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우리나라 꽃들에겐 김명수,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윤주상, 나무(외로운 사람에게) 조병화 (2019.04.19)

푸레택 2019. 4. 19. 23:41

 

 

 

 

 

 

 

 

 

● 우리나라 꽃들에겐 / 김명수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꼬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씨감자로 배를 채운 저녁나절처럼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아려오는지

 

쥐오줌풀, 말똥가리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통발, 개차즈기, 개씀바귀, 구리때,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못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이름들 뿐인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굴,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왜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낯 뜨겁고 부끄러운 이름들 뿐인지

 

쥐꼬리망초, 명주실풀, 며느리밥풀, 좁쌀풀, 속속이풀, 송장풀, 주름잎, 쐐기풀, 쑥부지깽이, 개밥풀, 겨우살이풀, 고비, 절굿대, 끈끈이주걱, 왜젓가락나물, 가막사리, 자주쓴풀...

 

왜들 그렇게도 모두가 하나같이 춥고 배고프고 없이 사는 이름들 뿐인지

 

우리나라

대한민국

리퍼브릭 오브 코리아

 

이 좁은 땅덩어리에 웬 놈의 인사 인물은 뭐가 또 그렇게 많은지

모두가 다 저가 잘났고 저만 똑똑하고 저만이 떳떳한데

왜 그렇게 죄도 없는 우리 풀들만 바보 병신 닮았는지

남들처럼 허리 한 번 바로 펴보지 못하고

평생을 죄인같이 땅바닥에 코를 박고 설설 기며 살아를 왔는지

 

쥐손이풀, 가시꽈리, 개지치, 골풀, 구실붕이, 가는장때풀, 날개골풀, 네귀쓴풀, 쇠똥가리풀, 갈퀴나물, 잠자리피, 갯사상자, 까치수염, 꼭두서니, 고슴도치풀, 갯는쟁이, 긴담배풀, 괴승아, 조개풀, 수박풀...

 

성도 없는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모진 목숨 모진 목숨

모질게도 질긴 목숨 천하고도 귀한 목숨

어쩌면 그렇게도 장하고 서러운지 서럽고도 장한지

외면 욀수록 남의 이름 같지 않고

어쩌면 그렇게도 네 이름 내 이름 닮았는지

우리네 거시기 쏙 빼 닮았는지

 

● 나무(외로운 사람에게) / 조병화

 

외로운 사람아,

외로울 땐 나무 옆에 서 보아라

나무는 그저 제자리 한평생

묵묵히 재 운명, 제 천수를 견디고 있나니

너의 외로움이 부끄러워지리

 

나무는 그저 제자리에서 한평생

봄, 여름, 가을 긴 세월을

하늘의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으면 입은 대로 참아 내며

가뭄이 들 면 드는 대로 이겨내며

홍수가 지면 지는 대로 견디어 내며

심한 눈보라에도 폭풍우에도 쓰러지지 않고

의연히 제 천수를 제 운명대로

제자리서 솟아 있을 뿐

 

나무는 스스로 울진 않는다

바람이 대신 울어준다

나무는 스스로 신음하질 않는다

세월이 대신 신음해 준다

 

오, 나무는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

미리 근심하지 않는다

그저 제 천명 다하고 쓰러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