있다. 아픔을 의미화하는 과정에 그의 독특한 기법은 상상력과 인식 세계를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게 이끈다.

 

이처럼 강준영이 그리 길지 않은 문단 생활에 결코 많지 않은 작품으로도 이미 70년대 선도적인 동화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두 권의 창작동화집으로 70년대에 풍성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가라는 점에만 있지는 않다. 그보다 자기만의 고유한 기법을 창출하여 독창적인 동화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 있다. 그의 고유 기법은 단순히 강준영 문체의 섬세함과 구성의 치밀함이라는 형식 차원에만 머믄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개인의 관념적 사고로부터 사회학적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의미화 과정을 통괄하는 개연성을 유연하게 부여하고 있다. 이런 개연성은 개인적 아픔이나 시대적 아픔이 어느 세대에나 공유하는 상징적 기억으로 의미화되고, 아픔 그 자체만을 드러내지 않고 극복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작용에 결부된다.

강준영의 동화적 상상력의 폭은 단순한 70년대의 언어적 감수성을 넘어서 시대적 현상을 포괄하는 현장성과 역사적 생명성까지 확대되어 있다. 거기에다 80년대에 보여준 토속적 서정의 탐구와 전래동화나 민담의 발굴과 재구에 의한 우리 동화문학의 전통적인 모습 찾기에 어느 정도 문학적 성과도 발휘하였다. 이런 강준영의 문학적 성과는 모든 인간이 공동으로 내재하고 아이들이 한결같이 공감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찾기란 일관된 추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소산이다.

 

우리가 강준영을 70년대 대표적이고도 선도적인 작가로 꼽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70년대 활동해 온 작가라는 시기적 관점에 놓이기보다 이처럼 일관된 추구의 과정을 통해 소설과 다른 동화의 미학을 발견해 내고, 동화를 독특한 고유 장르로 독립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법과 토속적인 소재 발굴에 주력해 왔다는 점에 있다. 분명 강준영의 동화는 하나의 상징이며 비유 혹은 이미지의 미학이다.

그는 스토리를 중시하던 동화문학에 새로운 표현법을 제시하며 우리 동화 본연의 미학성을 회복하려 부단히 노력한 작가이다. 이렇듯 강준영은 시대적 상황과 문학적 상상력의 조응을 통해 자기화된 체험을 보편화시키고,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극복해 내어 자유와 희망, 그리고 진실과 행복의 가치를 경도했던 70년대 선도적인 동화작가인 것이다. 바로 「전쟁과 촛불」은 이러한 강준영의 문학사적 위치와 문학관을 대표하는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뛰어난 창작동화이며, 그의 독특한 고유 기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다.

 

2. 「전쟁과 촛불」의 독특한 기법과 구성 원리

 

강준영의 창작동화는 아픔의 기억과 연상이라는 내밀한 의식에 의해 의미화된다. 이러한 의식은 거의 변함 없이 강준영의 독특한 고유 기법과 결부되어 동화적 공간을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이런 구성 원리에 의해 강준영의 동화는 아픔이 의미화되고 아름답게 극복되는 탁월함이 제시된다. 강준영의 대표적인 창작동화「전쟁과 촛불」은 이러한 고유 기법과 원리의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일이다.


강준영의 동화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독특한 고유 기법과 의미화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방법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첫째는 서사에 운문을 삽입하고,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전환하는 연결 과정에 소제목을 붙인 표현 방법이다.

 

문득, 나는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를 학생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놨죠."

이 노래는 뜻밖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간드러지게 팔 동작을 하는 유희와 함께 노래가 산골을 울렸습니다.

