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2019.12.01)

푸레택 2019. 12. 1. 21:25

 

 

 

 

 

 

 

 

 

● 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安)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그의 정체를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먼저 말을 주고받게 된 것은 나와 대학원생이었는데, 뭐 그렇고 그런 자기 소개가 끝났을 때는 나는 그가 안씨라는 성을 가진 스물다섯 살짜리 대한민국 청년, 대학 구경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전공(專攻)을 가진 대학원생, 부잣집 장남이라는 걸 알았고, 그는 내가 스물다섯 살짜리 시골 출신, 고등학교는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나서 군대에 갔다가 임질에 한 번 걸려본 적이 있고 지금은 구청 병사계(兵事係)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

 

자기 소개들은 끝났지만 그러고 나서는 서로 할 얘기가 없었다. 잠시 동안은 조용히 술만 마셨는데 나는 새카맣게 구워진 군참새를 집을 때 할 말이 생겼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군참새에게 감사하고 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예"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 본 적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나도 파리밖에는..."

 

낮엔 이상스럽게도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에 길은 얼음이 녹아서 흙물로 가득했었는데 밤이 되면서부터 다시 기온이 내려가고 흙물은 우리의 발밑에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소가죽으로 지어진 내 검정 구두는 얼고 있는 땅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는 찬 기운을 충분히 막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술집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든 사람이나 들어올 테지, 마시면서 곁에선 사람과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 만한 데는 되지 못하는 곳이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 안경잡이가 때마침 나에게 기특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나는 '이놈 그럴듯하다'고 생각되어 추위 때문에 저려드는 내 발바닥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부탁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그가 내게 물었던 것 이다.

"사랑하구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사관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나서도 얼마 동안, 나는 나처럼 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한 친구 하나와 미아리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엔 그때가 처음이었죠. 장교가 된다는 꿈이 깨어저서 나는 퍽 실의(失意)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영영 실의해 버린 느낌입니다. 아시겠지만 꿈이 크면 클수록 실패가 주는 절망감도 대단한 힘을 발휘하더군요 그 무렵 재미를 붙인 게 아침의 만원 된 버스칸이었습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나는 하숙집의 아침 밥상을 밀어놓기가 바쁘게 미아리고개 위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갑니다. 개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입니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의 눈에 가장 부럽고 신기하게 비치는 게 무언지 아십니까? 부러운 건, 뭐니뭐니 해도, 밤이 되면 빌딩들의 창에 켜지는 불빛, 아니 그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고, 신기한 건 버스칸 속에서 일 센티미터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자기 곁에 이쁜 아가씨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아가씨들과 팔목의 살을 대고 있기도 하고 허벅다리를 비비고 서 있을 수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을 시내 버스를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날 밤엔 너무 피로해서 토했습니다만."

 

"잠깐, 무슨 얘기를 하시자는 겹니까?"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한다는 애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 친구와 나는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쓰리꾼들처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고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

 

(중략)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린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것이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떨어져 갔다.

"난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 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 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청아출판사』, 1992)

 

☆ 김승옥(金承鈺) 소설가

▲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 1954년 순천중학교 졸업

▲ 1960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 1964년 사상계에 '무진기행' 발표

▲ 1965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 수상

▲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 슬픈 도회의 어법 / 유종호(이화여대 교수)

 

