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명시감상]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녀에게 김종제, 벚꽃나무 유홍준 (2020.04.05)

●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

[명시감상] 민들레 최동현, 4월 한승주, 수선화에게 정호승, 봉선화 김상옥 (2020.04.05)

● 민들레 / 최동현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없..

[명시감상]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다이아나 루먼스, 나무 조이스 킬머 (2020.04.05)

●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 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

[명시감상] 산벚나무가 왕벚나무에게 최두석, 윤판나물 김승기, 각시붓꽃을 위한 연가 복효근 (2020.04.05)

● ​산벚나무가 왕벚나무에게 / 최두석 하산하여 저자로 간 지 오래인 나의 친척이여 요즘 그대 집안의 번창이 놀랍더군 일찌감치 화투장에 삼월의 모델이 될 때부터 알아보았네만 요즘은 사꾸라라고 욕하는 사람도 없이 지역과 거리의 자랑인 양 심어 축제를 열기에 바쁘더군 그대의 ..

[명시감상] 산수유 마을에 갔습니다 강연호, 봄꽃을 보니 김시천, 살구꽃 문신 (2020.04.05)

● 산수유 마을에 갔습니다 / 강연호 지리산 산동마을로 산수유 사러 갔습니다 산동 마을은 바로 산수유 마을이고 그 열매로 차를 끓여 마시면 이명에 좋다던가요 어디서 흘려들은 처방을 핑계 삼았습니다만 사실은 가을빛이 이명처럼 넌출거렸기 때문입니다 이명이란, 미궁 같은 귓바..

[명시감상] 다시 목련 김광균, 목련 후기 복효근, 견앵화유감 한용운 (2020.04.05)

● 다시 목련(木蓮) / 김광균 사월이 오면 목련은 왜 옛 마당을 찾아와 피는 것일까 어머니 가신 지 스물네 해 무던히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잔디잎이 눈을 뜰 때면 어머님은 내 옆에 돌아와 서셔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신다 하루 아침엔 날이 흐리고 하늘에..

[명시감상]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권경업,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2020.04.05)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도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풀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

[명시감상] 다시 오는 봄 도종환, 풀꽃 남정림, 매화꽃 피다 목필균, 봄길 정호승 (2020.04.04)

● 다시 오는 봄 /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 풀꽃 / 남정림 누가 너를 보잘 것 없다 했느냐 잠깐 ..

[명작수필] 「고향」 김형규, 고향의 노래, 산골짝의 등불, 향수, 가고파, 고향의 푸른 잔디 (2020.04.02)

● 고향 / 김형규 고향은 생각해 무엇하리 일가 흩어지고 무너진 옛 집터에 낙엽지는 저녁 까막까막 울고 가는 고향은 생각해 무엇하리 어슴푸레하게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 이 시구(詩句)가 20여 년 전 어느 사범 학교서 학생들에게 적어 준 시의 한 구절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 김동환(파인巴人)의 시가 아니던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시집(詩集)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여기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 것이다. 시집도 없어지고, 작자의 행방도 묘연한 시의 한 구절을, 흩어진 기억을 더듬어 적어 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제(日帝)의 발악이 극도에 달하여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내가 맡은 조선어 시간도 깎고 줄어들어 이제는 그 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이 깜박거리고 있을 때, 학교에 가는 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