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식물들의 외로움 - 임동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식물들의 외로움/임동확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식물들의 외로움/임동확 [서울신문]식물들의 외로움/임동확 한사코 어미의 품에서 떼쓰는 아이들처럼 찰진 논바닥에 도열한 벼들. 낱낱이면서 하나인, 또 하나이면서 낱낱인 식물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건 결코 내부의 news.v.daum.net 식물들의 외로움 / 임동확 한사코 어미의 품에서 떼쓰는 아이들처럼 찰진 논바닥에 도열한 벼들. 낱낱이면서 하나인, 또 하나이면서 낱낱인 식물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건 결코 내부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다. 홀연 태풍처럼 밀려왔다가 그 자취를 감추고 마는 낯선 동력. 누구에게나 단호하고 거침없는 죽음 같은 바깥의 힘. 필시 하나의 정점이자 나락인, 끝없는 나락이자 정점인 푸른 줄기마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왜가리 - 장대송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왜가리/장대송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왜가리/장대송 [서울신문]왜가리/장대송 비 그치자 녹천역 근처 중랑천 둔치에 할멈이 나와 계시다 열무밭에 쪼그려 앉아 꿈쩍도 안 하신다 밤에 빨아놓은 교복이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다림질할 때처럼 가슴 news.v.daum.net 왜가리 / 장대송 비 그치자 녹천역 근처 중랑천 둔치에 할멈이 나와 계시다 열무밭에 쪼그려 앉아 꿈쩍도 안 하신다 밤에 빨아놓은 교복이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다림질할 때처럼 가슴속에 빈 쌀독을 넣고 다닐 때처럼 젖은 마당에 찍어놓고 새벽에 떠난 딸의 발자국처럼 앉아 계시다 비 그치면 노을에 묶인 말장처럼 열무밭에 앉은 왜가리 기억이 묻은 마음 때문에 물속만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신다 왜가리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 - 유홍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유홍준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유월/유홍준 [서울신문]유월/유홍준 차가운 냉정 못에 붕어 잡으러 갈까 자귀나무 그늘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멍한 생각 하러 갈까 손톱 밑이나 파러 갈까 바늘 끝에 끼우는 지렁이 고소한 냄새나 맡으러 news.v.daum.net 유월 / 유홍준 차가운 냉정 못에 붕어 잡으러 갈까 자귀나무 그늘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멍한 생각 하러 갈까 손톱 밑이나 파러 갈까 바늘 끝에 끼우는 지렁이 고소한 냄새나 맡으러 갈까 여러 마리는 말고 두어 마리 붕어를 잡아 매끄러운 비늘이나 만지러 갈까 그러다가 문득 서럽고 싱거워져서 차가운 냉정 못에 코펠 들고 슬슬 못가를 돌며 민물새우나 잡을까 해거름 내리는 못둑에 서서 멍하니 그저 멍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못, 준다 - 현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못, 준다/손현숙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못, 준다/손현숙 [서울신문]못, 준다/손현숙 연애 고수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잘 주고받기란다 피구 게임에서도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고받기만을 잘하면 쇳덩이라도 가벼운 법이라 news.v.daum.net 못, 준다 / 손현숙 연애 고수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잘 주고받기란다 피구 게임에서도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고받기만을 잘하면 쇳덩이라도 가벼운 법이라는데, 나무껍질처럼 생긴 목수 아저씨 못 하나 입에 물고 한참을 중얼거린다 장미나무 찻장을 앞에 세워놓고 “꽃 줄게, 꽃 받아라” 문짝을 달랜다, 나무의 결 따라 못질한다 심하게 어깃장 놓던 장미 찻장이 거짓말처럼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왕십리 - 김소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왕십리/김소월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왕십리/김소월 [서울신문] 왕십리/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 news.v.daum.net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오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이제 장마도 끝이다 싶어 여름 내내 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뱅이 