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 최동현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없이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은 꽃 이파리 하나로도, 문득
세상은 이렇게 환한데
나는 무엇을 좇아 늘 몸이 아픈가
황홀한 슬픔으로 넋을 잃고
이렇듯 햇빛 맑은 날
나는 잠시 네 곁에서 아득하구나
● 4월 / 한승주
여기저기 봄꽃들 피었다.
가로수 왕벚꽃 화려한 왕관을 쓴 채
임대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린
어린 개나리를 내려다보고
철없는 목련은 하얀 알몸으로
부잣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한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화려함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사는 동네가 다르지만
그것으로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
빛깔이 다르지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루러져서 참 아름다운 세상
●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봉선화 /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손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 2020.04.05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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