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招待수필] 조용한 추석 / 허재환 (2020.10.04)

■ 조용한 추석 / 허재환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조용하던 시골 마을은 객지로 떠난 자녀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도 바빠진다.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정리하고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면서 마을 공동체 일원임을 확인하고, 추석을 맞으러 내려오는 자녀들에게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여 마을의 좋은 이미지를 갖고가도록 준비를 한다. 이른 아침 이장님의 청소 안내방송에 따라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지만 남자들은 낫, 삽 또는 예초기 등을 갖고나와 키만큼 자란 풀과 길가의 불필요한 대나무와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여자들은 집게, 갈퀴 또는 빗자루 등을 들고 나와 잘라낸 풀과 쓰레기 등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대청소가 끝나고 나면 '추석을 맞이하여 구절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

[명시감상] 햇살의 말씀 공광규,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복효근.. 오늘을 사랑하라 (2020.10.02)

■ 햇살의 말씀 / 공광규 세상에 사람과 집이 하도 많아서 하느님께서 모두 들르시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추운 겨울에는 거실 깊숙이 햇살을 넣어주시는데 베란다 화초를 반짝반짝 만지시고 난초 잎에 앉아 휘청 몸무게를 재어보시고 기어가는 쌀벌레 옆구리를 간지럼 태워 데굴데굴 구르게 하시고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도 환하게 만지시고 컴퓨터와 펼친 책을 자상하게 훑어보시고는 연필을 쥐고 백지에 사각사각 무슨 말씀을 써보라고 하시는지라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귀를 세우고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햇살도 함께 누워서 볼과 코와 이마를 만져주시는지라 아! 따뜻한 햇살의 체온 때문에 나는 거실에 누운 까닭을 잊고 한참이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햇살이 쓰시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는지라 “광규야,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시집 (『..

[명시감상] 단풍 드는 날 도종환, 어찌 그립지 않겠습니까 김현태, 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0.09.22)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어찌 그립지 않겠습니까 / 김현태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낙엽 하나 뒤척거려도 내 가슴 흔들리는데 귓가에 바람 한 점 스쳐도 내 청춘 이리도 쓰리고 아린데 왜 눈물겹지 않겠습니까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한다기에 그저 한번 훔쳐본 것 뿐인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메스꺼운 너울 같은 그리움 왜 보고 싶은 날이 없겠습니까 하루의 해를 전봇대에 걸쳐놓고 막차에 몸을 실을 때면 어김없이 창가에 그대가 ..

[명시감상] 구월이 오면 안도현, 9월 이외수, 9월의 약속 오광수, 9월 오세영 (2020.09.22)

■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

[招待수필] '바둑이 명품 되다' 허재환 (2020.09.18)

■ 바둑이 명품 되다 / 허재환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사랑이(포메라니안)가 세상에 태어난 지 5년도 되지 않아 무지개 다리를 건너 먼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특별히 아프지는 않았으나 태어날 때부터 폐가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몇 번 졌는데 그날따라 음식을 잘 먹지 않자 아내가 걱정스러워하며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를 한다. ‘하나님 우리 사랑이가 아파요. 꼭 낫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시려면 저보다 더 사랑이를 잘 돌볼 수 있는 분이 키울 수 있게 해주셔요.’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내려놓은 사랑이가 5분도 지나지 않아 깊은 숨을 몇 번 쉬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2층에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큰소리로 우는 아내 소리에 놀라 가까운 친척분이라도 돌아가셨나..

[초대수필] '부모님의 편지' 허재환 (2020.09.14)

■ 부모님의 편지 / 허재환 우리 세대는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더욱이나 시골에 살다보니 파스텔 구경해 본 것이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되어서였을까. 딸이나 조카들 대부분이 미술이나 디자인 전공을 하고 있어 가끔 아내가 자신은 미술에 너무 재주가 없다면서 딸이 그림을 선택한 것이 아빠 닮지 않았느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 얼굴 하나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으니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믿지를 않는다. 고등학교 때 적성검사를 했는데 미술이 99가 나오고 나머지 모두 100이 나왔다. 이러니 내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난감해 졌었다. 어떻게 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지나고 보니 언어, 사학 등 어떤 것을 선택해도 잘 했겠다 하는 생각이 나기도 ..

[소설읽기]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의 실화 소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2020.09.12)

♤ 프랑수아 를로르의 실화 소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읽었다.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의 마지막 비밀은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다. 행복은 산속을 걷는 것이다.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나의 행복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프랑수아 를로르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이 도시에서, 꾸뻬 씨는 둥근 뿔테 안경에 콧수염을 기르고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

[招待수필] '커피 레시피' 허재환.. 서천에서 보내온 전원일기 (2020.08.25)

■ 커피 레시피 / 허재환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에 든다'이다. 이전엔 늦은 밤까지 TV를 켜놓고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었으나 요즘은 아침 해가 뜨면 바로 일어나 텃밭으로 나가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일상이다. 밭에 들어가려면 항상 준비해야 할 옷가지와 농기구가 있어야지만 생각이 부족한 아침이라 준비 없이 둘러보다가 일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 맨손으로 도전하게 된다. 그래 손톱 밑에는 언제나 까맣게 때가 껴서 '나 시골에서 농사 지어유'라고 인사를 전한다. 텃밭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으름, 다래와 사과나무가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여러 나무들을 살펴보면 잘 익어가는 과일도 보이나, 잦은 비로 면역력이 약해서 시름시름 ..

[명시감상] 가슴에 내리는 비 윤보영 (2020.08.16)

● 가슴에 내리는 비 / 윤보영 비가 내리는군요 내리는 비에 그리움이 젖을까 봐 마음의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보고 싶은 그대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그대 찾아 나섭니다 그립다 못해 내 마음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군요 벗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비 내리는 날은 하늘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그 하늘 당신이니까요 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 사는 나는 늦은 밤인데도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을 보면 그대 생각이 비처럼 내 마음을 씻어주고 있나 봅니다 비가 내립니다 내 마음에 빗물을 담아 촉촉한 가슴이 되면 꽃씨를 뿌리렵니다 그 꽃씨 당신입니다 ..

[명작수필] 하루에 한 번 쯤은 하늘을 쳐다 보자, 안병욱 (2020.08.14)

☆ 젊은 시절, 마음이 괴롭고 외로울 때면 수필을 읽었다. 연세대 김형석 교수와 숭실대 안병욱 교수의 수필집을 읽고 또 읽었다. 오늘 우연히 그 시절 읽었던 글 한 편을 발견하여 다시 읽어 보았다. 묻어두고 싶은 쓰라린 상처 투성이 뿐인 서럽던 청춘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리운 얼굴들 살포시 떠올리며 그때를 회억해 본다. ● 하루에 한 번 쯤은 / 안병욱(1920~2013) 1. 높은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쯤은 높은 하늘을 쳐다보자. 별이 총총히 깔린 흰 구름이 시름없이 떠도는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은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자꾸만 멀어진다는 것은 병들어간다는 증거다. 본래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요 자연의 딸이다. 자연은 우리를 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