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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기] 「아메리카」 조해일 (2020.11.04)

푸레택 2020. 11. 4. 21:13






오늘은 1995년에 발간된 한국소설문학대계(65) 조해일(趙海一)의 『아메리카』에 실려있는 중편소설 '아메리카'를 읽었다. 조해일 작가의 연보를 살펴보니 1961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한 걸로 나온다. 책 속에는 보성중학교 2학년(1956) 때 찍은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다. 사진 속 교복과 모자에 달린 교표 '뽀'가 무척 반갑다. 아득히 먼 그 시절, 교표 '뽀'를 모자에 달고 혜화동 1번지 보성중학교 교정을 드나들던 그 때가 문득 생각난다. 철없이 뛰놀며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그때가 그립다. 내가 보성중학교 2학년 때가 1966년이니 조해일 작가는 나의 보성중고교(普成中高校) 꼭 10년 선배다. 소설은 무엇보다 플롯이 탄탄하고 재미가 있어아 한다. 조해일의 소설 '아메리카'는 나의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 아메리카 / 조해일 (1971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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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 헌병이 올라와서 위엄있는 표정으로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가자 버스는 다시 신음을 토하며 출발했다.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의 차창 밖으로 땅바닥에 내려선 헌병의 모습을 흘낏 보았는데 그는 땅바닥 위에서 외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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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복구하러 가는 모양인지, 곡괭이 같은 것을 든 선로 노무자 몇 사람을 태우고 소동차 한 대가 바퀴. 소리도 요란하게 지나갔다.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65 (1995, 동아출판사) 발췌

♤ 작품해설
1971년 『세대』에 발표된 중편소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해부한 역작이다.

주인공 '나'는 제대하면서 숙부가 경영하는 기지촌의 홀에 취직한다. 양부인과 다름없는 댄서들과 환락의 생활에 젖던 '나'는 그녀들의 허황하면서도 고통스런 삶의 양식을 목격하고 기지촌의 생계가 GI들의 돈을 버는 댄서들의 수입에 의존하는 기생적 경제구조에 매어있음을 깨달으며, 그녀들이 미군의 무자비한 린치로 목숨을 잃고, 그럼에도 댄서 지망자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암울한 현실을 거듭 확인한다. 그리하여 '나'는 서울에 취직하러 가겠다는 뜻을 버리고 그녀들과 함께 생활할 것을 결심하고, 때마침 이 촌을 휩쓴 장마가 끝나자 힘차게 새로이 각성된 삶을 향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피지배적 상태에 매몰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비극적인 양상이 여기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 '아메리카' 줄거리

나(김효식)는 제대를 하여 당숙이 있는 ㄷ에 가고 있다. 나의 가족은 날림공사로 지어진 아파트에 살다가 아파트가 무너지는 바람에 잠든 채로 모두 죽었다. 당숙은 이라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옆좌석에 앉은 여자의 도움으로 당숙의 집까지 간다. 마침 그 여자는 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옥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당숙은 나에게 클럽의 문지기 일을 맡겨주었다. 문지기는 클럽에 나오는 여자들의 검진패스를 확인하고 잡상인을 막는 일 정도를 한다. 클럽 안은 미군과 여자들이 춤추고 있다.

옥화란 여자가 검진패스를 내보이며 담배 한 개피를 준다. 옥화는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면 여자들이 가만두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먼저 선수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후 며칠이 지나 옥화와 동침을 하게 된다. 그 뒤 나는 클럽에서 반반하다고 느껴지는 여자들과 동침을 한다. 그러나 이 일들은 은밀히 진행되었다. 나는 차츰 이곳의 풍속에 동화되어 간다.

유달리 그해 여름은 8월로 접어들어서도 비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개울물도 풍부하지 못했다. 나는 카운터 장씨와 개울가 제방 위에 앉아있다. 개울에는 여자들이 더위를 씻기 위해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있다.