―「전쟁과 촛불」중 "은희의 집에 촛불이"의 일부분

이와 같이 운문을 삽입하고 소제목을 붙인 표현 방법은 서사적 공간 안에 서정적 요소를 결합시키고, 사건의 진행과정에 호흡을 조절하여 시간적 경과를 알리기도 하고, 여운을 수반하거나 핵심 내용을 드러내거나 하는 다양한 구실을 하게 된다. 그런 표현 방식이 길고 딱딱한 서사를 받아들이기 거북한 어린 독자에게 동화 읽기의 평이함과 듣기의 재미성을 동시에 얻게 하고, 동화의 상상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용이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동화에 시적인 환상을 구가하고, 이야기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주제와 긴밀히 직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도화된 고도의 표현 기교로 보인다. 특히 그 운문의 성격을 동요, 전래 동요나 민요에서 찾았던 점은 한국적인 정서의 융합까지 염두해 둔 신념의 표현이라 할 만하다. 이 표현 방법은 어린 독자의 독법에 대한 배려와 함께 작품의 내용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 필연성의 소산이다.

둘째는 액자소설과 다른 영화의 오버랩 기법을 도입한 구성 방법이다. 강준영은 하나의 사건과 또 다른 사건을 겹치게 제시하기도 하고, 자신의 실제 체험과 허구를 겹치게 하거나 현실과 환상을 서로 겹쳐 보이게 하는 다양한 기법을 구가한다. 이 구성 방법은 주인물의 입장이 서로 바뀌기도 하고 또 주제 감추기와 드러내기 수단도 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게 활용된다.

특히 단편동화 「자라는 열매」에서는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별해내기 곤란할 정도로 그 방법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전쟁과 촛불」에서는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동요와 율동에 대한 회상과 현실이 교차되고, "안영희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전쟁의 비극적 체험이 "나"의 체험처럼 전이되기도 하고, 은희가 켜 놓은 촛불이 동요의 촛불과 교차되게 하는 데 이 기법이 효용된다. 우리가 관념의 문제와 인간의 존재 가치 문제를 재단하듯 쉽사리 의미화할 수 없듯이, 이 오버랩 기법은 비유와 상징의 겹치기 수법을 통해 서사적인 동화를 이미지화하여 어린 독자에게 생각하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자 한 창의적인 방법인 것이다.

 

셋째는 아이들에게 담화하는 형식을 도입한 발화 방법이다. 이 발화 방법은 이른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독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하는 방식으로 어린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며 주제적 문제로 접근해 간다는 특징을 갖는다. 강준영은 일인칭의 서술시점에 의하건 삼인칭 시점의 이야기이건, 초기작에서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발화 방법을 구사하며 아이들에게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때 화자는 허구의 이야기를 자신이 체험 이야기처럼 담화하는 것이다. 초기 창작동화들, 특히「전쟁과 촛불」이 작가의 자전적 동화처럼 읽혀지는 이유가 여기에 연유한다.

 

이제 나의 이야기―가슴속에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고향의 은행나무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그리움 나무」일부분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을 배웠지만 그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이었는지, 강당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노래를 배웠던 것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전쟁과 촛불」일부분

 

강준영의 창작동화는 이와 같이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듯 이야기한다. 이런 방식은 고백적이다. 강준영 자신이 직접 어린 독자를 지칭하고 친절하게 언급해 주는 이러한 서술 태도는 작가가 스스로 동화라는 문학 장르를 작가와 어린 독자 사이의 직접적인 담화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발화 방법은 구연동화의 기법을 도입한 것이기도 하고, 민담의 전래 방식을 그대로 현대 창작동화 기법으로 응용한 것이기도 하다.

창작동화가 활자 매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반해 강준영은 이처럼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곧 그는 동화 자체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준영 동화의 화자는 자신과 무관한 어떤 사건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체험처럼 스스럼없이 어린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가 일방적인 발화 주체가 되어 직접적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담화의 방식이 강준영 동화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이런 발화 기법은 구어체가 되어 구연동화를 듣는 것 같은 친근함을 주고 실제로 우리 주위의 이야기라는 소중함과 진실됨을 심어준다. 「전쟁과 촛불」에 담긴 이야기가 진실됨과 공감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발화 방법의 영향력이다.

