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안부 김시천, 행복 나태주, 잘 지내고 있어요 목필균, 늙어가는 길 윤석구 (2020.04.05)

푸레택 2020. 4. 5. 10:44

 

 

 

 

 

● 안부 / 김시천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잘 지내고 있어요 / 목필균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면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건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 늙어 가는 길 / 윤석구(시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 2020.04.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