그는 그네들의 말투를 알고 있었다. 저 도회의 어법을. 「차나 한잔」

작가 김승옥의 문학적 성가(聲價)는 대체로 1966년에 나온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생명 연습」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한 권으로 김승옥은 단편작가로서의 역량을 현란하게 보여 주면서 누구도 부인할 길 없는 뚜렷한 흔적을 우리의 현대문학사에 남겨 놓았다. 단편집 발간 이후에도 그는 「다산성」, 「내가 훔친 여름」과 같은 중장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작품들이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개성을 보여 주는 매력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지만 첫 단편집이 보여 준 작품세계를 크게 수정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충격을 딛고 선 작품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충격을 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양적 추가라는 국면이 크게 돋보인다. 첫 단편면집 이후에 보여준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과 같은 단편은 작가의 본령이 단편 쪽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면서 「서울 1964년 겨울」의 세계를 한결 풍요하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 1960년대 독자들에게 던져 준 충격은 압도적이면서도 공통적인 것이었다. 한동안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도 없었다. 작가에 대한 호의에 찬 비평적 반응과 부수적인 기대는 그 후 작가 쪽에 크나큰 부담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단편집 후기에서 김승옥은 "이젠 한국 문단의 계관이라는 동인문학상까지 받아 놓았으니 끝장이 날 때까지 '쇼'를 계속해야 할 모양이다. 그러나 손님들이 웃지 않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집어치워 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뒷날 그는 젊은날의 객기가 없다 할 수 없는 이 말을 사실상 현실화하였다. 사정을 헤아릴 길이 우리에게는 없고 또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짤막한 후기가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의 그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것을 구태여 찾자면, 우리의 일부에게는,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도 낯설어했던 기독교적 정신 또는 합리주의가, 일부에게는 배금사상이, 일부에게는 상업공부를 한 민족주의가 그것들이다. 생활하기에는 그만한 것들로써도 충분한 것이다." 위의 발언과 그후에 전개된 사회적 지적 풍토를 떠올리면서 언제든지 집어치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오기를 포개어 본다면 김승옥의 부분적 전념 포기에 대한 맥락은 얼추 잡히는 셈이다.

 

어쨌거나 김승옥은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과 몇몇 후속 단편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성취는 너무나 섬세하고 휘황하여 작가 자신마저도 숨가쁘게 할 정도였다. 혼히 한 세대로 가늠하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는 한결 차분하고 정돈된 눈으로 그 문학적 성취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하나의 경이로 다가왔던 그의 문체와 그것을 낳게 했던 풋풋한 감수성은 오늘날 얼마쯤 바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문체는 후속 세대들에게 문체의 위엄과 위력을 보여 줌으로써 한국 소설 일반의 문제를 더욱 섬세하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작 김승옥 문체의 눈부심을 삭감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문학의 역사가 한편으로 '낯설게 하기'의 교체현상이라는 일면이 있기 때문에 김승옥 문체는 여전히 평면적 사실주의에 대한 대조이자 해독제로서 매력 있는 사례가 되어 주고 있다. 비속한 재치나 개그가 문학 내부를 혼란시키고 있는 오늘 그의 신선하고 섬세한 문체는 문학 고유의 자신과 이어이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문학에서는 문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학의 고유성이 거기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문체적 매력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여전히 「무진 기행」이다. 이 작품의 리얼리티가 전혀 그 문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역시 30년 전에 씌어진 「감수성의 혁명」이란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몇 줄의 손놀림으로 등장인물의 성격묘사를 끝내는 솜씨도 요약하면 문체의 효과인 것이다. 옛 글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중언부언하지 않겠지만 김승옥 문체의 사실적이고도 환정적(喚情的)인 기능은 표피적인 약간의 부침(浮沈)을 겪는 대로 항상적(恒常的)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김유정의 몇몇 단편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것이 그 말솜씨라는 것과 사정은 같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해 주는 것도 문체이다. 문체 없는 문학은 흘로 서지 못한다. 그렇지만 문체만 가지고도 안 된다. 참다운 문체는 세상과 사람을 지각하고 읽는 방법이다. 「무진 기행」에서도 속물 중의 속물인 세무서장과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여교사와 그녀를 짝사랑한다는 무진이 고향인 젊은 교사의 생동감 있는 성격묘사는 만만치 않은 세상읽기의 결과이고 그것이 문체와 어울려서 이룩하는 것이다.