강준영 창작동화의 주제는 「전쟁과 촛불」에서 살필 수 있는 것 같이 주로 그리움, 외로움, 사랑, 아픔, 자유, 희망, 행복 등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것들이다. 강준영은 이런 근원적인 삶의 문제에 접근해 가는 방식으로 이 세 가지 독특한 이야기 기법을 도입했을 법하고, 장차 어린 독자들이 겪게 될 그런 삶의 문제들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극복해 나가게 하는 방법으로 이 이야기 기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어려운 관념적인 주제를 강준영은 가장 자연스럽게 자기 삶의 경험과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끌어들여와 자전적 동화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기법은 강준영 동화의 고유한 상징적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전쟁과 촛불」은 이런 고유 기법과 원리가 융합되어 일구어낸 작품으로, 아픔의 인식과 그 극복의 아름다움을 성공적으로 의미화해 놓고 있다.

 

3.「전쟁과 촛불」에 담긴 문학적 의미

 

「전쟁과 촛불」은 이른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가 자신의 기억 속에 내밀히 간직된 소중한 한 인물의 아픈 체험을 독자에게 진솔하게 털어놓는 방식으로 작가의 의도화된 의미를 내밀히 드러낸다. 곧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해맑은 모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초등학교 때 만난 담임 안영희 선생님이란 인물이 겪은 아픈 체험을 자신의 체험으로 받아들이면서 민족사와 개인의 족적에 남긴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유장한 미학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자전적 동화 같이, 순간순간 자신의 가슴속에 고이 감추어 둔 기억들을 들추어내듯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박꼭질할 때에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놨죠……

 

전쟁이 나던 해에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안영희 선생님 ―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택이었지만 ― 이 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마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을 배웠지만 그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이었는지, 강당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노래를 배웠던 것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하고 선생님이 먼저 두 팔로 동그란 해님을 만들면서 노래를 부르면, 우리들은 소리 맞춰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촛불 하나 켜 놨죠."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식구들 앞에서 응석처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과 촛불」첫 부분

언제나 고향은 행복한 곳이다. 어린 시절의 정겨운 추억이 스며 있고, 어디까지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집안 식구들이 "나"의 응석을 즐겁게 받아주는, 무한한 사랑에 대한 근원적 접근이 가능한 곳, 그러므로 "나"의 고향과 유년은 언제나 행복이 깃들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물은 "나, 김인국"이다. 나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했던 것 같습니다"라는 서술어들이 그때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들을 되살려 내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재적 상황을 암시하는 주된 복선이 된다. 곧 "나"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에 불과할 뿐이다. 이 이야기의 제목인 "전쟁과 촛불"에 전제된 사실과 같이 6.25란 전쟁은 "나"의 행복한 어린 시절을 앗아간 발단이 되었고, 기억 속에 내밀히 간직된 이야기를 풀어놓는 "나"에게 처음으로 아픔을 알게 해 준 근원이 되었다.

나에게 전쟁은 아버지를 잃게 하고,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내게 재미있는 율동과 함께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준 "아주 마음이 좋은 분"인 담임 선생님과 헤어지게 만들고, 먼 친척이 살고 있는 시골로 피난을 가게 하여 나의 가슴 한 구석에 "서럽고 가슴 아픈 일"을 새겨준 근원적 동인이었다. 그렇지만 그 전쟁이 내게 안겨준 서럽고 가슴 아픈 일이란 단지 집과 아버지와 선생님을 잃게 한 상실에 대한 아픔일 뿐이지 절박한 위기와 삶의 고통스러움이란 생존을 위협한 폭거는 아니었다.

