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사수필] '몸에 지닌 추천장' 소파 방정환 (2021.03.05)

■ 몸에 지닌 추천장 / 소파 방정환 어느 회사에서 어린 사람 한 명을 뽑는데 여러 곳에서 10여 명의 소년이 각각 유명한 신사의 편지를 한 장씩 맡아 가지고 왔습니다. 편지마다 “이 소년은 공부도 잘해서 우등으로 졸업했고 품행이 얌전해서 잘못 없이 일을 잘 볼 사람인 것을 제가 보증하오니 꼭 뽑아주기를 바랍니다.” 라는 글이 씌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추천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배인은 유명한 이의 추천장을 가지고 온 소년들은 모조리 돌려보내고 추천장도 그 어떤 것도 없이 빈손으로 온 한 소년을 뽑았습니다. 옆에 있던 이가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훌륭한 명사가 보증하는 사람을 안 뽑고 보증도 추천도 없는 근본 모를 소년을 뽑았소?”하고 물었습니다. 지배인은 그 ..

[명시감상] '3월' 에밀리 디킨슨, (Dear March Come In' Emily Dickinson) (2021.03.02)

3월에 읽어보는 시 ? 3월 / 에밀리 디킨슨 ? Dear March Come In / Emily Dickinson 3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오랫동안 기다렸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도 걸어오셨나 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3월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님도 잘 계신지요? 아 삼월님, 바로 저랑 2층으로 가요 말씀 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보내주신 편지와 새 잘 받았어요 단풍나무들은 당신이 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내가 알려주자 얼굴이 붉어지더군요 그런데 3월님, 용서해 주세요 저에게 저 모든 언덕을 물들이라고 하셨는데 어울리는 보라색을 찾을 수 없었어요 당신이 떠나면서 모두 가져갔으니까요 누가 문을 두드리네요 4월인가 봐요 문..

[명시감상] '마흔 번째 봄' 함민복, '부처' 오규원, '어느 날 문득' 정용철 (2021.02.28)

■ 부처 / 오규원 남산의 한 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 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 시집 《두두》 (문학과지성사, 2008) ■ 어느 날 문득 / 정용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 한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

[명작수필] '내 친구 명자' 송명견 동덕여대 교수

■ 내 친구 명자 / 송명견 (동덕여대 교수) 시골 우리 집에 명자가 놀러왔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자그마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하얀 피부의 예쁘장한 여중생이었다. 무슨 계기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명자가 우리 언니 앞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주욱주욱 외워댔다. 명자가 돌아간 후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언니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명자는 책을 줄줄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데,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꾸중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자는 책을 외우던 아이로 통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명자는 공부를 잘 했고, 그 어렵다는 S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했다. 결혼 후 우연히 서울에서 명자와 한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됐다. 명자는 두 남매와 남편, 그리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꼿꼿하고..

[소설읽기] '데이비드 스완' 나다니엘 호손 (2021.02.21)

■ 데이비드 스완 / 나다니엘 호손 전 세계적으로 꽤나 많이 읽혀졌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무 살의 스완이라는 청년이 고향을 떠나 보스톤으로 취직을 하러 길을 나섰다가 나무 아래에 누워 잠깐 단잠에 빠져 있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남가일몽과 비슷한 내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스완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안 숲을 지나가던 마차가 바퀴 고장으로 멈춰 섰다. 그 마차에서 내린 나이 지긋한 부부는 하인이 바퀴를 고치는 동안 햇빛을 피하기 위해 잠시 숲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화롭게 잠이 든 스완을 발견했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스완의 얼굴을 본 부부는 한참동안 잠자는 스완을 바라보다가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이 아이가 죽은 우리 헨리와 너무 닮았어요. ..

[명시감상] '이사' 서수찬,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정호승 (2021.02.21)

■ 이사 /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을 들추어내자 만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 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 정호승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

[동시감상] '청소를 끝마치고' 강소천, '가을 밤' 방정환, '돌아오는 길' 박두진 (2021.02.17)

◇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오 인젠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Covid19로 힘든 시절입니다. 그래도 새생명 움트는 희망의 새봄은 오고 있습니다. 복잡한 인간만사 잠시 내려놓고 동요와 동시를 읽으며 동심에 젖어 봅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동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린 겨울의 끝자락에 어린 시절 늘 입에서 맴돌던 추억 속 동요와 동시에 빠져들어 잠시 행복한 꿈을 꾸어 봅니다. 옛날 초등학교(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와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동시와 동요들. 그 때 암송하고 불렀던 동시와 동요가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떠오릅니다.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오 인젠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청소를 끝마치고ㆍ강소천) “비비새가 혼자서..

[동시감상]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그는 누구인가 (2021.02.18)

◇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강소천 공식 블로그에 실린 동시와 동요 중 몇 편을 소개합니다. ■ 닭 / 강소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 코끼리 / 강소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며는 코로 받지요 코끼리 아저씨는 소방수래요 불나면 빨리 와 모셔가지요 ■ 태극기 / 강소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입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펄럭입니다 ■ 추석 날 / 강소천 팔월에도 추석날은 즐거운 명절 밤 먹고 대추 먹고 송편도 먹고 팔월에도 추석날은 달이 밝은 밤 손에 손을 잡고서 달맞이 가요 ■ 이순신 장군 / 강소천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 무리..

[한시감상] 낙조(落照), 어사 박문수의 과시(科試) 일화 / 박문수 (2021.02.15)

■ 낙조(落照, 저녁 햇빛) / 박문수(朴文秀) 落照吐紅掛碧山(낙조토홍괘벽산) 지는 해는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寒鴉尺盡白雲間(한아척진백운간)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네 問津行客鞭應急(문진행객편응급)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채찍이 급하고 尋寺歸僧杖不閒(심사귀승장불한)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가 바쁘구나 放牧園中牛帶影(방목원중우대영) 풀밭에 풀어놓은 소 그림자는 길기만 하고 望夫臺上妾低髮(망부대상첩저발) 망부대 위엔 여인의 쪽진 그림자가 나지막하다 蒼煙古木溪南路(창연고목계남로) 개울 남쪽길 고목엔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짧은 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더라 ● 어사 박문수 과시(科試) 일화 1. 박문수가 과거 보러 한양을 올라 가는 도중에 ..

[동시감상] '가을 밤에' 정경숙, '돌아오는 길' 박두진, '청소를 끝마치고' 강소천 (2021.02.13)

♤ Covid19로 힘든 시절입니다. 복잡한 인간만사 잠시 내려놓고 동시를 읽으며 동심에 젖어 보아요. 동심의 세계, 동시 한 편이 코로나19로 힘들고 지친 분들께 작은 위로와 격려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작가는 동심을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때 묻지 않는 순수 그대로의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다운 꽃밭이고, 일곱 빛깔 무지개이며, 새하얀 도화지이기도 합니다. 동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 ■ 비행기 / 정경숙 평생 날개 한 번 접을 수 없는 불쌍한 새 ■ 개미에게 노벨 과학상을 / 정경숙 개미는 더듬이가 내비게이션이다 전원이 필요 없는 고장도 나지 않는 개미에게 노벨과학상을 주어야 한다 ■ 신호등 / 정경숙 내 마음 속에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