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찔레꽃 필 무렵' 목성균 (2021.10.16)

푸레택 2021. 10. 16. 22:32

■ 찔레꽃 필 무렵 / 목성균 (수필가)

찔레꽃이 피면 나는 한하운처럼 울음을 삭이며 혼자 녹동 항에 가고 싶어진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누런 보리밭 사이로 난 전라도 천리 길을 뻐꾸기 울음소리에 발 맞추어 폴싹폴싹 붉은 황토 흙먼지 날리며 타박타박 걸어가고 싶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서러운 길인지 알고 싶다.

찔레꽃 하얗게 핀 산모퉁이 돌아서 “응야 차-. 응야 차-.” 건강한 젊은 육신들이 꺼끄러기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보리타작하는 소리 질펀한 동네 앞, 둥구나무 아래 앉아서 발싸개를 풀어 풀어 볼 것이다. 발가락은 다 있는지-. 구태여 그게 무슨 대수일까 마는 그래도 궁금한 사람의 마음을 어찌 당하랴. 발가락은 다 있다.일그러진 문둥이의 얼굴에 어린 기쁨, 보일까. 둥구나무 그늘 아래 이는 바람에 얼굴을 씻고, 아니 눈물을 닦고 누런 보리밭을 건너다보면 찔레꽃이 누이처럼 애련하게 피어있다. 먼 산을 울리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몽당손가락으로 몽당연필을 쥐고 편지를 쓴다.

‘누이야. 아직 발가락은 다 있다.’
찔레꽃을 보면 지금도 한하운이 걸어간 식민지 시대의 전라도 천리 길을 상상하게 된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피 같은 비지땀을 흘리며 붉은 흙먼지를 폴싹폴싹 날리며 뻐꾸기 소리에 발맞춰 걸어가는 천형의 사나이 길-. 찔레꽃 피면 나는 천형의길을 답사한다. 한하운은 자서전에서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한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라고 하였다.

찔레꽃은 우리나라 어디고 한마음으로 핀다. 찔레꽃을 보면 하나의 배달민족이 꽃피어 있는 것 같다. 오일장날 동네 어귀마다 흰옷 입고 나서는 장꾼 같이 전국 어느 산기슭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핀 찔레꽃 무더기-. 우리나라 사람은 똑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꽃이다. 유월 화창한 햇살 내린 산기슭, 뙤기밭 머리에 하얗게 무더기를 짓고 핀 하얀꽃을 보면 뜨겁고 간절한 마음을 하얗게 삭이는 남도잡가소리 들리는 듯하다. ‘인간사 그리워 필닐니리’ 한하운의 보리피리 소리 들리는 듯하다.

녹동(鹿洞)을 처음 안 것은 퍽 오래 되었다. 여수 차부(車部)에서 나그네의 투박한 남도 사투리에 속에 섞여서 버스시간을 기다리는데 “녹동행 출바알 -.” 하는 안내원의 소리가 들렸다. 그 녹동이라는 지명이 내 행선지처럼 귀에 쏙 들어 왔다. 처음 들어 보는 지명이었다. 발음도 입안에서 구르는 정겨운, 우리들의 고모님 시집 동네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녹동이 어디입니까?
“녹동이야, 녹도(鹿島) 건너가는 항구가 녹동(鹿洞)이제-.”
시골 식자쯤 되는 행색인 사람이었다. 그 나이에 녹동도 모르느냐는 눈 째로 내 행색을 쓱 훑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히 주눅이 들어서 머쓱하게 서있는데
“녹도 모르요?. 그럼 소록도는 아남?”
‘아-! 소록도.’ 녹동, 어쩐지 찝찔한 눈물 맛 같은 어감이더라니 -. 그러니까 녹동이 어디쯤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보리가 누렇게 익는 들판을 건너, 뻐꾸기 우는 고개를 넘어, 찔레꽃 하얗게 피는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부두에 하얗게 페인트칠을 한 병원선이 접안(接岸) 하고 있는 항구일 것이다.

내가 소년일 때다. 사립짝 안으로 말없이 하얀 중위적삼을 입은 남자와 하얀 치마적삼을 입은 여자가 손을 잡고 들어와 섰다. 남자는 밀짚모자를 여자는 무명수건을 깊숙이 나려 써서 얼굴을 가렸다. 그들은 말없이 서있었다. 어머니가 바가지에 보리쌀을 한 사발쯤 되게 담아 가지고 가서 바랑에 부어주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사립짝 밖으로 나갔다. 나도 따라 나가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눈부신 햇살 속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찔레꽃 한 무더기처럼 슬펐다. 뻐꾸기 청승맞게 울었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서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이 하고싶어졌는데, 그 목적지가 녹동이었다. 아직 초보 운전자가 가기에는 먼길이었지만 굳이 그 곳이 가고 싶었다. 찔레꽃 필 무렵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남도 길가에 하얗게 찔레꽃이 피어있었다. 한하운이 걸어갔을 길과는 상관없는 호남고속도로 연변에 그렇게 찔레꽃이 피어있었다. 찔레꽃은 아무데라도 핀다. 서러운 문둥이를 위해서 피는 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찔레꽃은 내게 한하운의 슬픔을 조용조용 속삭여주는 것이었다.

녹동항 가는 길은 생각한대로 보리가 누렇게 읽는 황토밭 질펀한 구릉을 넘고 돌아서, 찔레꽃 무더기무더기 핀 야산을 돌아서, 한참 고흥반도를 내려가서 남쪽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하운의 애수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활기찼다. 부두에는 어선들이 가득하고 수조에는 강성돔이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다. 한하운이 보리피리를 불면서 소록도 건너가는 배를 기다리던 자리는 이미 국민소득 7천불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막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건너편 섬이 노을 속에 잠겼다. 신항(新港)을 건설하는 한적한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섬 모퉁이를 건너다보았다. 교회와 나환자의 병동 같아 보이는 하얀 건물들이 노을에 빛났다. 하얀 수성페인트를 누추해질 새 없이 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섬 기슭에 하얗게 찔레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얼른 보기에 우리 집에서 보리쌀 한 사발을 얻어 가지고 동구 밖 둥구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던 문둥이 내외 간 같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필닐니리 보리피리 소리 들려올 것만 같았다.

하얗게 큰 건물이 하얗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찔레꽃 무더기에게 흡사 그리 말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제발 고통스러워도 참고 살아. 사는 게 죽는 거보다 그래도 뜻을 가질 수 있어서 좋잖아. 한센균이 너의 육체는 부패시켜도 정신은 부패시키지 못하잖아---. 죽는 날까지 정갈한 마음 잃지마-.”
섬은 서서히 어둠에 묻혀갔다. 섬은 적막하게 컴컴해지는데 건물과 찔레꽃만 하얗게 드러나 보였다. 한하운의 시심처럼, 삶의 의지처럼---.

해마다 찔레꽃이 피면 녹동항에 가서 저무는 섬을 건너다 보고 싶어진다.

글=목성균 수필가

목성균(睦誠均) 은 1938년 충북 괴산군 연풍에서 태어나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했다. 1968년 산림직 국가공무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25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1993년 퇴직 후 「월간 에세이」에 초회 추천된 뒤, 1995년 월간 「수필문학」에 「속리산기」로 추천 완료됐다. 2003년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 작품집에 선정되었고, 2004년 3월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5월 타계했다. 저서로 『명태에 관한 추억』(2003), 『생명』(2004), 선집으로 『행복한 고구마』(2010), 『돼지불알』(현대수필가 100인선, 2010) 등이 있다.

/ 2021.10.16(토)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