그 전쟁이 내게 준 아픔은 무엇보다 "서산 너머 해님"으로 시작하는 동요와 율동을 가르쳐 주고 나를 귀여워해 주던 안 선생님과의 이별이 남긴, 상실에 대한 그리움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와 이별을 하게 된 안 선생님에게 6.25란 전쟁은 생존 자체를 뒤흔들며 치유하기 힘든 아픈 상처를 남긴 폭거였다. 안 선생님은 전쟁이 일어나자 남편이 전쟁터로 나가고 일 년만에 전사 통지서를 받게 된다. 그때 안 선생님은 두 살짜리 아이를 두고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아이가 폭격에 맞아 죽는 엄청난 비극을 맞는다.

안 선생님은 아이의 비참한 시체 앞에서 그만 미쳐 버리고 만다. 그녀는 미친 사람으로 길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고 또 도망쳐 나오기도 하며 그렇게 십 년 간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기적 같이" 죽었다는 남편을 다시 만나 안정을 회복하고, 새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전쟁은 그녀에게 행복한 삶을 파행으로 치닫게 만든 폭거인 셈이다.

이 「전쟁과 촛불」은 "나"의 기억 속에 우두커니 남아 있는 상실의 아픈 체험과 "나"의 기억 속에 내밀히 존재하던 "안영희 선생님"이 겪어낸 비극적 체험이란 두 이야기를 강준영의 고유한 세 가지 이야기 기법으로 정교하게 짜놓고 있다. 곧 이「전쟁과 촛불」속에는 "나"가 경험한 상실의 아픔이란 이야기 유형과 안영희 선생님이 겪은 비극적 체험 이야기 유형이란 각기 다른 체험이 전쟁이라는 근원적 배경 속에 똑같은 무게로 묶여져, 서로 다른 아픈 체험들을 공유하게 만든다. 그것은 나의 상실의 아픔이란 빈 가슴 공간 안에 안 선생님의 비극적 체험이 전이되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주인물인 나에게 "서산 너머 해님"으로 시작하는 동요와 율동을 가르쳐 주던 안 선생님을 상실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커다란 아픔이었고, 또 자신이 커서 미친 사람으로 다시 만나게 된 그녀의 건강한 정신에 대한 상실감이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에 용인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에 모태가 된 사건이 6.25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강준영은 결코 이 「전쟁과 촛불」에서 그 가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을 의미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통해 역사성이나 현장성에 놓인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거나 전쟁의 가혹성을 고발하려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준영이 이 「전쟁과 촛불」을 통해 어린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소중한 의미는 "나"가 "안영희 선생님"을 우연히 아니, "기적 같이" 십 년쯤의 세월의 간격을 두고 만나는 세 번의 만남 속에 얹혀 있다. 그 만남에 반드시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의 동요가 매개되어 있고, 그 동요를 통해 그녀가 겪은 전쟁의 비극적 체험이 "나"가 경험한 상실의 아픔에 전이되어, 내가 겪은 상실의 아픔과 그녀가 겪은 비극적 체험이 똑같은 무게로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그 첫 번째 만남은 초등학교 입학해서 "한 달 남짓" 담임 선생님으로 만나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동요와 재미나는 율동을 배울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다. 이때는 어떠한 갈등과 분열도 개입되지 않는 말 그대로 행복한 만남이다.

 

두 번째 만남은 버스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난 사범학교 졸업 무렵이다. 안 선생님과 헤어지고 십 년쯤 지난 후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될 무렵, 행복한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던 안 선생님과의 두 번째 만남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와 하나의 커다란 아픔으로 남는다. 그녀는 "풀어 헤친 머리"에 "초점 잃은 초라한 눈"을 한 "첫 눈에도 성한 사람이 아닌" 여인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던 까닭이다.

나에게는 문득 잊었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쪽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을…….

이 여인도 그렇게 했습니다.

