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진 기행 / 김승옥
무진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 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분 후엔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테토론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 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골 사람들답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을 반수면(半睡眠)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시찰원들의 말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무진(霧津)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드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좀 덜해졌다.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더하고 덜하는 것을 나는 턱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있었으므로 버스가 자갈이 깔린 시골길을 달려오고 있는 동안 내 턱은 버스가 껑충거리는 데 따라서 함께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턱이 덜그럭거릴 정도로 힘을 빼고 버스를 타고 있으면, 긴장해서 버스를 타고 있을 때보다 피로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중략)
나는 피로를 핑계로 아무도 만나기 싫다는 뜻을 이모에게 알려 두었다. 이모는 내가 바닷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는 이모에게 소주를 사오게 하여 취해서 잠이 들 때까지 마셨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깨었다. 나는 이유를 집어 낼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것은 불안이었다. '인숙이' 하고 나는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곧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이모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이었다. 이모는 전보 한 통을 내게 건네 주었다. 엎드려 누운 채 나는 전보를 펴보았다. '27일 회의 참석필요, 급상경 바람 영.' '27일'은 모레였고 '영'은 아내였다. 나는 아프도록 쑤시는 이마를 베개에 대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나는 내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나.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쪽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결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다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청아출판사, 1992)
☆ 김승옥(金承鈺) 소설가
▲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 1954년 순천중학교 졸업
▲ 1960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 1964년 사상계에 '무진기행' 발표
▲ 1965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 수상
▲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 슬픈 도회의 어법 / 유종호(이화여대 교수)
그는 그네들의 말투를 알고 있었다. 저 도회의 어법을. 「차나 한잔」
작가 김승옥의 문학적 성가(聲價)는 대체로 1966년에 나온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생명 연습」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한 권으로 김승옥은 단편작가로서의 역량을 현란하게 보여 주면서 누구도 부인할 길 없는 뚜렷한 흔적을 우리의 현대문학사에 남겨 놓았다. 단편집 발간 이후에도 그는 「다산성」, 「내가 훔친 여름」과 같은 중장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작품들이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개성을 보여 주는 매력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지만 첫 단편집이 보여 준 작품세계를 크게 수정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충격을 딛고 선 작품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충격을 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양적 추가라는 국면이 크게 돋보인다. 첫 단편면집 이후에 보여준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과 같은 단편은 작가의 본령이 단편 쪽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면서 「서울 1964년 겨울」의 세계를 한결 풍요하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 1960년대 독자들에게 던져 준 충격은 압도적이면서도 공통적인 것이었다. 한동안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도 없었다. 작가에 대한 호의에 찬 비평적 반응과 부수적인 기대는 그 후 작가 쪽에 크나큰 부담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단편집 후기에서 김승옥은 "이젠 한국 문단의 계관이라는 동인문학상까지 받아 놓았으니 끝장이 날 때까지 '쇼'를 계속해야 할 모양이다. 그러나 손님들이 웃지 않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집어치워 버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뒷날 그는 젊은날의 객기가 없다 할 수 없는 이 말을 사실상 현실화하였다. 사정을 헤아릴 길이 우리에게는 없고 또 그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짤막한 후기가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의 그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것을 구태여 찾자면, 우리의 일부에게는,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도 낯설어했던 기독교적 정신 또는 합리주의가, 일부에게는 배금사상이, 일부에게는 상업공부를 한 민족주의가 그것들이다. 생활하기에는 그만한 것들로써도 충분한 것이다." 위의 발언과 그후에 전개된 사회적 지적 풍토를 떠올리면서 언제든지 집어치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오기를 포개어 본다면 김승옥의 부분적 전념 포기에 대한 맥락은 얼추 잡히는 셈이다.
어쨌거나 김승옥은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과 몇몇 후속 단편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성취는 너무나 섬세하고 휘황하여 작가 자신마저도 숨가쁘게 할 정도였다. 혼히 한 세대로 가늠하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는 한결 차분하고 정돈된 눈으로 그 문학적 성취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하나의 경이로 다가왔던 그의 문체와 그것을 낳게 했던 풋풋한 감수성은 오늘날 얼마쯤 바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문체는 후속 세대들에게 문체의 위엄과 위력을 보여 줌으로써 한국 소설 일반의 문제를 더욱 섬세하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작 김승옥 문체의 눈부심을 삭감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문학의 역사가 한편으로 '낯설게 하기'의 교체현상이라는 일면이 있기 때문에 김승옥 문체는 여전히 평면적 사실주의에 대한 대조이자 해독제로서 매력 있는 사례가 되어 주고 있다. 비속한 재치나 개그가 문학 내부를 혼란시키고 있는 오늘 그의 신선하고 섬세한 문체는 문학 고유의 자신과 이어이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문학에서는 문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학의 고유성이 거기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문체적 매력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여전히 「무진 기행」이다. 이 작품의 리얼리티가 전혀 그 문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역시 30년 전에 씌어진 「감수성의 혁명」이란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몇 줄의 손놀림으로 등장인물의 성격묘사를 끝내는 솜씨도 요약하면 문체의 효과인 것이다. 옛 글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중언부언하지 않겠지만 김승옥 문체의 사실적이고도 환정적(喚情的)인 기능은 표피적인 약간의 부침(浮沈)을 겪는 대로 항상적(恒常的)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김유정의 몇몇 단편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것이 그 말솜씨라는 것과 사정은 같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해 주는 것도 문체이다. 문체 없는 문학은 흘로 서지 못한다. 그렇지만 문체만 가지고도 안 된다. 참다운 문체는 세상과 사람을 지각하고 읽는 방법이다. 「무진 기행」에서도 속물 중의 속물인 세무서장과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여교사와 그녀를 짝사랑한다는 무진이 고향인 젊은 교사의 생동감 있는 성격묘사는 만만치 않은 세상읽기의 결과이고 그것이 문체와 어울려서 이룩하는 것이다.
