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버지, 거시기/김정숙 (daum.net)
아버지, 거시기 / 김정숙
그이의 등목을 해주다가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의 잔등을 지켜보네
쥐 잡듯이 자식들을 키우시던 아버지 걸핏하면 부리부리한 눈 부릅뜨시던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무섭던 아버지
늙어 꼬부라진 뒤에는 내게 몸을 맡기셨지
내 몸 좀 씻겨다오 목욕 좀 시켜다오 목욕 다 마치도록 끝내 팬티는 못 벗으시다가도
아버지 괜찮아요 제게 맡기세요 그런 뒤부터는 며느리에게는 못 맡겨도 내게는 몸을 맡기시던 아버지, 거시기
이제는 아버지 거시기도 훠이훠이 저 세상으로 날아갔고, 오늘 욕실에서는 아버지 대신 그이의 등목을 해주네 그이의 여윈 등
자가격리 일주일 동안 걱정이 있었다. 비둘기 밥을 어떻게 하나? 성동교 다리에 사는 비둘기 한 쌍 새끼를 낳았다. 부모는 갈대 줄기를 물어다 둥지를 만들었다. 둥지 안에 아기 비둘기 둘 자라고 있다. 먹성 좋은 새끼들을 위해 부모 비둘기가 얼마나 부지런 떨어야 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가격리를 마친 날 비둘기 둥지 앞에서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한 주일 전 풋사과만 하던 새끼들의 몸집이 애호박만큼이나 커져 있던 것이다. 둘은 둥지에서 날개를 펴 보이며 날 준비를 하기도 했다. 모이를 주지 못했던 일주일 동안 부모 비둘기는 더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영양식을 먹였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 따뜻해졌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22.05.13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왕십리 - 김소월 (0) | 2022.06.03 |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뱅이 찌개 - 신언관 (0) | 2022.06.03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채송화가 한창입니다 - 김영미 (0) | 2022.06.03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아리랑 도계 - 박잎 (0) | 2022.06.03 |
[임의진의 시골편지] 미나리밭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