―「전쟁과 촛불」의 일부분

 

그저 스쳐지나 칠 번한 그녀가 버스 대합실에서 나에게 아련한 그리움으로 잔존해 있던 이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동요를 콧노래로 부르고 흥에 겨워 율동까지 하며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인의 손을 잡고 옛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애를 썼으나 그녀는 갑자기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쫓기는 사람처럼" 슬픈 웃음을 흩날리며 달아나 버린, 애처롭고 안타까운 만남이었다. 이 두 번째 만남은 나에게 "자꾸 가슴이 아려" 오게 하고, "마음이 몹시도 춥"게 만드는 아픔을 남긴다. 전쟁이 준 그녀의 정신적 외상이 나에게 또 다른 아픈 체험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만남은 "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어느 조그만 시골 학교에서 귀여운 일학년을 맡아 가르치던 교사 시절이다. 그것은 두 번째 만남 이후 또 십 년쯤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기적 같이" 나는 그 시골 학교에서 그녀를 학부형으로 만나게 된다. 나는 오랜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안영희 선생님에게 배운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의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동요를 "학생들이 조금씩 글자를 알게 되고, 노래도 제법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르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 동요는 뜻밖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아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팔 율동과 함께 온 동네에 널리 퍼지게 되자 그녀가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말쑥한 중년 부인"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햇병아리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은희"라는 "귀여운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그 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전쟁이 남긴 정신적 외상들을 서슴없이 풀어놓는다. 전쟁이 할퀸 그녀의 깊은 상처는 두 번째 만남 이후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으로 잔존하던 나의 아픈 빈 가슴 공간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내가 직접 겪은 아픔으로 공유된다. 바로 나에게 전쟁이 남긴 아픔이란 안 선생님의 비극적 체험이 공유된 아픔이 되는 셈이다.

 

이렇듯 이 「전쟁과 촛불」에서 가장 비중을 갖는 중요한 제재는 6.25 전쟁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똑같이 정신적 외상과 근원적인 아픔을 남긴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준영이 이 「전쟁과 촛불」에서 어린 독자에게 주고자 한 소중한 의미는 전쟁이 남긴 외상이 아니라 바로 동요와 관련된 촛불의 의미에 놓여 있다. 즉 두 주인물의 만남은 전쟁이 매개되어 만나고 서로 아픔을 나누었던 것이 아니라 동요와 율동이 매개가 되어 만남이 이루어지고 아픔을 공유하게 된 사실이다.

여기서 "나"가 그녀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픈 체험 그 자체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은희)에 대한 희망으로 극복하고자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전쟁"은 이들의 헤어짐과 비극적 체험을 갖게 한 동인이 되었지만, 강준영은 동요의 분위기와 같은 현실을 실현하고자 한 데에 이 동화의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놨죠"라는 삽입 동요는 낮 동안 모이를 구하러 나갔던 산새 가족들이 해가 져서 어두워 오면 모두 새집으로 돌아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는 행복의 노래이다. 따라서 「전쟁과 촛불」은 두 주인물들의 첫 번째 만남이 동요의 분위기와 일치하는 행복한 만남이었고, 두 번째 만남은 동요와 불일치한 불행한 만남이며, 마지막 세 번째 만남은 다시 동요와 일치하는 행복한 만남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구조를 가진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동화의 구조는 "행복→불행→행복"이라는 서사적 진행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행복에서 불행으로 나아가고 다시 행복으로 진행될 때 반드시 아픔이라는 인식 작용이 결부되고, 그 아픔을 극복하는 의식으로 진행된다는 동화의 과정을 작가는 실현시키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픔의 극복이 어떤 노력의 대가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적 같이" 이루어지는 우연한 계기성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안 선생님은 "기적 같이" 남편을 다시 만나 그의 정성으로 성한 사람이 되어 또 은희를 낳았고, 나는 "기적 같이" 안 선생님을 두 번씩 만나고 은희를 가르치게 된다. 이 "기적 같이" 라는 말은 작품의 내용을 압축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렇게 압축시킨 동화적 공간 안에 작가의 어떤 의도, 즉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아픔을 의미화하기 위해 설정된 자연스런 연결 고리가 바로 "기적 같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주제를 전쟁에 대한 고발에 두고자 한 것이 아니라 촛불의 의미에 두기 위한 의도화이자 촛불의 의미화인 것이다.

