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95년에 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55) 이문구(李文求)의 『장곡리 고욤나무』에 실려있는 이문구의 '유자소전'을 읽었다. '유자소전'은 전기문 형태의 소설이다. 유자의 본명은 유재필이며 화자의 벗이다. 그리고 화자는 작가 이문구의 대리인이다. 이문구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벗의 일대기를 소설로 기록하였는데 유재필을 공자, 맹자처럼 유자라 칭하여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손은주 교사는 '한국문학산책' 평론에서 '유자소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육체가 죽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작가가 벗을 기억하였기에 유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죽지 않았고 또 이런 작품을 남겼기에 작가 역시 세상을 하직한 후에도 유자와 더불어 이곳에 계속 살아 있다. 풍운아이면서 성자인 이 독특한 매력 넘치는 인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우리 속에서 소중한 삶의 가치를 외면하고 소소한 이익을 탐하는 작은 인간들이 발호할 때마다 '유자를 보라'고 '그 범하지 못할 기상을 본받자'고 타일러 보는 것은 어떨까.”
■ 유자소전(兪子小傳) / 이문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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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있었다.
그냥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 사람에 불과한 친구였다.
그러나 여느 사람처럼 이 땅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마는지 하게 그럭저럭 살다가 제물에 흐지부지하고 몸을 마친 예사 허릅숭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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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의 장례식은 가을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달포 가량 지나서 시인 이시영 씨가 유자를 읊은 시 한 편이 경양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경향」지에 발표되었다. 제목은 '유재필 씨'였다.
유재필 씨
비가 구죽죽이 내린 날, 유재필 씨의 시신은 영구차에 실려 답십리 삼성 병원 영안실을 떠났습니다. 그 뒤를 호상 이문구 씨가 따랐습니다. 번뜩이는 익살과 놀라운 재기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지만 자신은 이 지상에 한 편의 소설도 시도 남기지 않은 채 새파란 아내와 자식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은 또한 벗 채광석의 일백 일 탈상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일백 일 전 오늘 유재필 씨는 채광석 장례의 지관이 되어 이산 저산을 뒤지며 터를 잡고 돌집에 내려와서는 ‘시인 채광석의 묘’라고 새긴 돌 값을 깎았습니다. 돌 값을 깎고 내려와선 양수리 한강변에서 장어를 사먹었던가요. 햇빛에 그을은 새까만 얼굴과 단단한 어깨, 넘치는 재담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의 직업이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사고 처리반 주임이었으니까요. 죽음은 어쩌면 그와 가장 친숙한 길동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은지요. 그는 우리들을 잠시 놀라게 하려고 이웃 마실에 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일백 일 전에 세상을 떠난 광석이와 그를 묻고 돌을 세운 유재필 씨가 한강변의 이산 저 산에서 만나는 날입니다. “잘 있었나?” “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곳에 좀 먼저 온 죄로 터를 닦아놨습니다. 야, 얘들아 인사드려라, 재필이 성님이다. 소설가로 이문구 씨 친구.” “이문구 씨가 누구요?” “야, 씨팔놈들아, 저 세상에 그런 소설가가 있어!” 유재필 씨는 아직 아무말이 없습니다. 남들이 묻힐 자리를 찾기 위해 수차례 오갔지만 아직은 좀 서먹한 산천과 무엇보다고 세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슬픔이 뼈 끝에 시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구는 잘 갔는지, 그 자식은 내가 없으면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뉘를 찾을지도 궁금하여 안심이 안 됩니다. “형님, 제 교통사고건 맡아 처리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다메요. 저번 사십구재 때 내려가서 가족들이 얘기하는 것 들었습니다. 술도 한잔 못 받아 드리고….”그러나 유재필 씨는 아직 말이 없습니다. 저 세상에 비가 내리는지 누운 자리가 좀 끕끕합니다. 그리고 강물 소리가 시원히 들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 산문시는 이시영 씨의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실천문학사 발행)에도 실려 있다.
내가 두서없이 늘어놓느라고 못다한 이야기가 이 시 속에 절제된 언어로 잘 함축되어 있다.
찬비를 맞으며 돌아섰던 그의 무덤을 나느 그 뒤로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가면 그 다정한 음성으로, “야, 너두 그 고생 그만 허구 나랑 하냥 있자여, 덥두 않구 춥두 않구, 여기두 있을 만혀….”
하며 내 손을 붙들 것만 같아서.
이제 찬한다.
유명이 갈렸건만 아직도 그대를 찾음이여
오룻이 더불어 살은 진한 삶이었음이네.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시가 되어 남음이여
그 정신 아름답고 향기로웠음이네.
아아 사십 중반에 만년이 되었음이여
남보다 앞서 살고 앞서 떠났음이로다.
붓을 놓으며 다시금 눈물 젖음이여
그립고 기리는 마음 가이없어라.
