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햇살의 말씀 공광규,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복효근.. 오늘을 사랑하라 (2020.10.02)

푸레택 2020. 10. 2. 15:08

 

 

 

 

 

 

 

 

 

 

 

■ 햇살의 말씀 / 공광규 

세상에 사람과 집이 하도 많아서
하느님께서 모두 들르시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추운 겨울에는 거실 깊숙이 햇살을 넣어주시는데

베란다 화초를 반짝반짝 만지시고
난초 잎에 앉아 휘청 몸무게를 재어보시고
기어가는 쌀벌레 옆구리를 간지럼 태워 데굴데굴 구르게 하시고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도 환하게 만지시고
컴퓨터와 펼친 책을 자상하게 훑어보시고는
연필을 쥐고 백지에 사각사각 무슨 말씀을 써보라고 하시는지라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귀를 세우고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햇살도 함께 누워서 볼과 코와 이마를 만져주시는지라

! 따뜻한 햇살의 체온 때문에
나는 거실에 누운 까닭을 잊고 한참이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햇살이 쓰시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는지라

광규야,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시집 (『담장을 허물다』창비 2013)

■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 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복효근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 청소년시선 『운동장 편지』(창비교육, 2016)

◇ 복효근,「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을 배달하며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 엽서를 쓰고 시 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ㅡ 문학집배원 시인 박성우

오늘을 사랑하라 /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
오늘은 영원 속의 오늘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없다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이다
오늘이 30번 모여 한 달이 되고
오늘이 365번 모여 일 년이 되고
오늘이 3만번 모여 일생이 된다

 / 2020.10.0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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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무생각 /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2 더운 백사장에 밀려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날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3 서리바람 부는 낙엽 동산 속
꽃진연당에서 금새 뛸적에
나는 깊이 물속 굽어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꽃진 연당과 같은 내 맘에 금새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4 소리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