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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장난감 도시」 이동하 (2019.11.19)

푸레택 2019. 11. 19. 21:56



 

 

 
● 장난감 도시 / 이동하
 
1 학예회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것은,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고 기억된다. 전쟁이 멈춘 것은 이보다 한두 해 전의 일이다. 내가 이 무렵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학예회(學藝會)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한 번씩 갖기로 되어 있는 학예회를 전쟁통에 여러 해나 걸러 오다가 그해에야 우리는 비로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학예회란, 특히 시골 학교로서는 운동회와 더불어 연중 가장 큰 행사의 하나였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것은 학생들만의 행사라기보다는 차라리 면민(面民) 전체를 위한 축제 같은 것이었다.
 
막을 올리기 한 달 앞서부터 우리는 열심히 공연 준비를 했다. 우리 4학년이 기획한 것은 합창과 동화와 동극 세 가지였다. 이 밖에 무용이 한 가지쯤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자아이들 몇몇의 일이었을 게다. 내가 참여했던은 역시 앞에 말한 세 가지 기획에 있었다.
 
우리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동극(童劇) '팔려 가는 당나귀'는 그 무렵 우리가 배우던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내용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 제8과였다. 당나귀를 팔러 나선 두 부자(父子)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우리는 연습 도중에도 곧잘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그러면 연습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때까지 잔뜩 긴장해 있던 아이들은 가까스로 참아 왔던 웃음을 한꺼번에 토해 냈다. 그 어리석은 부자역올 맡은 녀석들은 물론이고, 당나귀로 분장했던 녀석마저 누런 담요 뭉치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마구 웃어 젖혔다.
 
이런 속에서 끝까지 웃음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담임선생 한 분뿐이었다. '방아깨비'란 별명의 그 꺽다리 선생은 웃음의 태풍이 지나가기까지 창 쪽을 향해 조용히 돌아서 있곤 했다. 그런 순간의 뒷모습은 한 그루 나무처럼 훤칠해 보였다. 우리들 중에서 먼저 웃음을 멈춘 아이들은 그제야 선생의 어깨 너머로 하나씩 둘씩 시선을 모아 갔고 그러고는 그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여름의 눈부신 하늘과 들판을 발견해 내고 새삼 좀이 쑤시는 것이었다.
 
웃음의 열기가 완전히 가신 다음엔 참으로 이상한 적요함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휩싸안았다. 그처럼 방자하게 웃어 대던 아이들은 갑자기 죄다 벙어리가 되기라도 한 듯 군말 한마디 흘리지 못했다. 더러는 창 밖의 무성한 여름 풍경에 넋을 팔고, 또 더러는 어제 하다 말고 버려 둔 자기만의 비밀스런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이 우습고 거북스러운 일이 빨리 끝나 주기를 열렬히 소망할 따름이었다.
 
"웃어야 할 사람은 구경꾼들이지 너회들은 아니야."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방아깨비처럼 아주 굼뜬 동작으로 느슨히 돌아선 담임선생은 매번 그렇게 말했다. 선생의 기다란 두 팔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허리짬에서 허전하게 흔들려 보이는 그런 순간이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 버리면 세상에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남을 웃기거나 울리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면 더군다나 그래. 자기 자신은 결코 웃거나 울어 버려서는 안 된단 말이야. 그건 못난 짓이야. 꼴불견이지. 자, 처음부터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에도 웃는 녀석은 학예회가 끝나는 날까지 변소청소를 시킬 테다 "
 
그제야 아이들은 창 밖으로 날려 보냈던 넋들을 서둘러 불러들였다. 당나귀역을 맡았던 녀석들은 담요를 뒤집어썼고, 어리석은 두 부자는 나귀의 고뼈를 다시 잡았다. 나는 노인으로 분장한 다른 두 녀석과 함께 장죽을 물고 수염을 쓸면서 그들 일행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어설프고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인생 유희였다.
 
동극에 비해 합창 연습은 비교적 수월했다. 게다가 방아깨비 선생의 풍금 솜씨가 썩 좋았다. 그의 장대 같은 팔다리에 비해, 풍금은 너무 작고 낡은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곡목은 '뻐꾸기 왈츠'였다. 20여 명의 아이들이 풍금 앞에 달라붙은 채 기다란 두 팔과 못지않게 긴 열 개의 손가락으로 열심히 건반을 두들겨 댈 때의 선생의 모습은 영락없이 방아깨비를 연상케 했지만, 우리들 중 누구 하나도 그 때문에 웃지는 않았다.
 