1 도시적 인간관계
『서울 1964년 겨울』이란 표제는 계시적이다. 「파름의 승원」 제1장에 붙인 '미라노 1796년'을 상기시키는 이 표제는 김승옥이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와 장소에 대해서 충실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도록 상기시켜 준다. 스탕달은 소설을 한길에 세워 둔 거울이란 뜻으로 말한 적이 있지만 근대소설은 사회현실과 밀착된 근친성을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진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이 소설의 특징이며 단편도 느슨하긴 하지만 매한가지다. 근대소설은 대체로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를 지향했는데 이때 시간과 장소는 그 특정성으로 해서 객관적 묘사에 있어 필수적 요인이 된다. 특정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 명시야말로 신화나 로맨스와 구별되는 소설의 특징이다. 표제에 명시되어 있듯이 김승옥이 꼼꼼하고 정감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1960년대 서울에서의 사람살이이다. (물론 「건」, 「수술」과 같이 시골 삶이나 다른 연대의 세상을 다룬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만큼 그것은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무진 기행」은 지방이 무대이지만 화자이자 주인공의 서울 이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생활자의 시점에 선 작품이다.)
1960년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라는 우리 역사상 유례 없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속도가 이례적이리만큼 빨랐던 거대변화가 시작되던 연대이다. 그 거대변화는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뒷날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던 변화의 논리와 궤적을 가지고 있었다. 비근하고 일상적인 것에 매몰되는 신문 기사와 신문의 시사해설에 향도받아 눈에 뜨이는 정치적 사건에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 사이 거대변화의 수레바퀴는 소리없이 마력(馬力)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승옥의 뛰어난 단편들은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거대변화의 징후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보여 주고 있다. 변화의 징후가 현저하계 드러나는 것은 도시이고 그의 주요작품이 도시 거주자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따라서 당연하다.
전봇대에 붙은 약광고판 속에서는 이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광고 곁에서는 약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저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바람에 휙 날리어 거리의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종잇조각은 내 발 밑에 떨어졌다. 나는 그 종잇조각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은 '美姬 서비스, 特別廉價'라는 것을 강조한 어느 비어 홀의 광고지였다. (「서울 1964년 겨울」, 225쪽)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정의되어 있는 서울의 밤풍경을 재현한, 약광고와 술광고와 유흥가의 선전지가 고작인 이 대목은 산업화가 시동단계에 있던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 1980년대 지금의 서울 거리와 다르고 이태준이나 박태원이나 이상이 보여 주던 1930년대 서울 거리와도 다르다. 절대빈곤을 시사하는 겨울밤의 거지들이 수두룩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거리의 포장 친 선술집에서 대학원생과, 육사에 낙방한 후 입대했다가 지금은 구청 병사계 직원이 되어 있는 화자, 그리고 아내 시체를 판 후 자살하게 되는 서적 외판원이 만나게 된다. 아니 부딪치게 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연히 마주쳤고 그 중의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자청하여 끼여들었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연출도 공통 관심사도 공통의 과거도 없다. 익명과 익명의 우연한 부딪침이라는 도회의 항상적(恒常的) 경험을 작품은 취급하고 있다. 대학원생 안과 병사계 직원 김은 동년배라는 것과 선술집에 비슷한 시각에 들어섰다는 우연 때문에 대화를 주고받지만 그것은 피차간에 의미 있는 경험의 교환이 되어 주지 못한다. 피차간에 인적사항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성일 뿐이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의 눈에 가장 부럽고 신기하게 비치는 게 무언지 아십니까? 부러운 건, 뭐니뭐니 해도, 밤이 되면 빌딩들의 창에 켜지는 불빛, 아니 그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고, 신기한 건 버스칸 속에서 일 센티미터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자기 곁에 이쁜 아가씨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아가씨들과 팔목의 살을 대고 있기도 하고 허벅다리를 비비고 서 있을 수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을 시내 버스를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날 밤엔 너무 피로해서 토했습니다만.." (「서울 1964년 겨울」, 217쪽)
고향 탈출에 성공한 병사계 직원은 무직자 시절의 절실했던 체험을 이렇게 털어놓지만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대학원생은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냐며 말참견을 한다. 그들 사이에는 의미 있는 경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암묵의 동의가 처음부터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의미 있는 경험 교환에 대한 지향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독백의 교체일 뿐이다. 그들의 초점 없는 요설은 그들의 권태와 무위의 시간 소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우연한 익명의 부딪침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도회적 삶이 국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선의의 인간이다.
