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845

[명시감상]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꽃 김춘수, 사과 한 알 조인선, 자연이 들려주는 말 척 로퍼 (2019.05.21)

●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 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

[명시감상] 말 없는 나무의 말 이재무, 산길에서 이성부, 대추나무 김광규, 어떤 귀로 박재삼 (2019.05.19)

● 말 없는 나무의 말 / 이재무 이사 온 아파트 베란다 앞 수령 50년 오동나무 저 굵은 줄기와 가지 속에는 얼마나 많은, 구성진 가락과 음표들 살고 있을까 과묵한 얼굴을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마주 대하고 있으면 들끓는 소음의 부유물 조용히 가라앉는다 기골이 장대한 데..

[명시감상] 방울 소리 이수익, 긍정의 밥 함민복, 뒤적이다 이재무 (2019.05.19)

● 방울 소리 / 이수익 청계천 7가 골동품 가게에서 나는 어느 황소 목에 걸렸던 방울을 하나 샀다. 그 영롱한 소리의 방울을 딸랑거리던 소는 이미 이승의 짐승이 아니지만 나는 소를 몰고 여름 해질녘 하산하던 그날의 소년이 되어, 배고픈 저녁 연기 피어오르던 마으롤 터덜터덜 걸어 ..

[명시감상]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리기다소나무 이재무 (2019.05.19)

●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 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

[명시감상] 소나무 이재무,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2019.05.19)

● 소나무/ 이재무 늘 푸른 소나무에게서 나는, 선비의 기개 대신 지루한 권태를 읽는다 완강한 고집을 읽는다 늘 푸른 소나무에게서 나는, 스스로 고립의 감옥에 갇혀 생을 소진한 한 사내의 불우를 떠올려 연민한다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명시감상] 사과를 먹으며 함민복,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산길에서 이성부, 겨울밤 신경림 (2019.05.18)

● 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맛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명시감상] 벼 이성부,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정일근 (2019.05.18)

● 벼 /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

[명시감상] 엄마 걱정 기형도, 추억에서 박재삼, 내 마음의 고향 6–초설(初雪) 이시영, 파장 신경림 (2019.05.18)

● 엄마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

[명시감상] 시골 큰집 신경림,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낙타 이한직, 오랑캐꽃 이용악 (2019.05.17)

● 시골 큰집 / 신경림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 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 나가면 나는 안다 형은 또..

[명시감상]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 기진호, 비비추에 관한 연상 문무학 (2019.05.17)

●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