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2094

[소설읽기] 「김강사와 T교수」 유진오 (2020.11.05)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16)에 살려있는 유진오의 단편소설 '김강사와 T교수'를 읽었다. '김강사와 T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양심적 지식인의 비애를 그린 소설이다. ■ 김강사와 T교수 / 유진오 (1932년 作) 1 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시대에는 한때 문학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도령님 또는 책상물림의 티가 뚝뚝 듣는 그러한 지식청년이었다. . . 그때 이웃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물결이 늠설늠설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16 (1995, 동아출판사) 발췌 ♤ 작품해설 1932년 ..

[소설읽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2020.11.05)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19) 박태원의 『성탄제』에 실려있는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도시(경성)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을 나와 마루 끝에 놓이 구두를 신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떼어 들고 그리고 문간을 향하염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 .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와 친해야 한다. . . 어쩌면 ..

[소설읽기] 「줄광대」 이청준 (2020.11.05)

오늘은 한국단편소설 베스트 100(휴이넘)에 실려있는 이청준의 소설 '줄광대'를 읽었다. 오래전에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그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 줄광대 / 이청준 운이 열한 살 되던 해였다.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엘 갔다가 시들해져 돌아온 운을 보고 허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ㅡ세상에는 줄광대가 밟을 만한 땅이 흔찮을 게 당연하지. 그러고는 운에게 줄타기를 가르치기시작했다. . . 운은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때 이미 그는 언뜻 보기에 허 노인과 다름없이 줄을 탔다. 그러나 허 노인은 운을 사람들 앞에서 줄을 오르게 하려는 눈치가 안 보였다. 하지만 운은 그 허 노인에게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운은 허 노인을 무서워했다. . . 참다못해 운이 어느 날 ..

[소설읽기] 「반연애론」 조해일 (2020.11.04)

오늘은 1995년에 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65) 조해일(趙海一)의 『아메리카』에 실려있는 중단편소설 '아메리카'와 '멘드롱 따또' 그리고 '반(反)연애론'을 읽었다. '반연애론'은 현실일탈적인 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읽는 재미를 쏠쏠하다. 그러데 왜 연애론이 아니고 반(反)연애론일까? ■ 반(反)연애론 / 조해일 (1975년 作) 1장 여자를 아주 쉽게 얻는 경우에 남자들은 흔히 그 여자에 대한 우월감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리고 그때가 아마도 남자에게는 가장 불행한 한때가 아닌가 한다.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는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 그 남자의 마음 속에는 사랑의 뿌리가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욕망의 몹쓸 잎사귀들만 무성하게 자라서 그의 영혼을 아주 황폐하게 만들어 버릴 공산이 크..

[소설읽기] 「멘드롱 따또」 조해일 (2020.11.04)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65) 조해일(趙海一)의 『아메리카』에 실려있는 중편소설 '멘드롱 따또'를 읽었다. 폐쇄된 집단 속에 새로운 이방인의 출현, 집단의 지배질서를 위협하는 자에 대한 무형 유형의 잔혹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 비록 1970년대의 참담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마지막 한 줄까지 읽어야 하는 반전 소설이나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 오늘 읽은 '멘드롱 따또'는 내게 소설 읽는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은 절대 미리 줄거리나 결말을 찾아 읽지 마시기를... ■ 멘드롱 따또 / 조해일 (1970년 作) 어제 저녁, 멘드롱 따또가 죽었다. 그가 우리 앞에 그 커다란 몸집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지난 2월의 일, 그러니까 9개월 ..

[소설읽기] 「아메리카」 조해일 (2020.11.04)

오늘은 1995년에 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65) 조해일(趙海一)의 『아메리카』에 실려있는 중편소설 '아메리카'를 읽었다. 조해일 작가의 연보를 살펴보니 1961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한 걸로 나온다. 책 속에는 보성중학교 2학년(1956) 때 찍은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다. 사진 속 교복과 모자에 달린 교표 '뽀'가 무척 반갑다. 아득히 먼 그 시절, 교표 '뽀'를 모자에 달고 혜화동 1번지 보성중학교 교정을 드나들던 그 때가 문득 생각난다. 철없이 뛰놀며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그때가 그립다. 내가 보성중학교 2학년 때가 1966년이니 조해일 작가는 나의 보성중고교(普成中高校) 꼭 10년 선배다. 소설은 무엇보다 플롯이 탄탄하고 재미가 있어아 한다. 조해일의 소설 '아메리카'는 나의..

[소설읽기] 「유자소전」 이문구 (2020.11.04)

오늘은 1995년에 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55) 이문구(李文求)의 『장곡리 고욤나무』에 실려있는 이문구의 '유자소전'을 읽었다. '유자소전'은 전기문 형태의 소설이다. 유자의 본명은 유재필이며 화자의 벗이다. 그리고 화자는 작가 이문구의 대리인이다. 이문구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벗의 일대기를 소설로 기록하였는데 유재필을 공자, 맹자처럼 유자라 칭하여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손은주 교사는 '한국문학산책' 평론에서 '유자소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육체가 죽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작가가 벗을 기억하였기에 유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죽지 않았고 또 이런 작품을 남겼기에 작가 역시 세상을 하직한 후에도..

[명시감상] 물푸레나무 사랑 나병춘,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김명인, 옛날과 물푸레나무 황금찬 (2020.11.03)

● 물푸레나무 사랑 / 나병춘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40년이 걸렸다 물푸레나무는 길가에 자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얼마나 바랬을까 중학교 생물 선생님은 허구한 날 지각을 일삼는다고 회초리를 후려쳤는데 그것이 물푸레나무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늦가을 도리깨질할 때마다 콩, 녹두, 참깨를 털어내면서도 그게 물푸레나무라 얘기해주지 않았다 아버지 선생님 탓은 안 할란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들꽃을 사랑한다면서도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이렇게 오래토록 지각하였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이 땅의 시어미들은 며느릴 호되게 다그치면서도 그 풀꽃 이름들 하나 하나 이쁘게 부르면서 넌 잡초야, 구박하지 않았다 ● 물푸레나무 / 박정원 사랑이여 그대가 물푸레나무인 줄 몰랐다 물푸레..

[명사칼럼] '추효정답(秋孝情答)' 김재화 (2020.10.07)

■ 추효정답(秋孝情答) / 김재화 작가(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다시 또 추석 명절을 맞습니다만, 코19추석은 그 격식과 법도가 많이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찾아뵙지 않는 게 효’, ‘모이지 않는 게 정’, ‘움직이지 않는 게 답’이랍니다. 구호가 이렇게 야박해지고 말았습니다. 씁쓸하게도. 추석은 이렇게 지내시라 하는 게 방역당국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물론 올해 추석만 이래야겠고, 당연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앞 글자 넷을 따봤더니 秋孝情答, 무슨 고사성어가 된 듯합니다. 허허! 이런 노래 아시죠?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새색시의 낭군이 여러 날 한양이나 경성, 서울을 다녀온 걸까요? 임 기다리던 젊은 색시, 막상 그를 보자 밝은 소리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장..

[명시감상] 감사하다 정호승, 10월 엽서 이해인, 한가위 최광림, 산골 이발소 이범노, The Rose - Bette Midler, Westlife (2020.10.04)

■ 감사하다 / 정호승 태풍에 부러져 내린 가로수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드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 10월 엽서 /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