(중략)
그 사람들은 돌아갔다. 누나와 나는 병원의 어머니 한테로 달려갔다. "우리가 잘못한 거야"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젠 그만 집어쳐요, 엄마. 우리 그 장사는 그만 집어쳐요"라고 말하면서 누나는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대고 울었다. "무서워요. 무서위 죽겠어요." 계속해서 누나가 말했다. "살기란 힘든 거란다." 어머니가 힘없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를 아저씨에게 보내셨다. 아저씨는 말했다. "세금을 내면서 그 장사들 하려면 음식값을 많이 받아야 한다. 음식값을 많이 받으면 누가 그걸 사먹으러 오겠니? 순경 말은 못 들은 체하구 그냥 계속 하라구 할머니한테 그래라." 그러나 우리는 아저씨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아직 덜 나으신 몸을 집으로 다시 옮겼다. 누나가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청계로에 나가서 꽃을 받아 왔다. 누나는 아침부터 꽃바구니를 들고 종로로 나갔고 어머니는 오후에 누나의 것보다는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소공동(小公洞) 쪽으로 나가셨다. (「염소는 힘이 세다.」, 346~347쪽)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렇지만 작품 전체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범상한 장면이다. 우리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박고 우는 누나가 결국은 어머니의 일생을 반복하리라는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농촌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던 어머니의 길보다도 도시 빈민으로서의 누나의 길이 더욱 가파를지도 모른다. 염소의 일생에 곁들인 여자의 일생은 원한이나 전투적 증오가 없는 '살기란 힘든 거란다'라는 예사로운 발언으로 말미암아 더할 나위 없는 위엄과 애상과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족히 한 편의 중·장편이 될 만한 생활정보량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작가는 길지 않은 단편으로 집약해 놓고 있다. 늘어놓기보다 집약적 완결이 몇 갑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작가적 미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에서 미덕은 이렇게 재능과 포개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자연과 사회의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가난의 실체와 의미와 처참함이 이렇듯 직접적이고도 간결히 처리되어 있는 사례는 아마 달리 없을 것이다.
김승옥은 어디까지나 단편소설의 명수이며 앞으로 획기적인 개인사적 변동이 없는 한 뛰어난 단편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장르의 성격상 단편소설은 이른바 사회적 총체성을 겨냥하지 못한다. 삶의 어떤 시간을 포착하여 인지의 충격을 전해 주는 것이 단편소설의 고전들이 이룩한 성취였다. 김승옥은 결코 한 시대 세대 슈측의 복사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장편이건 단편이건 소설은 사회현실에 대한 근친성으로 말미암아 세태 습속 재현과 무관할 수 없다. 우리 사이에서 구차하고 협착하게 정의된 '리얼리즘'은 김승옥 소설을 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생각된다. 그렇지만 돌이켜보아 거대변화가 시동되기 시작한 저 1960년대라는 가버린 연대에 대하여 김승옥 단편만큼 깊이 참여하고 재현한 예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대변화의 하나인 도시화란 국면에 대한 참여요, 그 문학적 재현이긴 하다. 그러나 단편이 어떻게 모든 것을 망라할 수 있을 것인가. 도회와 시골과 병영 막사와 빈민굴을 어떻게 망라할 수 있을 것인가, 도시화의 초기 징후에 대한 가장 날카롭고 섬세한 인상주의적 포착과 함께 인간의 내면도 사상(捨象)하여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체적 성취에 이른 김승옥 단편은 우리 소설사의 가장 눈부신 책장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를 넘어서지 않고 새로운 문학을 얘기하는 것은 어렵게 되어 있고 새 작가들이 한 번은 그 앞에서 성찰의 계기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김승옥의 등장 이후 섬세함과 투박함의 기준은 그 눈금이 한결 세밀해졌다. 이 눈금의 세분화 추세가 결국은 발전이요, 성장인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읽기] 「생명연습」 김승옥 (2019.12.01) (0) | 2019.12.01 |
---|---|
[소설읽기]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2019.12.01) (0) | 2019.12.01 |
[소설읽기] 「장난감 도시」 이동하 (2019.11.19) (0) | 2019.11.19 |
[소설읽기] 「한 오백년」 박태순 (2019.11.18) (0) | 2019.11.18 |
[소설읽기] 「정든 땅 언덕 위」 박태순 (2019.11.18) (0) | 2019.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