여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자 그들은 그 곳을 벗어난다. 그때 동네 쪽 입구로부터 흑인 하나가 급한 걸음으로 온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 흑인이 기옥이라는 여자의 머리채를 쥐고 가는 것을 본다. 기옥이라는 여자는 그 흑인에게 살림 돈을 받고 바바상 클럽의 플로어 쇼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지고 있는 빚이 너무 많아 흑인 몰래 쇼를 나갔다가 들켜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그 사건을 본 나는 끌려간 여자가 당할 폭력과 그 여자를 도와주지 못한 자신에게 구역질이 난다.

이튿날 아침 동네에는 미군들의 금족령이 내려졌다. 군표의 개신(改新) 때문이었다. 군표는 화폐대신 사용할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손해본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서는 그 기옥이라는 여자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흑인에게 목졸려 죽은 것이다.

사흘 뒤 이곳 여자들의 자치조직인 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 행렬이 중간에 미군 정문에 서서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미군의 참모장인 윌리엄 바커 대령이 나와 사과를 한다. 기옥을 묻으러 갔던 여자들이 저녁이 되어서 흰옷들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옥화도 장례식에서 돌아오며 나에게 이따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고열에 시달려 가지 못한다.

나는 사흘 뒤에 일어난다. 나는 사무실에 찾아가 회장을 만난다. 그곳에서 나온 후 기옥이 묻힌 토산으로 간다. 그러나 나는 그 밑에 누워 있는 기옥에게 창피라도 당한 사람처럼 황급히 그곳을 떠난다.

그날 저녁 동네는 봉급날의 풍속대로 흥청댄다. 나는 검진패스는 확인도 않고 소파에 클럽 소파에 앉아있다. 그때 미라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미라는 어머니에게 "귀신같이 또 찾아오셨구려"하고 싸늘하게 말한다. 어머니는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두 사람 때문에 소란스러워지자 여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미라는 문밖으로 달려나간다.

다시 조용해지자 나는 또 소파에 앉는다. 그때 헌병들이 들이닥친다. 여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토벌이다" 낮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패스검사를 한다. 헌병이 보여준 체크리스트에 노랑머리 경애와 옥화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비 내리는 밖을 본다. 그리곤 다시 자리에 눕는다. 이 있은 다음날 미군들은 영외로 나오는 것이 허가되지 않는다. 그리고 에서 체크된 검진 불합격자들은 성병집단치료소로 강제수용되었다. 일주일 동안 동네는 조용했다. 나는 그 일 주일 동안 내내 방안에만 처박혀 지냈다.

수용소로 간 여자들이 엿새만에 돌아왔다. 나는 그녀들을 위한 간소한 위로회를 열어준다. 미라의 방에서 아침을 먹고 나온 나는 당숙모가 거처하는 안방으로 간다. 그방은 10년 가까이 살아오는 고참 여자들의 집합 장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방에서는 미국에 간 순옥이 보내온 녹음 테입이 녹음기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녹음기에서는 바바엄마라는 여자의 안된 소식이 나오고 있다.

오후 2시경부터 호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네 골목이 흙탕물로 흘러 넘치고 있다. 나는 가뭄끝에 보는 비를 구경하기 위해 클럽 문을 열어놓고 서있다. 물이 금새 불어나 흙탕물이 무릎 밑에까지 찼다. 클럽으로 돌아오니 클럽 바닥에도 흙탕물이 넘쳐들고 있다. 당숙과 홍씨, 춘삼이가 의자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쌓고 있었다.

클럽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클럽으로 모였다. 영옥을 아래층 제 방에 숨겨 둔 돈을 찾느라 허둥댄다. 동네의 골목이 완전히 물 속에 잠긴 뒤에야 미군의 인명구조 고무보트가 나타났다. 나이 많은 여자 둘이 미군부대로 지원하여 간다. 안채의 2층 방에서 나는 여자들과 촛불을 켜놓고 이야기를 한다. 당숙은 나에게 자신의 죽을 고비를 넘겨온 이야기를 한다.