찌개 - 신언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뱅이 찌개/신언관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뱅이 찌개/신언관 새뱅이 찌개/신언관 가을 일 끝나고 얼음 얼기 전 이맘때 댕댕이넝쿨 바구니와 얼기미 들고 마른 억새 된서리 헤치며 논둑 따라 둠벙에 가면 방개가 저쪽 끝으로 도망가고 송사리 떼가 새까맣게 news.v.daum.net 새뱅이 찌개 / 신언관 가을 일 끝나고 얼음 얼기 전 이맘때 댕댕이넝쿨 바구니와 얼기미 들고 마른 억새 된서리 헤치며 논둑 따라 둠벙에 가면 방개가 저쪽 끝으로 도망가고 송사리 떼가 새까맣게 물을 튀기는데 가장자리 슬쩍 훑으면 톡톡 튀는 새뱅이 한 웅큼 올라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송사리와 새뱅이 한 사발 내기 그리고 쌀방개 몇 마리 금세 바구니 가득 챙겨 젖은 발 시린 줄도 모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버지, 거시기 - 김정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버지, 거시기/김정숙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버지, 거시기/김정숙 아버지, 거시기/김정숙 그이의 등목을 해주다가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의 잔등을 지켜보네 쥐 잡듯이 자식들을 키우시던 아버지 걸핏하면 부리부리한 눈 부릅뜨시던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무섭 news.v.daum.net 아버지, 거시기 / 김정숙 그이의 등목을 해주다가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의 잔등을 지켜보네 쥐 잡듯이 자식들을 키우시던 아버지 걸핏하면 부리부리한 눈 부릅뜨시던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무섭던 아버지 늙어 꼬부라진 뒤에는 내게 몸을 맡기셨지 내 몸 좀 씻겨다오 목욕 좀 시켜다오 목욕 다 마치도록 끝내 팬티는 못 벗으시다가도 아버지 괜찮아요 제게 맡기세요 그런 뒤부터는 며느리에게는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채송화가 한창입니다 - 김영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채송화가 한창입니다/김영미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채송화가 한창입니다/김영미 채송화가 한창입니다/김영미 ‘눈길이 멀면 명길 짧다’는 할머니 말씀이 피었다 노랑 저고리 분홍 치마 입으신 할머니 어린 눈에 할미가 하늘만큼 이뻤다 낮은 곳에 산 채송화 하늘이 멀었다 news.v.daum.net 채송화가 한창입니다 / 김영미 ‘눈길이 멀면 명길 짧다’는 할머니 말씀이 피었다 노랑 저고리 분홍 치마 입으신 할머니 어린 눈에 할미가 하늘만큼 이뻤다 낮은 곳에 산 채송화 하늘이 멀었다 여름 속을 뛰어든 꽃씨 저 세상으로 든 그 저녁 씨 뿌리지 않은 마당에 안티푸라민 냄새가 나를 업었다 눈길이 멀면 명길이 짧다. 평범한 우리네 어르신들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는 이치가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리랑 도계 - 박잎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완전한 뜰/김유정 · 아리랑 도계/박잎 (daum.net)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완전한 뜰/김유정 · 아리랑 도계/박잎 프레스코화를 중심으로 식물의 힘, 생명과 문명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본다. 6월 12일까지 서울 송파구 KS갤러리. 아리랑 도계/박잎 시커먼 분진으로 뒤덮인 도계역 하늘은 무섭게 푸르르고 news.v.daum.net 아리랑 도계 / 박잎 시커먼 분진으로 뒤덮인 도계역 하늘은 무섭게 푸르르고 철로 변을 걷다 보면 저만치 걸어오는 장의사 집 겨울밤 나는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께 시린 이야기를 들었다네 산 사람 팔을 자를 수 있어? 그때 갱도가 무너질 때 내가 병갑이 팔을 잘랐으면 살 수 있었어 툭 투둑, 갱이 무너지고 난 차마 도끼를 들지 못했지 유언이 뭐였..

[임의진의 시골편지] 미나리밭

[임의진의 시골편지] 미나리밭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 미나리밭 [경향신문] 꽃들이 피니 마당이 환해지네. 꽃가게에 가보라. 봄꽃 싱그러운 식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집을 꽉 차게 만들리라. 한 스승이 있었는데 제자들에게 이 방을 한번 가득하게 news.v.daum.net 꽃들이 피니 마당이 환해지네. 꽃가게에 가보라. 봄꽃 싱그러운 식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집을 꽉 차게 만들리라. 한 스승이 있었는데 제자들에게 이 방을 한번 가득하게 채워보라 명했다. 첫째 제자는 오리털 잠바를 뜯어 깃털을 쏟았는데 방을 채우진 못함. 둘째 제자는 지푸라기 한 짐을 지고 와설랑 펼쳤으나 마찬가지 방을 못 채웠다. 셋째 제자는 양초 한 개와 꽃다발을 들고 오더니 빛과 향으로 방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