 

선생님은 잠시 말을 끊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그 때 만나 뵙던 선생님의 슬픈 모습으로 나는 가슴이 멥니다.

"선생님 은희가 있잖아요."

"그래, 은희가 있지. 은희는 나의 생명이야. 나의 촛불이지. 은희 아버지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나를 위해서 잠시 이 세상에 내려와, 꺼져 가는 나의 생명에 불씨를 주시고 떠나신 거야."

빰 위에 눈물이 흐릅니다. 안 선생님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아픔을 닦습니다.

나의 가슴이 찡하게 아파옵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어둠이 깃든 창밖에 별들이 반짝 빛납니다.

옷깃을 여미고, 안 선생님이 일어섭니다.

"가시겠어요?"

"응."

"염려 마셔요."

"그래, 은희를 잘 부탁해."

"잘 키워드릴게요."

안 선생님과 헤어집니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먼 빛으로 보이는 시골 마을에 집집마다 환한 불이 켜집니다. 은희의 집에도 불이 켜집니 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은희가 켜논 촛불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촛블은 꺼지지 않습니다."

―「전쟁과 촛불」끝 부분

 

촛불에 지닌 의미는 따뜻하고 행복한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동요와 율동에 잘 담겨 있다. 그 동요와 율동은 안영희 선생님과 나의 기억의 연결 고리이자 "십 년쯤"이란 세월을 둔 사건을 이어나가는 끈이다. 그러니까 삽입된 동요와 율동은 그저 동화의 시적 분위기를 위해서 삽입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사건을 연결하며 안 선생님과 나의 기적 같은 만남을 개연성의 만남으로 인식시켜 주고, 이 동화의 주제를 내포한 중요한 비유이자 상징인 것이다.

결국 은희가 켜 놓은 촛불은 어머니를 기다리는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의 불꽃이며, 안 선생님에게 있어 촛불이란 죽은 남편이 "잠시 이 세상에 내려와" 남긴 생명의 불씨인 딸 "은희"를 의미한다. 은희처럼 기다릴 사람(어머니)이 있다는 것과 안 선생님처럼 미래(은희)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모두 행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은희는 안 선생님의 행복의 촛불이자 "나, 김인국 선생님"의 희망의 촛불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전쟁과 촛불」은 한마디로 "전쟁"이 한 집안의 파괴와 정신적 외상이란 어둠을 몰고 왔다할지라도 "촛불"은 그 삶의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불씨이자 한 가닥 가냘픈 희망임을 의미화한 작품인 것이다.

 

이처럼 「전쟁과 촛불」은 제목만 놓고 보면,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괴력 앞에 놓인 "촛불"이라는 작은 형상이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동격이 되어 있다. 그 동격은 "전쟁과 촛불"의 의미가 파괴/평화, 어둠/밝음, 헤어짐/만남, 거대함/가냘픔, 갈라짐/이어짐, 불행/행복이라는 이항대립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전쟁의 이야기와 촛불의 이야기가 동등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 같이 느껴지게 하질 않는다.

진정 강준영이 이 동화에서 "전쟁과 촛불"을 테마로 설정해 놓고 독자에게 의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가냘프기만 한 촛불에 실린 무게감이다. 거대한 파괴력 앞에서 꺼질 듯 꺼질 듯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의 가냘픈 형상이 동화 내용의 중심에 서서 어린 독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줄거리 중심의 동화가 아니라 이미지 동화라는 것을 알려 준 셈이다. 이 동화를 단지 줄거리로 읽으면 전쟁의 의미가 전체를 압도하지만, 이미지로 읽으면 촛불의 의미가 더 무게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강준영은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발화법으로 전쟁의 그 무서운 충격과 거대한 파괴력 앞에서도 되살아나는 촛불의 의미를 어린 독자에게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을 터이다. 촛불은 그 충격과 파괴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로 살아 남아 있다는 신념을 "선생님, 당신의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라는 "나"의 마지막 독백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강준영의 고유 기법을 통해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이미지로 주제를 빚어놓고 있다. 강준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물인 "나"의 기억을 안영희 선생님의 비극적 체험에 맞춰놓고 그 기억을 풀어놓듯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6.25와 관련된 정신적 외상을 객관적인 묘사와 함께 이야기가 추억, 회한의 서정시적 공간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서정 동요와 탁월하게 어울어지며, 자신의 경험담을 어린 독자에게 들려주듯이 전달하는 담화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거기에다 안 선생님과의 헤어짐과 만남의 매개로 "촛불 하나 켜 놨죠" 할 때에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율동을 곁들인 동요로 연결시킴으로써 시적 환상과 재미성까지 기여하고 있다.

