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김강사와 T교수」 유진오 (2020.11.05)

푸레택 2020. 11. 5. 18:42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16)에 살려있는 유진오의 단편소설 '김강사와 T교수'를 읽었다. '김강사와 T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양심적 지식인의 비애를 그린 소설이다.

■ 김강사와 T교수 / 유진오 (1932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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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시대에는 한때 문학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도령님 또는 책상물림의 티가 뚝뚝 듣는 그러한 지식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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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웃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물결이 늠설늠설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16 (1995, 동아출판사) 발췌

♤ 작품해설
1932년 『신동아』에 발표된 단편소설. 사실주의를 추구한 심리소설로, 지식인은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주인공 김만필은 H과장의 소개로 S전문학교 강사에 취임한다. 그곳에서 T라는 교수와 알게 되었는데, 그는 처음 만난 김만필에게 갖은 친절을 베풀면서 학교의 이면상까지 들려준다. 그때 S전문 교수회는 세 파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교장과 T가 강한 파였다. 그는 어느 날 H과장 댁을 예방했다가 거기서 T를 만난다. 돌아오는 길에 T는 김만필에게 그의 과거를 다 알고 있다면서 위협한다. T는 은근히 김만필이 동아리가 되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T는 그가 신문에 좌익 작가의 활동상황을 소개한 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대학시절에 문화비판회 회원으로 활약했던 일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T를 찾아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하루는 T가 김만필에게 H과장이 한번 만나고 싶다니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날 밤 김만필은 H과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H과장은 자기를 망신시켰다면서 큰 성화를 낸다. 그것은 T가 H에게 김만필의 과거를 폭로했기 때문이며, 이것으로 그는 S전문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동경 제국대학 독일 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인 김만필은 아직도 '책상물림' 티가 나는 지식청년이었다. S전문대학교 교문을 들어서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김만필이 그 동안 일년 반 동안의 룸펜 생활을 끝내고 강사로 취임식에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교장을 찾아갔다. 교장실은 넓고 화려하였다. 두툼한 회전의자에 버티고 앉아 있는 교장은 사택에서 만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 잘 오셨소. 자 이리와 앉으시오." 하며 의자를 가리킨다. 잠시 후 김만필은 교장으로부터 사령서를 받아 들고 허리를 굽힌다.

"이젠 자네도" 말투부터가 다르다. 조선 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처음이라며 노력할 것을 당부하면서 교무일을 보는 T를 소개한다. 교련 선생 A소좌와 함께 신임 교원 취임식을 가졌다. 많은 생각이 김만필의 머리를 번개같이 지났다. 식이 끝나자 T교수는 걱정하는 말을 건네고, 김만필 강사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김만필은 생전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그날 밤이 늦도록 공부하였다. 아침의 교원실은 요란하다. T교수는 신문실로 들어와 김 강사 옆에 앉으며 학생들을 경계하라 한다. 김 강사는 일부러 자기를 찾아 이런 귀뜸을 해주는 T교수의 친절이 몹시 고마웠다.

학생들은 예상보다 얌전하였다. 도리어 새로 온 젊은 선생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오는 동정의 빛을 보였다. 첫 교단의 감상을 묻는 T교수에게 김 강사는 학생들이 얌전하다고 하자, T교수는 얌전한 것은 표면뿐이라며 특히 스스끼라는 학생을 주의하라 한다. 이때 T교수의 눈은 미움에 타고 있었다. 신참자인 김 강사에게 들려주는 조언으로서는 좀 정도가 지나치리라고 생각될 만큼. 김 강사는 학생을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면서 T교수에게 몹시 탈을 잡히던 스스끼라는 학생에게 도리어 흥미가 있었다.

며칠 후 토일 밤 김 강사는 자신이 S전문학교에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준 H과장에게 치하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H과장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무슨 보퉁이를 낀 T교수를 만났다. "얏데루나(할 짓은 다 하는구먼)." T교수는 김 강사의 어깨를 툭 치며 비밀을 서로 통한 사람들끼리 만이 서로 주고받은 그러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자신은 H과장과 같은 고향이라며, 손에 든 물건을 들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온다. 김만필은 그런 T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몹시 우울하다.

그날 밤 H과장 집에서 나온 T교수는 잠깐 차라도 같이 마시러 가자고 졸랐다. 찻집에서 T교수는 자신이 교장에게 김만필을 추천한 것이라는 공치사를 한다. 김만필은 야비한 느낌을 받았으나, 그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또 전에 쓴 이란 논문에 정말 경복하였다고 하다. 김만필은 상처나 다친 듯이 속이 뜨끔하였다. T교수가 무슨 까닭으로 김만필에게 친절을 보이려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더구나 T교수는 김만필의 집도 알고 있다. T교수는 학교에 여러 가지 세력이 있어 시끄럽다 하면서 주의하라 한다. 김만필은 그와 교재를 계속하면 할수록 자기는 손해만 볼 것같이 생각되어 일각이라도 빨리 T교수의 옆을 떠나고 싶었다. 김만필은 일주일에 S전문학교에 이틀 출근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어느 일요일 스스끼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상냥하고 조리가 있어 두뇌가 명석함을 보였다. 이야기는 문학자 박해로부터 파시즘과 히틀러 공격에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T교수가 미워할 만한 내용이었다.

스스끼는 김만필이 '문화비판회'에서 활동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아니요, 그건 무슨 잘못이겠죠. 나는 회는 잘 모르는데." 김만필이 S전문학교에 취직하여 가장 두려워하는 내용이다. 김만필은 모처럼 얻은 그의 지위와 자기의 양심과를 저울에 달아가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T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김만필은 T교수가 학생들에게 퍼뜨린 데에는 필연코 무슨 계교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스스끼에 대한 경계심도 부쩍 생겼다. 그래서 학생들의 독일 문화 연구 모임에 참석도 거부했다.

그후 김만필은 일종의 강박관념에 쪼들리는 정신병자같이 항상 무엇엔가 마음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차차 학교의 권력 싸움의 내막도 알게 되었다. 김 강사는 교장도 T교수도 H과장도 영영 찾아가지 않았다. 하루는 T교수가 세상은 다 그런 것이라며 우리 교장도 그런 것을 대단 생각하는 사람이니, 연말도 되고 하니 한번 과자 상자나 한 상자 사 가지고 찾아가 보라 한다. 김 강사는 서양과자 한 상자를 샀다. "창피하다." 마음속에서는 심한 갈등이 생겼다. 결국 어떤 아주머니에게 주고 말았다.

새해가 되고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다. 김 강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피곤을 느꼈다. 감당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모순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느 편으로든가 그는 그 모순이 터져 나갈 길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그것을 구할 방도와 용기가 없었다.

T교수는 H과장이 좀 만나자는 말을 전하며, 왜 교장에게도 찾아가지 않았냐고 충심으로 김 강사를 동정하는 눈치를 보인다. 김만필은 H과장을 찾았다. 노기가 등등하다. 자기를 속였다는 것이다. "네는 나한테 와서 취직 청을 할 때 무어라고 그랬어. 사상방면에는 절대로 관계없다고 그랬지. 그래 그렇게 남을 감쪽같이 속이는 데가 어디있나." 그때 이웃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 물결이 늠실늠실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네이버지식백과)

이 소설은 서울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가 선정한 '한국단편소설베스트2 100'에도 실려 있다.

/ 2020.11.05(목) 편집 택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