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효정답(秋孝情答) / 김재화 작가(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다시 또 추석 명절을 맞습니다만, 코19추석은 그 격식과 법도가 많이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찾아뵙지 않는 게 효’,
‘모이지 않는 게 정’,
‘움직이지 않는 게 답’이랍니다.
구호가 이렇게 야박해지고 말았습니다.
씁쓸하게도.
추석은 이렇게 지내시라 하는 게 방역당국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물론 올해 추석만 이래야겠고, 당연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앞 글자 넷을 따봤더니 秋孝情答,
무슨 고사성어가 된 듯합니다. 허허!
이런 노래 아시죠?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새색시의 낭군이 여러 날 한양이나 경성, 서울을 다녀온 걸까요?
임 기다리던 젊은 색시, 막상 그를 보자 밝은 소리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장독대 뒤에 몸 숨기고 그저 얼굴 붉어지며 행주치마 끝만 괜히 물었던 것이죠.
우리 조상님들 결정적 순간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가 막히게 실천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야 수줍어서 가까이 하지 않고 말도 안 했지만, 지금은 바이러스 때문에 효나 정을 그런 방식으로 표시해야 합니다.
휴대전화가 기본 생활용품인 요즘과 달리 고향에 전화라도 한 번 하려들면 우체국에 가서 동네 이장 댁으로 연락해서 부모님과 겨우 통화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젠 대면효과와 거의 같은 영상통화도 맘껏 할 수 있게 됐으니 크게 다행입니다. 그러니 ‘불효자는 옵니다’이고요, ‘효자는 안 옵니다’입니다.
제한적으로라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아님 전화, 소셜미디어((SNS)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게 되겠죠.
그럴 때 꼭 지켜야 할 三禮(삼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방역수칙 만큼 준수해야할 3가지 예의는요,
첫째, 술은 적당히 권하고
둘째, 언짢은 말 나오지 않게 주로 들어만 주고
셋째, 상대방 처지 이해하는 말을 하라는 겁니다.
말을 할 땐 三禁(삼금)이 있어야 탈이 없다 했습니다.
첫째, 정치 토론 적극 삼가
둘째, 종교(宗敎) 또한 무 언급
가뜩이나 어려운 중에 돈이나 자식 자랑 내용,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아야겠단 것이죠.
모처럼 통화나 만났을 때 궁금한 것도 많을 겁니다. 내가 알고 싶다고 불쑥 물었다간 상대에게 상처 줄 수 있으니 六不問(육불문)도 꼭 따라야 하겠습니다.
묻지 말아야 할 여섯 가지 중
첫째는 너무 속속들이 캐려는 가족근황입니다. 특히 함께 오지 않은 배우자 안부문의 엄금!
둘째,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남의 경제사정도 알려들지 말라 했습니다.
셋째, 건강을 빌어주는 말이야 좋지만 오랜 지병을 구체적으로 묻는 것도 상대를 불편케 하는 것입니다.
넷째, '누구누굴 자주 만나느냐'는 개개인 친소관계도 묻지 않아야 좋습니다. 우정에 금 가는 수 생깁니다.
다섯째, 여야(與野), 피아(被我) 성향 따지려 들다가 큰 싸움 나는 경우 많이 보시잖습니까! 민감한 사회문제, 섣불리 어느 쪽에 서려 들어선 안 됩니다.
마지막 여섯째, 과거오류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옛 허물을 확인하듯 다시금 꺼내선 아니 아니 아니 되옵니다.
이거 입 다물고 살라는 거지만요,
왜 그런 말 있잖습니까.
“말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백 번 중 한 번 후회하지만,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면 백 번 중 아흔아홉 번 후회한다.”
[출처] 말글레터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블로그
ㅡ 2020.09.28
♤ 김재화 작가 프로필
▲ 1953년 전남 구례 출생
▲ 중앙대학교 졸업·동 대학원 언론학 수료
▲ 육군1679부대/833포병대대(3포병 여단 예하) 근무(1976년 2월~78년 4월)
▲ TBC-TV '살짜기 웃어예', MBC '웃으면 복이 와요', KBS '유머1번지'등 TV 코미디 프로그램 및 라디오 프로그램 500여 편 집필
▲ 스포츠조선에 일일 칼럼 '에로비안나이트' 8년간 연재
▲ 말글레터 유머스피치코디네이터
/ 2020.10.07 편집 택..
