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95년에 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98) 김한수의 『성장』에 실려있는 중편소설 '봄비 내리는 날'을 읽었다. 이 소설은 90년대 심각한 민생문제였던 토지·주택문제 등을 다루며 도시 서민과 가난한 노동자의 생활을 생생히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자신의 체험이 녹아들어 있어 감동과 밀도를 더하고 있다. 작가는 절대적 빈곤 속에서 부서져가는 삶들에게 이 세상은 과연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송승철 한림대 교수는 '더러운 진실과 문학의 위엄'이라는 제목의 해설 평론에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광기어린 부동산 투기 때문에, 그리고 그 부동산 투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사실적 묘사 때문에 이 작품은 큰 설득력을 얻는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설을 구성하는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라고 말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90년에서 30년이 지난 2020년에도 또다시 광기어린 부동산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다주택자는 더욱더 부자가 되고 뒤질세라 집 없는 젊은이는 '영끌'을 해서 아파트를 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폭등하여 누구는 5억을 벌었다, 누구는 7억을 벌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서 아파트 한 채로 몇 억을 벌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되었다.
평등, 공정, 정의로움을 외치던 그때를 돌이켜본다. 좋은 세상이 오리라 그렇게도 믿고 희망을 가졌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쥐어준 칼끝에 전우가 다쳐쓰러지는데 누가 또 그 칼끝에 뼈와 살이 베어질지 모르는데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하는데 오불관언(吾不關焉). 누구를 탓하냐. 배신과 무능에 서글픈 마음 금할 수 없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다. 예전엔 아파트 부녀회가 집값 단합한다고 조사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했는데 요즘은 전국 아파트 값이 수억을 치솟아도 손놓고 있는 듯 조용하다. 누구하나 집값 원상태로 돌려놓겠다는 희망의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무능한 그들을 믿은 내가 어리석었다고 자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 봄비 내리는 날 / 김한수 (1990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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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이 행복하다면 모르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삶이 늪에 빠진 듯 절망적이고 암담할 때 사람은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열심히 살아온. 삶이 무력해 보이고 허망해 보일 때 희망은 무엇이며,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꿈꾸며 칡넝쿨보다 질긴 목숨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가난한 시장바구니를 들고 시장 어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인파 속으로 파묻히는 강대식 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민석은 서글픔을 느꼈다. 까닭을 알지 못한 서글픔이었다. 만석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일곱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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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의 온몸은 순식간에 빗물에 젖어들었다. 만석은 세찬 빗발을. 몸으로 받아 내었다. 한 줄기 굵은 눈물이 그의 눈에서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비는 계속 내렸다.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빗발은 거세었다. 봄비는 그렇게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 내리는 날』, 창작과 비평사, 1992)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98 (동아출판사, 1995) 발췌
/ 2020.11.06(금) 편집 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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