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95년에 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87) 김영현의『내마음의 서부』에 실려있는 단편소설 '벌레'를 읽었다. 서은주 문학평론가는 '상처받은 인간의 존재적 무거움'이라는 제목의 해설 평론에서 "김영현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경험을 싸안고, 그 고통의 경험을 가장 충실하게 글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작가다. 자신의 경험이 고통스러웠던만큼 그 고통이 자신의 삶에서, 혹은 객관적 현실에서 어떤 의미로 위치시켜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는 작가다" 라고 말하고 있다.
■ 벌레 / 김영현
카프칸가 하는 친구가 쓴 작품 중에 변신(變身)이라는 것이 있다. 썩 재미있다곤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기발한 내용이어서 읽은 지가 오래되었지만 내용의 토막토막이 내 기억의 갈피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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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처구니없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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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 자신이 정말 벌레처럼 취급당하는 경험을 몇 번 하였는데 그경험의 끝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요즘에 와서 문득문득 나 자신이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 버리는 듯한 징그러운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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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는 때늦은 가을비가 추절거리며 내리고 있다.
나는 불을 켜두지 않은 빈지하의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앉아서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서서히 벌레로 변해 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실천문학사, 1990)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87 (1995, 동아출판사) 발췌
♤ 최재봉의 '문학 속으로' 중에서
벌레로 변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카프카의 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잠을 깨어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바뀐 것을 알게 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일과 삶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처지를 상징한다.
김영현의 단편 '벌레'는 카프카의 '변신'을 한국 현실에 접목시킨 문제작이다. 소설 주인공은 학생운동 시절 구치소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완전한 그리고 다소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 버린" 경험을 들려준다. 박정희의 체육관 선거에 맞서 옥중 투쟁을 벌이던 그는 방성구(防聲具)와 수갑으로 입과 손이 결박된 채 '먹방'으로 불리는 징벌방에 갇힌다. 가려움증은 벽의 모서리에 몸을 비비는 것으로 해결했다지만, 생리 현상은 어쩌지 못해 바지를 입은 채 볼일을 보고 만다. 그 순간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올린 주인공은 자신이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입에선 끊임없이 개처럼 질질 흘려대고 있는 침, 질퍽하게 오줌을 싸놓은 옷, 손을 뒤로 묶여 팔이 없는 사람의 꼴을 하고 있는 지금의 형상이 그들을 놀라게 하고 미치게 하고 말 것이었다. 나는 끝없이 작아지고 싶었다. 이를테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싶었다."
ㅡ 출처: 한겨레신문(2019.06.13) 기사 발췌
/ 2020.11.06(금) 편집 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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