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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감상] 광야(曠野) 이육사(李陸史), 바위 유치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2019.05.25)

● 광야(曠野) / 이육사(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

[명시감상] 청포도 이육사, 깃발 유치환, 추일서정(秋日抒情) 김광균 (2019.05.25)

● 청포도 / 이육사(李陸史)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아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

[명시감상] 승무(僧舞) 조지훈, 나그네 박목월, 도봉(道峰) 박두진 (2019.05.25)

● 승무(僧舞) / 조 지 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을 넓고 돌..

[명시감상] 화본역(花本驛) 박해수, 참숯 정양, 살구꽃 피는 마을 이호우 (2019.05.24)

● 화본역(花本驛) / 박해수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 자다 잠 깬, 꽃물 든 목숨이네 앉은 자리 꽃 진 자리 꽃자리 선 자리 꽃자리 꽃 뿌리 눈물 뿌리 방울새 어디 가서 우나 배꽃, 메밀꽃, 메꽃 배꼽 눈 보이네, 배꼽도 있네 녹물 든 급수탑 억새풀 고개 숙인 목덜미 눈물 포갠 기다림, ..

[명시감상] 종로 5가 신동엽,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두만강 김규동, 4월의 가로수 김광규 (2019.05.23)

● 종로 5가 / 신동엽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東大門)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少年)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

[명시감상] 이 사진 앞에서 이승하, 산에 언덕에 신동엽,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2019.05.23)

● 이 사진 앞에서 / 이승하 식사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교인을 향한 인류의 죄에서 눈 돌린 죄악을 향한 인류의 금세기 죄악을 향한 인류의 호의호식을 향한 인간의 증오심을 향한 우리들을 향한 나를 향한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의 예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자정 넘어 취한 채 ..

[명시감상] 성에꽃 최두석, 우리 동네 구자명씨 고정희, 늙은 소나무 김광규, 별을 굽다 김혜순 (2019.05.23)

● 성에꽃 /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

[명시감상]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은수저 김광균, 가을 무덤-제망매가(祭亡妹歌) 기형도 (2019.05.23)

●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

[명작수필] 벼 정목일, 숨어서 피는 꽃 김병권, 목련꽃 필 무렵 박규환 (2019.05.22)

● 벼 / 정목일(鄭木日) 가을 들판에 가보면 고개 숙여 기도하고 싶다. 땅에 꿇어앉아 벼에 입 맞추며 경배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누가 이 들판에 황금빛깔을 가득 채워 놓았는가. 벼이삭들을 튼실하게 알알이 여물게 하였는가. 농부들의 땀에 저린 큰 손길이 느껴지고 햇볕에 검게 탄 얼..

[명시감상] 봄날은 간다 손노원, 고향집 어머니 권영분, 사평역에서 곽재구, 백합 향기 권달웅 (2019.05.21)

● 봄날은 간다 / 손노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