 

1 도시적 인간관계

『서울 1964년 겨울』이란 표제는 계시적이다. 「파름의 승원」 제1장에 붙인 '미라노 1796년'을 상기시키는 이 표제는 김승옥이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와 장소에 대해서 충실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도록 상기시켜 준다. 스탕달은 소설을 한길에 세워 둔 거울이란 뜻으로 말한 적이 있지만 근대소설은 사회현실과 밀착된 근친성을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진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이 소설의 특징이며 단편도 느슨하긴 하지만 매한가지다. 근대소설은 대체로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를 지향했는데 이때 시간과 장소는 그 특정성으로 해서 객관적 묘사에 있어 필수적 요인이 된다. 특정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 명시야말로 신화나 로맨스와 구별되는 소설의 특징이다. 표제에 명시되어 있듯이 김승옥이 꼼꼼하고 정감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1960년대 서울에서의 사람살이이다. (물론 「건」, 「수술」과 같이 시골 삶이나 다른 연대의 세상을 다룬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만큼 그것은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무진 기행」은 지방이 무대이지만 화자이자 주인공의 서울 이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생활자의 시점에 선 작품이다.)

 

1960년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라는 우리 역사상 유례 없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속도가 이례적이리만큼 빨랐던 거대변화가 시작되던 연대이다. 그 거대변화는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뒷날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던 변화의 논리와 궤적을 가지고 있었다. 비근하고 일상적인 것에 매몰되는 신문 기사와 신문의 시사해설에 향도받아 눈에 뜨이는 정치적 사건에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 사이 거대변화의 수레바퀴는 소리없이 마력(馬力)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승옥의 뛰어난 단편들은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거대변화의 징후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보여 주고 있다. 변화의 징후가 현저하계 드러나는 것은 도시이고 그의 주요작품이 도시 거주자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따라서 당연하다

 

전봇대에 붙은 약광고판 속에서는 이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광고 곁에서는 약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저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바람에 휙 날리어 거리의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종잇조각은 내 발 밑에 떨어졌다. 나는 그 종잇조각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은 '美姬 서비스, 特別廉價'라는 것을 강조한 어느 비어 홀의 광고지였다. (「서울 1964년 겨울」, 225쪽)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정의되어 있는 서울의 밤풍경을 재현한, 약광고와 술광고와 유흥가의 선전지가 고작인 이 대목은 산업화가 시동단계에 있던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 1980년대 지금의 서울 거리와 다르고 이태준이나 박태원이나 이상이 보여 주던 1930년대 서울 거리와도 다르다. 절대빈곤을 시사하는 겨울밤의 거지들이 수두룩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거리의 포장 친 선술집에서 대학원생과, 육사에 낙방한 후 입대했다가 지금은 구청 병사계 직원이 되어 있는 화자, 그리고 아내 시체를 판 후 자살하게 되는 서적 외판원이 만나게 된다. 아니 부딪치게 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연히 마주쳤고 그 중의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자청하여 끼여들었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연출도 공통 관심사도 공통의 과거도 없다. 익명과 익명의 우연한 부딪침이라는 도회의 항상적(恒常的) 경험을 작품은 취급하고 있다. 대학원생 안과 병사계 직원 김은 동년배라는 것과 선술집에 비슷한 시각에 들어섰다는 우연 때문에 대화를 주고받지만 그것은 피차간에 의미 있는 경험의 교환이 되어 주지 못한다. 피차간에 인적사항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성일 뿐이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의 눈에 가장 부럽고 신기하게 비치는 게 무언지 아십니까? 부러운 건, 뭐니뭐니 해도, 밤이 되면 빌딩들의 창에 켜지는 불빛, 아니 그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고, 신기한 건 버스칸 속에서 일 센티미터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자기 곁에 이쁜 아가씨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아가씨들과 팔목의 살을 대고 있기도 하고 허벅다리를 비비고 서 있을 수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을 시내 버스를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날 밤엔 너무 피로해서 토했습니다만.." (「서울 1964년 겨울」, 217쪽)

 

고향 탈출에 성공한 병사계 직원은 무직자 시절의 절실했던 체험을 이렇게 털어놓지만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대학원생은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냐며 말참견을 한다. 그들 사이에는 의미 있는 경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암묵의 동의가 처음부터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의미 있는 경험 교환에 대한 지향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독백의 교체일 뿐이다. 그들의 초점 없는 요설은 그들의 권태와 무위의 시간 소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우연한 익명의 부딪침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도회적 삶이 국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선의의 인간이다.