흔히 동화를 팬터지 문학이라고 하지만, 이 「전쟁과 촛불」은 팬터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이미지의 언어로 정교하게 짜놓았다. 다시 말하면, 팬터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따뜻한 동요의 서정 공간을 정교하게 옮겨 넣음으로써 이 이야기가 아픔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픔을 극복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무게와 깊이를 더해 준다. 강준영은 자신의 고유 기법을 통해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유하면서 나아가 우리의 보편화된 아픔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고, 또 어린 독자에게 공감력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결국 이 「전쟁과 촛불」은 아픔을 인식해 가는 삶의 현실에 대한 눈뜸과 그 치유 방법을 깨달아 극복해 나가는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강준영은 어린 독자에게 의식의 저층에 깔려 있는 6.25 전쟁으로 인한 실조(失調) 현상을 알게 하고, 또 그 현상을 극복하게 하는 동인이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일관성 있는 진실된 삶이라는 사실을 은연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쟁의 외상으로부터 그리움과 안타까움, 애처로움과 아픔 등의 인식에 눈뜨게 하고, 또 그 아픔 속에서 희망이나 진실, 사랑이나 행복 따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남의 아픔을 바르게 인식하고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때 촛불의 의미가 비로소 행복의 의미로 대체되는 일이다. 이러한 아픔을 인식하고 아름답게 극복하는 힘은「전쟁과 촛불」에서뿐만 아니라 강준영 동화의 어느 작품에서든 우리가 동일하게 맛볼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다. 분명「전쟁과 촛불」과 강준영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동화문학사는 풍족하고 행복하다.

 

글=김용희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1982년 《아동문학평론》을 통해 평론활동 시작, 제9회 방정환문학상 수상. 저서로 아동문학평론집 《동심의 숲에서 길 찾기》와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 》(엮음) 등이 있음.

 




●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명작동화>

 

 

 

만년 샤쓰(방정환)

 

바위나리와 아기별(마해송)

 

가자미와 복장이(이주홍)

 

밤 전차의 소녀(이원수)

 

대포와 꽃씨(김성도)

 

꿈을 찍는 사진관(강소천)

 

샛별과 어머니(김요섭)

 

꽃초롱(신지식)

 

별님을 사랑한 이야기(이영희)

 

아기개미와 꽃씨(조장희)

 

까치를 기다리는 감나무(이준연)

 

청개구리와 막차(최효섭)

 

밤비(이현주)

 

쌍골죽의 꿈(권용철)

 

송아지가 뚫어 준 울타리 구멍(손춘익)

 

보이나 아저씨(이영호)

 

종달새와 소년(조대현)

 

전쟁과 촛불(강준영)

 

무명저고리와 엄마(권정생)

 

까치네 집(임신행)

 

애기 반디(김은숙)

 

연밥(정진채)

 

노을(정채봉)

 

꽃씨를 먹은 꽃게(배익천)

 

행복한 지게(윤수천)

 

돌(강정규)

 

어른들의 어린이날(송재찬)

 

누나와 징검다리(장문식)

 

아버지와 비둘기(이상교)

 

https://youtu.be/sgT9eNH2w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