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소설읽기] 「눈길」 이청준 (2019.12.05)

◇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53) 눈길》 (1995, 동아출판사)에 실려있는 이청준의 소설 『눈길』을 읽었다. ■ 눈길 / 이청준 "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 점심상을 물러나 앉으면서 나는 마침내 입 속에서 별러 오던 소리를 내뱉어 버렸다. 노인과 아내가 동시에 밥숟가락을 멈추며 나의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본다. "내일 아침 올라가다니. 이참에도 또 그렇게 쉽게?" 노인은 결국 숟가락을 상 위로 내려놓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묻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내친 걸음이었다. 어차피 일이 그렇게 될 바엔 말이 나온 김에 매듭을 분명히 지어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 내일 아침에 올라가겠어요. 방학을 얻어 온 학생 팔자도 아닌데, 남들 일할 때 저라고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나요. 급하게 맡아 놓은 일도 한..

[소설읽기] 「벌레 이야기」 이청준 (2019.12.05)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53) 눈길》 (1995, 동아출판사)에 실려있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읽었다. 오래 전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감명깊게 읽었다. 오늘 읽은 『벌레 이야기』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 벌레 이야기 / 이청준 아내는 알암이의 돌연스런 가출이 유괴에 의한 실종으로 확실시되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은 악착스럽게 자신을 잘 견뎌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가 어쩌면 행여 무사히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희망과 녀석에게 마지막 불행한 일이 생기기 전에 어떻게든지 놈을 다시 찾아내고 말겠다는 그 어미로서의 강인한 의지와 기원 때문인 것 같았다. 지난해 5월 초 어느 날 알암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각이 훨씬 지나도록 귀가를 안 했다. 달포 전에 갓..

[소설읽기] 「무진기행」 김승옥 (2019.12.01)

■ 무진 기행 / 김승옥 무진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 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분 후엔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테토론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 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

[소설읽기] 「장난감 도시」 이동하 (2019.11.19)

● 장난감 도시 / 이동하 1 학예회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것은,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고 기억된다. 전쟁이 멈춘 것은 이보다 한두 해 전의 일이다. 내가 이 무렵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학예회(學藝會)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한 번씩 갖기로 되어 있는 학예회를 전쟁통에 여러 해나 걸러 오다가 그해에야 우리는 비로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학예회란, 특히 시골 학교로서는 운동회와 더불어 연중 가장 큰 행사의 하나였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것은 학생들만의 행사라기보다는 차라리 면민(面民) 전체를 위한 축제 같은 것이었다. 막을 올리기 한 달 앞서부터 우리는 열심히 공연 준비를 했다. 우리 4학년이 기획한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