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소나무 이재무,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2019.05.19)

푸레택 2019. 5. 19. 21:03

 

 

● 소나무/ 이재무

 

늘 푸른 소나무에게서 나는,

선비의 기개 대신 지루한

권태를 읽는다 완강한

고집을 읽는다 늘 푸른

소나무에게서 나는,

스스로 고립의 감옥에 갇혀

생을 소진한 한 사내의

불우를 떠올려 연민한다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말자

 

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못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