나는 햇빛이 스며드는 방안에서 소스라쳐 일어난다. 비는 그쳐 있었고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범람했던 물도 말끔히 빠지고 없었다. 모두들 물먹는 의자와 소파, 옷가지들을 씻어내고 있다. 나를 발견한 당숙은 미라가 없어졌다고 걱정하신다. 미라의 시체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동네 뒤쪽 철둑가에 늘어놓은 젖은 살림살이 위로 여름의 태양이 내리끼치고 있다. 복구를 하러 가는 듯한 노무자 몇 사람을 태운 수동차 한대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 네이버지식백과(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 조해일(趙海一)

본명은 조해룡(趙海龍). 1941년 4월 18일 만주 출생. 1945년 귀국한 이후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1년 보성고를 거쳐 1965년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1973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0년 단편 「매일 죽는 사람」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뿔」(1972), 「아메리카」(1972), 「무쇠탈」(1973), 「지붕 위의 남자」(1977), 「갈 수 없는 나라」(1978), 「낮꿈」(1980) 등 현실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은 폭력배, 개도살장 백정, 지게꾼, 기지촌 창녀, 육군 병정, 임꺽정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사건의 사소한 국면을 기발하게 포착하여 현실의 부조리‧불합리를 풍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아메리카」는 미군부대 기지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기지촌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폭력 등 사회적 문제들을 보다 가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분단을 추상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실존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조해일의 다른 소설들과 구별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연작 형식으로 발표된 「임꺽정」은 야담의 형식을 빌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조해일 소설의 본령이 풍자와 우의에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고 할 수 있다.

신문 연재 소설로서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겨울 여자」와 「우요일(雨曜日)」에서는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를 구현하기도 하였다. 소설집으로 『아메리카』(1974), 『왕십리』(1975), 『겨울여자』(1976), 『매일 죽는 사람』(1976), 『우요일』(1977), 『지붕 위의 남자』(1977), 『엑스』(1982),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1986) 등이 있다.

♤ 조해일 소설 '아메리카'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작가 조해일이 세상을 떠났다. 뉴스에는 났다지만 돌아볼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타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해일의 대표작 가운데 '겨울여자'라는 게 있어,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쯤 일이었을 텐데, 거기 나오는 음악 '노예들의 합창' 때문에 두고두고 인상에 남았다.

세대를 따져 보면 작가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조해일은 1941년생, 그러니까 필자가 이른바 1940년 전후 출생자 그룹으로 분류하는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 이청준, 이문구, 현기영, 김원일, 조정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분도 있다.

조해일은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했는데, 이 점에서는 신경에서 출생한 황석영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둘 다 해방 전에 만주에서 출생하여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은 한국 현실에 적응하며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조해일은 지금껏 대중적인 작가, 상업적인 작가라는 말을 굴레처럼 쓰고 있는데, 작품들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작가라는 사람들 가운데 대중적, 상업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런 '순수' 작가는 안 팔리는 작가거나 실력 없는 작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말 '순수'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한 작가 정신의 소유자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조선작, 조해일, 최인호 같은 작가들에 덧씌워진 이 '금고아'를 시험해 볼 생각인데, 이미 대학원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해일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필자는 그의 몇몇 대표작들을 다시 읽는다. '뿔'이며, '멘드롱 따또'며, '아메리카'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다들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서도 '아메리카'는 문제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이 아파트 붕괴로 몰살당하는 아픔을 뒤로 하고 제대 후의 삶을 당숙에게 의탁하러 간다. 당숙이 미군 상대 클럽을 운영하는 곳의 이름은 'ㄷ' 시인데, 이니셜을 살려 말하면 실제의 '동두천'쯤 된다.

미군이 삶의 '원천'이 되어 있는 이곳에서 주인공 청년은 '양공주'들의 '별난' 세상을 체험한다. 이 세계에 대한 풍부하고도 현실감 있는 묘사는 이 작가의 작가적 수업 과정이 탄탄했음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작가는 가고 작품은 남는다. 필자 또한 그 작가의 한 사람임을 생각하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였다. (2020.07.02)

☆ 뒤늦게 조해일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1.04(수) 편집 택우..