웃다니, 전혀 그럴 여유마저 없었다. 너무나 신바람나게 노래를 불러 젖혔기 때문에 나중엔 숨이 다 가빠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전혀 주문한 적이 없는 아주 기묘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와 화음을 망쳐 놓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런 순간만은 여기저기서 쿡쿡 하고 터져 나온 웃음 소리가 합창 속에 잠시 섞여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방아깨비 선생이 건반에서 손을 뗀 적은 없었다. 선생은 되레 더 힘차게 건반을 쪼아 댈 따름이었다.
 
이맘때쯤이면 교정은 텅 비어 있게 마련이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샘터와, 그리고 우리들의 키만한 높이로 가시런히 둘러쳐진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로 여름날의 저녁놀이 번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교정에 남아 있던 몇몇 상급생들만 우리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밖엔 어찌다 간혹 이름 모를 새 몇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놀빛 속으로 날아갈 뿐 움직이는 것도 소리내는 것도 하나 없는 저녁 한때의 고요함 속에서 우리들이 입 모아 신명나게 불러 젖히는 노랫소리만 천지간을 온통 가득하게 채워 놓는 것이었다.
 
이 합창 연습을 끝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의 청소 당번들만 남아서 때늦은 정리를 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워 댈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매번 예외였다. 그때부터 동화(童話) 연습을 해야만 되었기 때문이다.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그것은 외롭고 따분한 일이었다.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주인 없는 걸상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나는 우선 외는 작업부터 시작하게 마련이었다. 국어책을 펴들고 손때 묻은 페이지를 열면 금세 검푸른 바닷물이 내 눈앞에서 출렁거렸다. 그것은 늙고 마음씨 착한 한 어부와 그의 욕심꾸러기 마누라와 그리고 이상한 한 마리 금빛 고기에 얽힌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금고기'였다.
 
'옛날 바닷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바다로 나가 거울같이 맑은 바닷물 위에 첨벙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골백번도 더 읽은 글이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그 긴 이야기가 문장 한 구절, 토씨 하나 흐트러짐 없이 고스란히 꿰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담임선생은 매번 서너 번씩이나 되풀이해 읽히는 것으로써 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이 일을 넌덜머리나게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점에 있었다. 게다가 선생은 또, 낮은 목소리로 읽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중략)
 
누나는 작업중이었다. 수증기가 숨막히도록 자욱한 속에서 두부살의 네 오빠들도 열심히 맷돌질을 하고 있었다. 누나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표정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밝아 보였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진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다리 한 짝뿐인, 저 녹슨 총기 냄새를 끊임없이 풍기는 사내의 곁에서.
 
언덕배기 위의 천막 학교로 짤뚝이를 찾아간 것이 내가 그 우스광스런 도시의, 장난감 같은 마을에서 머문 마지막 시간이었다. 낡은 군용 텐트 두 개와 초라한 종루 하나가 전부인 그 개척 교회는 어둠과 바람 속에 잠겨 있었다. '천우 성경 구락부'란 이름의 간판이 걸려 있는 천막 쪽으로 나는 다가갔다.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낯익은, 판자촌 골목의 아이들이었다. 그들 속에 짤뚝이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리고 또 아버지가 광목자루 속에 넣어 삼팔선을 넘어왔다는 소녀의 옆모습도 보였다. 짤뚝이는 졸고 있었고, 또 소녀는 핼쑥한 얼굴을 기울인 채 무슨 생각인가에 잠겨 있었다.
 
선생은, 마을 사람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차목사였다. 삼신할미께 빌어 왔듯이 하나님께도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 가족이 다시 한지붕 아래 모여 함께 살 수가 있으리라고, 내 어머니를 위로하던 바로 그 목사였다. 하지만 내 어머니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하나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다만 구원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
 
성경 공부 시간인 듯했다. 성경책을 펼쳐 들고는 그는 읽기 시작했다. "기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마태복음 26장 20절에서 21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아멘. 이는 또, 누가복음 제22장 52절에서 53절에 기록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너희 곧 유다의 때요 어둠의 시대일 뿐.."
 
친구 짤뚝이와의 약속을 포기하고 나는 돌아섰다. 어둠이 겹겹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다 두 손을 깊이 찔러 넣고 고개를 꺾은 채 나는 그 천막 학교를 떠나면서 문득, 내가 다니던 시골 학교를 머리에 떠올렸다. 남향 창가에서 둘째 줄 여섯 번째 책상-- 거기, 내가 남긴 낙서들을 나는 애써 기억해 내려고 했다.
 
☆ 이동하(李東河) 소설가
▲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고향 경북 경산으로 돌아옴
▲ 국민학교 2학년 때 6.25를 겪고 4학년 때 대구로 이사
▲ 칠성중, 대성고 졸업. 태평로 난민촌에서 어머니를 잃음
▲ 1969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