■ 화려한 '청춘의 축제' / 김재화 (방송작가, 교수)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자주 꾸는 꿈(夢)이 있다. 꿈은 때로는 그야말로 몽매에도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고,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호기이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섹스도 하련만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이 꾸는 그 꿈은 나갈 곳을 다시 주저앉는 참담함뿐이다. 군대 꿈. 현실과 달리 제대가 되지 않는 이상한 엉킴.
병(病)을 미워하면 오히려 그 병이 빨리 떠나지 않고 친해지면 오히려 금방 떠난다고 하던가. 나는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내게 군대가 무엇이었던가. 다시 그 옛날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아, 대번에 놀라운 변화가 왔다. 처음 한동안 그토록 절망적이던 꿈이 이제는 다시 가고픈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모습을 상영하는 것이다. 어젯밤에도 짜릿한 군대 꿈을 꾸었다.
그 단꿈이 된 곳의 설명이 필요하겠지. 강원도 양구 전방 중에서도 최전방. 1976년 늦게 들어간 대학 탓에 제 나이보다 3년 늦게 입대했기에 이미 제대한 친구들의 '서러운 눈물바람'을 맞고 입대한 나였다. 논산에서 기본훈련과 또다른 곳에서 특수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배치를 받은 곳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는 곳보다 더욱더 멀고 깊숙한, 지도상으로는 38도 위도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암호병' 직책은 말단 병사도 전방이나 야전부대로 가지 않는다는데 나만 가장 멀고 험난한 부대로 '귀양'을 간 것이었다.
빠삐용처럼 나오기가 험난할 것 같은 그 자대생활은 하나하나가, 하루하루가 참담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그곳은 너무 추웠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근무한 강원도 양구에 불었던 그 칼바람 이상의 추위를 겪어보지도, 아니 숫제 들어보지도 못했다. 배치를 받아 간 다음날이 한창 따스한 봄바람 불고 꽃 흐드러지게 필 5월5일 어린이날이었음에도, 뒷산에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여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선임병들은 5월이 다 가도록 야전 점퍼의 칼라 깃을 세우고 지냈고 자대에 가면 나아진다던 시설은 더욱 낙후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식기를 병아리 눈물만큼 흐르는 냇물에 씻어야 했고, 세탁할 물은 아예 없어 선임병들은 1년에 한 차례 휴가 가기 전날 논의 물을 이용해 일계장을 세탁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발·목욕? 무슨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같은 소리 마시라! 그런 건 애초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발은 휴가를 통해 해결해야 했고, 목욕은 부대 뒤로 한참을 가는 곳에 있는 개울물이 여름 장마로 넘치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한 공익광고에 군대에 가려는 눈 나쁜 장정이 시력표를 사력을 다해 엉터리로 읽는 것이 나온다. 그런 애국청년도 내 군대생활을 듣고 나면 입대 의욕이 싹 가실까. 그러나, 그러나 진정코 아니다. 나는 지금 후배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을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30여 년 전에 체험한 '지옥'이 요즘, 아니 나이가 먹어갈수록 왜 더욱 '천당'처럼 그리워지는 것이고, 그 꿈을 꾸고 나면 다시 힘이 불끈 솟는 이유는 뭘까. 그 생활, 어머니가 면회를 왔을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던 군대, 그 어떤 세상의 방해에도 사랑은 영원하자던 J와의 완전 이별을 가져온 곳, 또 독서를 밥보다 즐기던 내가 책이 미치게 그리웠던 시절! 하지만 그 시기가 내 청춘 재가 되고 만 '제사'는 아니었다.
사람에게 성장의 원동력은 따로 있다고 본다. 일정 기간 누구랑 헤어져 있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시간을 가져야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그 맛이 더욱 고귀하고 달게 느껴지는 법이다. 때로는 한밤중에 깨어 있으면서 하늘의 별을 봐야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깨닫는 철학자가 된다. 나보다 나이 어린 상관에게 고개를 숙여보기도 해야만 인생사의 미묘한 구조를 안다.
나는 비록 3년을 늦게 가서 처음 약간은 불편했지만 그 화려한 '청춘의 축제' 시기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얻었다. 어디 한두 가지랴! 작가라는 삶을 사는 내 인생의 8할, 아니 10할 모두를 채워 준 자양분을 누리고 있다는.
난 지금 늦게 본 아들 녀석에게 말하고 있다. "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와 네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부질없는 첫사랑을 떼어준 군대 덕이란다. 세월이 가면 너도 군대라는 축제를 통해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또 남자가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가를 깨달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을 옮겨 적음)
/ 2020.10.07 편집 택
youtu.be/76GUR-OEw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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