 

(중략)

 

그 사람들은 돌아갔다. 누나와 나는 병원의 어머니 한테로 달려갔다. "우리가 잘못한 거야"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젠 그만 집어쳐요, 엄마. 우리 그 장사는 그만 집어쳐요"라고 말하면서 누나는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대고 울었다. "무서워요. 무서위 죽겠어요." 계속해서 누나가 말했다. "살기란 힘든 거란다." 어머니가 힘없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를 아저씨에게 보내셨다. 아저씨는 말했다. "세금을 내면서 그 장사들 하려면 음식값을 많이 받아야 한다. 음식값을 많이 받으면 누가 그걸 사먹으러 오겠니? 순경 말은 못 들은 체하구 그냥 계속 하라구 할머니한테 그래라." 그러나 우리는 아저씨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아직 덜 나으신 몸을 집으로 다시 옮겼다. 누나가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청계로에 나가서 꽃을 받아 왔다. 누나는 아침부터 꽃바구니를 들고 종로로 나갔고 어머니는 오후에 누나의 것보다는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소공동(小公洞) 쪽으로 나가셨다. (「염소는 힘이 세다.」, 346~347쪽)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렇지만 작품 전체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범상한 장면이다. 우리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박고 우는 누나가 결국은 어머니의 일생을 반복하리라는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농촌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던 어머니의 길보다도 도시 빈민으로서의 누나의 길이 더욱 가파를지도 모른다. 염소의 일생에 곁들인 여자의 일생은 원한이나 전투적 증오가 없는 '살기란 힘든 거란다'라는 예사로운 발언으로 말미암아 더할 나위 없는 위엄과 애상과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족히 한 편의 중·장편이 될 만한 생활정보량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작가는 길지 않은 단편으로 집약해 놓고 있다. 늘어놓기보다 집약적 완결이 몇 갑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작가적 미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에서 미덕은 이렇게 재능과 포개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자연과 사회의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가난의 실체와 의미와 처참함이 이렇듯 직접적이고도 간결히 처리되어 있는 사례는 아마 달리 없을 것이다.

 

김승옥은 어디까지나 단편소설의 명수이며 앞으로 획기적인 개인사적 변동이 없는 한 뛰어난 단편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장르의 성격상 단편소설은 이른바 사회적 총체성을 겨냥하지 못한다. 삶의 어떤 시간을 포착하여 인지의 충격을 전해 주는 것이 단편소설의 고전들이 이룩한 성취였다. 김승옥은 결코 한 시대 세대 슈측의 복사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장편이건 단편이건 소설은 사회현실에 대한 근친성으로 말미암아 세태 습속 재현과 무관할 수 없다. 우리 사이에서 구차하고 협착하게 정의된 '리얼리즘'은 김승옥 소설을 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생각된다. 그렇지만 돌이켜보아 거대변화가 시동되기 시작한 저 1960년대라는 가버린 연대에 대하여 김승옥 단편만큼 깊이 참여하고 재현한 예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대변화의 하나인 도시화란 국면에 대한 참여요, 그 문학적 재현이긴 하다. 그러나 단편이 어떻게 모든 것을 망라할 수 있을 것인가. 도회와 시골과 병영 막사와 빈민굴을 어떻게 망라할 수 있을 것인가, 도시화의 초기 징후에 대한 가장 날카롭고 섬세한 인상주의적 포착과 함께 인간의 내면도 사상(捨象)하여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체적 성취에 이른 김승옥 단편은 우리 소설사의 가장 눈부신 책장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를 넘어서지 않고 새로운 문학을 얘기하는 것은 어렵게 되어 있고 새 작가들이 한 번은 그 앞에서 성찰의 계기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김승옥의 등장 이후 섬세함과 투박함의 기준은 그 눈금이 한결 세밀해졌다. 이 눈금의 세분화 추세가 결국은 발전이요, 성장인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