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95년에 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87)에 실려있는 김영현의 단편소설 '내 마음의 서부'를 읽었다. 서은주 문학평론가는 '상처받은 인간의 존재적 무거움'이라는 제목의 해설 평론에서 "김영현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경험을 싸안고, 그 고통의 경험을 가장 충실하게 글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작가다. 자신의 경험이 고통스러웠던만큼 그 고통이 자신의 삶에서, 혹은 객관적 현실에서 어떤 의미로 위치시켜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는 작가다" 라고 말하고 있다.
■ 내 마음의 서부 / 김영현 (1992년 作)
나는 한 번도 서부에 가본 적이 없다. 서부는커녕 요즘 흔해빠졌다는 외국나들이조차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아련한 향수처럼 서부의 그 뻘건 황토 계곡과 들소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광활한 들판과, 그 위로 거대한 커튼처럼 드리워져 내리는 붉디붉은 노을이 선연하게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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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내리고 하니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하세나. 대관령이 어디 강원도뿐인감."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겨 놓으며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가만히 그대로 서 있다가 이윽고 혼자 실실 웃으며 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눈발이 그의 곰 같은 커다란 어깨 위로 굵어지면서 내리고 있었다.
(『해남 가는 길』, 실천문학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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