[문학이야기 (34)] 이문구 '유자소전'
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유자소전'은 전기문 형태의 소설이다. 유자의 본명은 유재필이며 화자의 벗이다. 그리고 화자는 작가 이문구의 대리인이다. 이문구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벗의 일대기를 소설로 기록하였으되 유재필을 공자, 맹자와 마찬가지로 유자라 칭하여 존경의 염을 표현하고 있다. 유재필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존경을 받는가?
유자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대범하고 넉살 좋은 그는 나이가 한참 위인 중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냈고 선생님 앞에서도 기죽는 법이 없었다. 왕성한 활동력 때문에 차분하게 앉아 있지 못했던 그는 뼈가 여물기도 전에 학업보다 직업을 생각하였다. 영사 기사가 되고 싶어 무급으로 조수 노릇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배운 확성기 배선 기술로 국회의원 선거 기간에 어느 후보의 확성기를 고쳐주었고 이 일을 계기로 선거운동원이 된다. 또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이른 나이에 어른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그 후보가 얼마 뒤 장관이 되고 유자는 비서관이 된다. 그러나 빛을 본 것도 잠시 정권이 바뀌자 장관이 몰락했고 오갈 데 없어진 유자는 입대한다. 이 호기심 많은 청년은 논산 훈련소로 가는 완행열차에서 사주 책을 주워 읽고는 사주풀이를 한다. 원래의 왕성한 입담에 정치인 비서 시절 갈고닦은 말솜씨까지 더해졌으니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다. 신병 훈련이 아니라 동양철학자 노릇으로 바쁜 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가히 풍운아다. 이 풍운아는 뛰어난 운전 솜씨 덕분에 10대 재벌에 드는 그룹 총수의 운전수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총수의 최측근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며 살기에 그의 그릇은 너무 컸다. 거침없는 생각과 당당한 행동은 총수 앞에서도 위축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총수가 비싼 값으로 수입한 비단잉어가 죽자 고이 묻어주기는커녕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다. 평범한 직장인의 몇 년 치 월급으로 비단잉어를 키우는 총수의 사치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총수 자택의 불당에서 불상의 얼룩을 침을 뱉어 닦다가 총수의 노여움을 사서 운수업체의 노선 상무로 발령을 받는다. 노선 상무는 그룹에 속한 운수업체의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말단 부서의 현장 실무자로 유배된 셈이지만 이 자리야말로 구름 같이 떠돌던 혈기 방장한 괴짜 청년을 위대한 인간 유자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자리라 하겠다.
그는 삶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익히고 살아온 자의 경험과 지혜로 맹활약을 한다. 환자의 문병과 신속한 치료 조치, 사망자에 대한 넉넉한 부의와 정중한 조문, 장지까지 따라가서 장례를 거드는 성의와 적극적인 피해 보상 이행에 이르기까지 그는 완벽했다. 피해자 가족은 그에게 늘 고마워했다. 가해 차량의 회사 사람이 고울 리 없지만 자신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태 주려고 보험회사와 대결도 마다하지 않는 유자에게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자의 인간미는 가해자인 운전사들도 감동시켰다. 사건 처리를 위해 주소지를 찾아가 보면 그들은 대부분 딱하기 짝이 없는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용돈을 털어 쌀을 팔아 주고 밀가루를 팔아주고 연탄을 들여놓아주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굴비 두름을 산비탈 셋방을 찾아가 매달아 주었다. 이것은 약자를 사랑하는 진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선행이다.
유자의 이런 면모는 성자에 가깝다. 그러나 유자의 진짜 매력은 그를 성자라고 부르기 망설이게 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정형의 호방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호방함이 강렬하게 드러난 사건은 그가 어느 종합병원의 원무실장으로 근무할 때 일어났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에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 무렵 시위 중에 다친 사람들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대거 찾아왔다. 가진 것 없는 환자들이 치료비가 있을 리 없고 노사분규로 해고된 사람들이니 회사에서 치료비를 부담할 리 없다 판단한 병원장은 그들의 입원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유자는 원무실장의 권한으로 그들을 입원시키고 치료받게 한다. 병원은 환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였고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임을 진다. 당직 의사만 나오는 일요일에 치료비 없는 환자들을 탈출시킨 것이다. 소외된 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유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실업 이후의 가난도 자신이 입을 손해도. 그는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생애 내내 지켰다.
이문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약자를 돕는 유자를 존경하였고 유능하지만 아버지의 좌익 활동 경력으로 출세하지 못한 유자를 안쓰러워하였고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충청도 보령 사투리를 기막히게 구사하여 ‘말하는 방언사전’ 노릇을 해 준 유자에게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 벗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담아 이 소설을 썼다.
