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님 / 곽재구 늦은 밤 남면 가는 시외버스 차창에서 고단한 네 하현의 눈썹을 보았구나 봉숭아 물든 손톱 너머로 고향집 마당 가득 푸른 하늘은 펼쳐 있고 가을걷이 끝난 들판 억새밭 위로 희게 웃는 식구들의 얼굴도 보이겠지 감잣대를 엮어 말리는 엄마 곁에서 동생들은 또 지난 여름 산사태를 생각할까 흙더미에 묻힌 아버지와 막내 자갈길에 버스는 자꾸 퉁겨오르고 그때마다 깜박 깨어나는 네 졸음 속으로 덧없는 한 시대의 어둠과 슬픔은 밀려가고 차창 밖 어둠 속에 꽃을 던지는 마을의 도라지꽃 불빛이 스스럽다 여느 밤 충장로 거리에 나서면 가시내들은 엉덩이를 부풀린 목 짧은 바지에 퍼머넌트 히히덕거리고 무슨 잭슨 플록이다 카라얀이다 요란하지만 경님아 그것들이 지닌 영혼은 밤 버스에 깜박깜박 조는 고단한 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