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 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으로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나무(Trees) / 조이스 킬머(Alfred Joyce Kilmer)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
허기진 입을 대지의 달콤한 젖가슴
깊숙이 묻고 있는 나무
온종일 잎에 덮인 두 팔을 들어올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
여름이 오면 머리 한가운데
울새 둥지를 이고 있는 나무
그 가슴에 눈이 내리면 쉬었다 가게 하고
비가 오면 다정히 말을 건네주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
TREES / Joyce Kilmer (1886~1918)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A poem lovely as a tree.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Upon whose bosom snow has lain;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 2020.04.05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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