이 독특한 매력 넘치는 인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육체가 죽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작가가 벗을 기억하였기에 유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죽지 않았고 또 이런 작품을 남겼기에 작가 역시 세상을 하직한 후에도 유자와 더불어 이곳에 계속 살아 있다. 풍운아이면서 성자인 이 독특한 매력 넘치는 인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우리 속에서 소중한 삶의 가치를 외면하고 소소한 이익을 탐하는 작은 인간들이 발호할 때마다 유자를 보라고 그 범하지 못할 기상을 본받자고 타일러 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손은주(서울사대부고 교사)
◇ 유자소전 줄거리
보령 출신의 유재필이라는 친구는 심성이 깔끔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능력도 작지 아니한데, 남에게 기대거나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며, 분수없이 남을 제끼거나 잘났다고 으스대는 자를 매우 싫어하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유자는 보령 지방 방언을 구사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어휘 감각을 지니고 이어 문단의 작가들과의 교유에 뒤떨어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같이 재주 없는 작가에게 있어 '걸어다니는 사전'의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었고, 걸찍한 입담과 더불어 신선한 소개가 되어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6․25 때 대천으로 이사오면서 대남 초등학교로 전학했는데, 이때 이미 그의 걸찍하고 넉살좋은 입담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특유의 붙임성과 눈썰미가 뛰어났기 때문에 대남 초등학교의 명물로 이름을 날리기에 이른다. 6․25를 전후하여 한내에 들락거리던 서커스 곡마단이나 영화상영을 놓치지 않고 봐대던 유자를 내가 만난 것은 중학교에서였으나, 3년 내내 알며 지내지 못하였다. 유자는 중학교 졸업 후 전파사에서 확성기 배선 요령 덕에 자유당 말기 야당 위원장 밑에서 지내게 되었다. 4․19혁명 뒤 선거에 당선된 위원장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그는 위원장의 식객으로 있다가 5․16을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낙향하여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입대하러 가던 기차 속에서 우연히 읽게 된 점술책 덕에 편안한 군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운전 기술을 익혀 제대 후 고향에서 택시를 몰게 되었다.
뛰어난 직업의식과 장인 기질 덕에 서울로 상경하여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된 유자는 무명작가가 된 나와 해후하게 된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그룹 총수의 운전수를 하는 그였지만, 총수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결국 그룹의 노선 상무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떳떳하고 속편한 직책을 맞게 되었다고 자위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리분별력을 통해 말썽 많은 교통사고를 원만하게 해결하였고, 사비를 털어 당사자들이 고마워할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하고, 주변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집안 내력과 자신의 삶에 떳떳해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말년에 종합병원 원무실장을 맡은 그는 6․29 선언이 있던 그때 시위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을 입원시키고 병원장과 다툰 후 사표를 쓰고 퇴사한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서도 남의 궂은 일을 도맡아 가며 돕던 유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도우려 애쓰다가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망가진 몸으로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요령과 불의와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기가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당당하게 살다 간 '유자'야말로 이 시대가 기려야 할 인물이기에 '전'을 써 기리는 것이다.
◇ 이해와 감상
19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문구는 이 작품으로 1998년 제8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실화적인 '유재필'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허구적 인물과 구성을 통해 이뤄낸 소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물을 회상하여 쓴 실명 소설로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서 힘겨운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간 의기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서술자는 '유재필' 씨를 평범하게 '유가'라고 부르지 않고, 마치 성인군자를 대하는 기분으로 '공자(孔子)', '맹자(孟子)'하듯이 '유자(兪子)'라고 부르기로 하는데, 이렇듯 이 작품의 서술자는 '유자'를 단순히 한 시대의 기인으로 회상하여 그를 서술해 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는 이미 흔히 찾기 어려워진 존경할 만한 인물로서 평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작은[小] 전기[傳]문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일대기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그 인물의 언행과 관련된 작은 이야깃거리들을 엮어내어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회상체의 수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작품 속의 인물 이야기를 좀더 현실감 있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성도 아울러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이 아무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하더라도,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나 줄거리상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허구적인 구성 방식과 객관화한 서술자로 인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소설적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유자(兪子)'는 심성이 맑고 깨끗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여 많은 문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충청도 어휘의 보고였다고 회상되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특징은 작가라는 서술자의 특징으로 인해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인공의 특징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충청도 사투리와 서민적인 비속어는 현장감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서민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성격과 인물 특성까지도 암시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걸찍한 입담은 전통 사회의 문화적 흔적이다. 판소리, 탈춤과 같은 전통적 예술 장르의 해학적 골계미와 풍자성이 짙은 문체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은 판소리와 같은 예술을 뛰어넘어 조상들의 삶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또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한국이 현대사로서 복잡다단하고 급박하게 변해 왔던 역사이다. 6․25 전쟁과 휴전, 자유당 정권 말기와 4․19혁명, 5․16쿠데타를 거쳐 80년대와 6․29까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길목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한 우리네 삶의 가치관을, 전근대적이지만 인간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삶을 통해 비판,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의 정체성과 전통성 확보를 통해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55 (1995, 동아출판사)
이 소설은 서울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가 선정한 '한국단편소설베스트2 100' (휴이넘)에도 실려있다.
/ 2020.11.04(수) 편집 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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