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추석 / 허재환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조용하던 시골 마을은 객지로 떠난 자녀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도 바빠진다.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정리하고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면서 마을 공동체 일원임을 확인하고, 추석을 맞으러 내려오는 자녀들에게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여 마을의 좋은 이미지를 갖고가도록 준비를 한다.
이른 아침 이장님의 청소 안내방송에 따라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지만 남자들은 낫, 삽 또는 예초기 등을 갖고나와 키만큼 자란 풀과 길가의 불필요한 대나무와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여자들은 집게, 갈퀴 또는 빗자루 등을 들고 나와 잘라낸 풀과 쓰레기 등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대청소가 끝나고 나면 '추석을 맞이하여 구절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을 마을 어귀에 걸게 되면 준비는 끝난다.
추석 전날부터 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먼 길을 달려온 승용차들이 몇 대씩 집 앞에 도착하면 조용하던 마을은 모처럼 부모와 자녀 그리고 손자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지며 집안이 갑자기 시끌벅적하다. 시골에선 누구 집 자녀들 몇 명이 왔는지 다 알고 계신다. 부모님들은 내려오는 자녀들을 위해 미리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과일을 준비한다. 그러면서도 가끔 하시는 말씀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좋고' 하신다.
올해는 코로나의 재 확산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가급적 고향방문을 자제하라는 방송으로 찾아오는 자녀들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래 코로나로 만들어진 새로운 추석 예절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찾아뵙지 않는 것이 효"
"모이지 않는 것이 정"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답"
세상을 살아가면서「반갑고 더 좋고」를 느낄 수 있어야 부모와 자식 관계이고 그게 행복한 가정이고 사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갑고 좋으려면 '오고 가고'라는 이동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니 서로가 만나 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길에서 몇 시간씩 소모하며 가야하는 수고와 희생을 매년 마다하지 않고 같은 길을 오고간다.
코로나 사태가 앞으로 몇 달 더 길어져 설에도 이런 사태가 지속 되어 가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습관의 무서움을 안다. 매년 고생을 하며 찾아가던 명절이 몇 번 지속되게 되면 수고와 고생을 통해 얻은 고향의 따뜻함과 부모의 사랑대신 핵가족 속의 편안함에 젖어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결국 명절은 우리 가족만이 편하게 쉬는 날로 생각할 수도 있다.
코로나 이전엔 우리의 모든 관심은 바깥 세상으로 향했다. 마치 나의 눈이 바깥을 향하고 있어 내 눈의 티는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에서 들보를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린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더 모아야 하며, 자연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가는데도 우린 더 좋은 집과 편리한 생활을 위해 녹지를 훼손하고 나무를 자르고 소비를 확대하여 왔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그동안 잘못한 소비와 생활 패턴을 바로 잡아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임을 깨달아 바로 잡아가도록 한다.
요즘 대기환경이 나아지며 감기 환자가 줄고 에너지 소비가 줄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동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더 가지려고 바쁘게 생활하던 사람들도 요즘은 나를 찾아가는 독서와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저녁이면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단절되었던 가족관계가 복원되는 순기능도 나타나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꽃과 나무, 곤충 그리고 밤하늘 등의 자연이 눈에 들어오고 만나지 않아 소원했던 친구들이 그리워지며 친구가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당연하다 생각한 일상들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라는 가치를 하나하나 찾게 된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넘치게 살다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가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녀가 딸 하나이다.
딸은 멜버른에서 결혼하여 사는데 9월 하순에 들어와 추석을 함께 지내고 돌아가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예약해 놓았는데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들어오지 못해서 우리 부부만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수도권의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여 장모님께도 올라가지 않으니 처음엔 오고가는 불편이 없어 편하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롯이 며칠 쉬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루하고 나태해지며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 엄습한다. 비록 힘들어도 부모님 좋아하는 반찬과 과일 그리고 겨울철 입으실 옷을 준비하고 차를 타고 몇 시간이 걸려 가는 동안 힘들어도 가족이 모여 함께 송편을 만들고, 전도 부치고, 식혜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며 지냈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추석 전날 우두커니 집안에 있으려니 뭔가 허전해서 둘 다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시장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는데 한참 후 들어와서 저녁상을 차리는데 예전 부모님 집에서 차리는 추석 상처럼 준비를 한다. 식사 후 아내가 화양에 ‘화양연화’라는 고급 음식점이 있는데 평소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정갈하게 음식을 만드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분들이 반찬가게 사업을 하니 필히 명절에 필요한 반찬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다녀왔다고 한다.
장모님을 찾아뵙지도 앓고 자녀도 오지 않아 부부만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기에 평소처럼 식사를 하려니 생각하였는데 아내의 분위기 있는 추석 상차림 덕분에 맛있게 식사하며 웃고 덕담도 나누면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렸다. 저녁식사 후 둥근 보름달이 산자락 위로 떠오르자 환한 얼굴로 딸이 바라보는 듯하다. 그래 보고 싶은 딸 얼굴을 보름달에 맞춰보니 똑 같이 둥그렇다. 딸도 추석날 보름달이 떠오르면 엄마가 생각이 나겠지...
° 사진 1 아내의 분의기 있는 추석 상차림
° 사진 2 고향 산자락 위로 떠오른 보름달
° 사진 3 엄마의 추석 상차림을 빼닮은 딸의 추석 상차림 (호주 멜버른에서 보내온 사진)
/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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